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인 현상을 하나의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몸을 영혼의 옷으로 바라 볼 수 있을 때 삶은 ‘나’의 주인이 아니라 자식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에니어그램에서 3번 유형은 나를 둘러싼 어떤 조건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삶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른바 성공이라는 환상의 박수갈채를 향하여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불철주야 달려가는 인간군상이다.
성서는 이런 사람들을 살아 있으나 죽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서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인간만이 존재한다고 말씀한다. 즉 죽은 자와 산 자이다. 베드로 사도는 백부장 고르넬리오의 집에 머물 때 이렇게 선포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자로 정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행10:42. 참조 딤후4:1. 벧전 4:5)최후의 심판 자리에서 양과 염소로 나뉘어지듯이 지상에서 누가 산 자였고 누가 죽은 자였던가가 판가름 날 것이다. 이는 지상에 살아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산 적이 없는 사람들이 바글대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요한은 환상 가운데서 보기를 “그 사람들이 아무리 죽으려고 애써도 죽을 수가 없고 죽기를 바라더라도 죽음이 그들을 피해 달아날 것이라”(계9:6)고 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성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감옥을 만들면서 어둠 속에서 산 자들이다. 에니어그램에 등장하는 아홉 가지 인성 유형은 지구라는 어둠의 집에서 식물 인간처럼 죽은 채 살아가는 인간 유형을 그려 주고 있다. 그 중에서 3번 유형은 타인과 세상이 규정하는 성공과 능력에 목매달면서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이룬 그 어떤 것(1등. 학위. 직책...)들을 통하여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그들은 필요하면 눈물도 만들어 내고 ‘내 모습 이대로 저를 사랑해 주옵소서’ 가 아니라 ‘제가 이룬 업적과 일에 대해 사랑해 주옵소서’라고 고백한다. 3번 유형은 일 중독자가 많다. 그들은 자신이 성취해야 할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에 쉴 수 가 없다. 일을 멈추고 한가해지면 세상과 분리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들의 내면에는 작업 감독관이 있어 놀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3번 유형은 바로 이 자기 기만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통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기 기만의 사람은 거짓말쟁이는 아니지만 타인에 대해서도 기만의 묘수를 잘 부릴 수 있다. 그러기에 3번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 많은 것이다. 살다 보면 이야기 하다가 상대와 상황에 따라 말을 자꾸만 바꾸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카멜레온이나 칠이 탁월하다. 다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다 보니 진실을 값싸게 팔아버리고 카멜레온처럼 둔갑을 하면서 살아갈 뿐.
3번 유형은 보상심리가 분명한 사람이다. 열정적으로 일해 업적을 나타낸 만큼 보상을 원한다. 연봉과 인센티브와 하다 못해 칭찬과 인정이라도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만약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다면 그는 떠날 생각을 남보다 먼저 갖게 될 것이다. 3번 유형은 카멜레온이나 칠면조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은 본래 독수리 같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멋진 사람들이다.
인상도 좋고 깔끔하고 젊어 보인다. 말도 잘하고 따라서 설득력도 있고 현실적인 성취에서 보람을 느끼는 실용주의자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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