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자면, 마태복음을 묵상하기 시작하면서 산상보훈을 만났을 때 많이 망설였습니다.
주마간산 격으로 빨리 지나갈 것이냐, 아니면 절절마다 세밀하게 살피고 묵상할 것이냐 망설이다가 닥치고 보니, 자세하게 절절마다 묵상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산상보훈에서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만나게 되었을 때, 역시 망설이다가 자세하게 묵상하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대다수 열심있는 신앙인들에게 익숙한 산상보훈을 대충 넘어가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자세하게 묵상하다보면은 그게 그것 같고 이게 이것 같은 것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물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주기도문은 오죽하겠습니까. 주기도문 전반부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주기도문에서도 예외 없이 먼저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였습니다.(마 6:33)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기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 하나님의 뜻을 위한 기도.
정말 다급한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의 기도생활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도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최손한의 예의이니까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순이니까요.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나중으로 밀어낼 만큼, 다급한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가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
"오늘 우리에게"
기도는 오늘의 문제를 아뢰이고 의논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잘못이나, 해결하지 못한 실수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만 참회의 기도 또한 오늘 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죄와 실수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몰라서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죄나 실수를 깨달았다 할지라도,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김으로, 어물쩡 넘어가며 회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을 아는 것도 은혜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 것도 축복입니다.
죄를 의식하고 참회하고 돌이키는 것이야말로 택함을 받은 주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최고의 은총일 것입니다.(행 3:19, 요일 1:8-10)
과거의 잘못과 실수와 죄도, 오늘 개인 자신이나 공동체인 우리에게, 문제가 된다거나 걸림이 될 때 비로소 기도제목이 될 터. 그래서 기도는 영원한 현재의 문제 입니다.
"오늘"
오늘 나의 문제와 기도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 공동체의 당면 과제와 간구할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오늘 내가 몸 담고 신앙생활하는 교회의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대한민국의 당면 과제로서, 믿는 사람이 감당할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개인이 은밀하게 드려야 할 기도는, 개인이 은밀하게 드려야 합니다.(마 6:5-8)
그러면 주님의 제자가 된 우리가 공동체로 드려야 할 기도는 무엇입니까? 나의 기도는 점점 공동체의 기도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 범위가 이웃과 공동체로 점점 넓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문제만 가지고 "기도삼매경"으로 들어가지 말고, 기도생활이 성숙하고 진보할수록, 내 기도에서 우리의 기도로 넘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내 코가 석잔데"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거나, 공동체인 우리의 기도를 드리다 보면, 어느새 나의 기도가 해결된 경험을 맛본 사람은 알 터.(시 34:8)
중보기도라는 말에 너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로 받으면 문제없습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기도 방식과 습관과 패턴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생각나는 대로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는 은혜를 주시니 그 또한 은혜입니다.
어떤 분은 기도 카드를 들고 기도합니다. 자기의 기도는 안봐도 익숙하니 알아서 기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는, 즉 기도동역은 기도카드에 적어 두고 기도할 때마다 보면서 기도합니다.
멋지고, 아름답고, 주님께서 기뻐하실, 소중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직에서 목회할 때는 새벽기도에 보이는 분들 중에서, 기도 동역이 필요한 분들을 보며 기도하고, 함께 기도의 손을 모아야 할 사람을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자유한 지금은 묵상한 말씀을 카톡으로 나누면서, 그분의 이름과 형편을 농축하며 생각의 힘을 모아 기도합니다. 그리고 묵상에 댓글이 달리면 댓글의 내용을 보면서 좀 더 세밀하게 기도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마음의 여유는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묵상도 가끔 보내며 어쩌다 기도하는 분도 있거니와, 묵상할 때마다 보내면서 기도하고 축복하는 분도 있으며, 댓글을 읽으면서 좀 더 세심하게 기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오늘도 나와 그대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십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 또한 주님께서 들으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오늘도 우리에게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실, 참 좋으신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