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없는 것을 채울 수 있다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음은 성격차이에는 복잡한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고많은 사람 중에 그 사람을 만난 것은 분명히 그것을 감당할 능력도 있음을 믿고 조화를 위한 과제는 본인에게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 순리를 거부할 땐 누굴 만나도 행복할 수 없고 누굴 만나도 그 과제는 따라다닐 것이다.
둘째로 다른 것은 자아 성찰의 기회(機會)다.
사람은 여러 기준으로 나눌 수 있지만, 크게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관점도 나를 잘 이해 해주는 사람과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으로만 구별될 뿐이다.
나와 맞지 않는 5% 사람 때문에 95% 에너지를 다 쏟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이 너무도 짧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항상 좋은 친구와 좋은 이웃을 원하면서도 자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내게 별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그저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기와 통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그들을 끄집어내어 수 없이 순교시키고 있다.
다르다는 것과 틀리다는 것은 별개 문제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자신에게 없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그 분이 주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다름을 인정하므로 조화와 화목을 경험하므로 이웃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식성이 좋다는 사람도 은근히 음식 가리는 것이 많이 있듯이, 성격 좋다는 사람도 사람 가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렇게 나와 다른 삶을 알아 간다는 것은
나 자신을 바로 알아 가는 과정이다.
인간의 미숙(未熟)함이란
타인에게 내 생각은 옳기 때문에 내 생각대로 움직여 줄 것을 요구할 때 드러난다.
조물주가 모두를 다르게 지으심은 모든 사람은 의미가 있는 존재임을 계시한 것이다.
내가 존귀하다면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자가 성숙한 사람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부부(夫婦)는
서로의 틀에 맞춰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나
한 평생 걸어온 발자국마다 애증과 둘 만의 향기가 있기에 그를 통해 나를 보는 것이다.
셋째로 다른 것은 신의 축복(祝福)이다.
사람은 자녀를 낳기 위해 결혼하고
또 서로 싸우려고 결혼한다는 말이 있다.
부부는 살을 맞대고 살아가면서도
관점의 차이로 인해 생각이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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