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두번째 기도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주기도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조금씩이라도 이루어지고 성취된다면 주기도를 가르치신 주님께서 매우 흐믓하실 것입니다.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구별되는 개인.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공동체. 하나님의 뜻을 아름답게 도모하는, 개인과 공동체가 어우러져 사는 것이 주님께서 가르치신 두번째 기도의 본령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주님의 기도를 배우는 제자들을 위시해서, 그 제자들과 복음을 통해서 오늘도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배우고 드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가르치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과연 주기도를 드리는 내 심령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아니,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며 주기도를 드립니까? 그냥 생각조차 없이 그저 암송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짧지만 긴 여운을 가진 주기도, 단순하지만 깊은 의미를 가진 주님 가르치신 기도, 간단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주기도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이 기도를 그저 예배나 모임의 마침용(?)으로만 쓰지 말고, 조금 더 생각하고 드리는 기도가 된다면 주기도를 가르치신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싹을 튀우고 있습니까? 내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자리잡고 자라고 있습니까?
내가 살고 있는, 내가 활동하고 있는, 내가 관계하는 모든 대상들에게, 내가 믿고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조금씩이라도 생명의 향기로 전파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기는커녕, "너나 잘하세요"라는 조롱을 당하지는 않는지요?(롬 2:24)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6)
바로 저와 당신을, 생명의 향기를 감당하라고, 택하시고 부르시며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드릴 때마다, 나의 좁은 편견이 하나님의 통찰로 바꾸어지고, 우리들의 얄팍한 이기심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변화되며, 한걸음 한걸음 조금씩이라도 진보해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이 일들을 명심하고 힘써 행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대가 발전하는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십시오"(딤전 4:15 새번역)
그런 의미에서 새삼스럽게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ㅤㅇㅡㄼ조려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내 심령은 물론, 내가 몸담고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에도,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와 대한민국에도 내 가슴에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면? 내 생각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면? 내 가치관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채워지면?
내 가슴은 하늘나라로, 내 생각 또한 하나님의 나라로, 내 삶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으로 조금씩이라도 변화되고 진보하고 성숙해 가리라 믿습니다.
주기도를 드릴 때마다, 나의 편견이 조금씩 넓어지면 좋겠습니다. 주기도를 함께 ㅤㅇㅡㄼ조릴 때마다, 우리의 옹졸한 생각들이 조금씩 확장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두번째 기도.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바로 이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한걸음씩 다가서다가 마침내 하늘나라의 은혜와 축복으로 "퐁당"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