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자 사모의 이야기 세상 <15> 소독한번 하지 않은 열무
박은자 사모의 이야기 세상 <15> 소독한번 하지 않은 열무
  • cwmonitor
  • 승인 2006.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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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분주했다. 물론 일을 만들지 않으면 조용할 것이고 몸은 한결 편할 것이다. 그런데 또 일을 만들고 말았다.
일은 어제 저녁 무렵, 열무가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가져다 드리겠다는 한 통의 전화에서 비롯되었다. 필요한 만큼 주겠다니 아마 그 분은 서너 단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필요한 것은 언제나 열 단이 넘는다. 아니 스무 단 쯤 가져다준다고 해도 많다고 하지 않는다.

스무 단을 담아도 나누어주다 보면 언제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요한 만큼 주겠다는 말이 의아해서 파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도매상에서 받아주지 않아 열무 밭을 갈아엎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소독한 번 하지 않은 열무라 그대로 버리기가 너무 아까우니 나에게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른 상회에 팔면 얼마나 받느냐고 물었더니 한 단에 천 원이라고 말했다. 순간 며칠 전 단에 2500원씩 샀던 열무가 생각나면서 가슴 한 쪽이 찌르르 아파왔다.
열무가 몇 단이냐 되느냐고 물었다. 150단쯤 된다고 말했다. 우선 100단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열무장사에 나섰다. 소독한 번 안한 열무라는 소리에, 한 단이 두 단은 족히 될 만큼 실하게 묶은 넉넉함에 열무 70단이 금세 팔리고 30단으로는 최순예 권사님, 김인숙 성도님과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맞벌이 하는 성도님들과 시댁이나 친정에서 김치를 얻어다 먹지 못하는 성도님 가정에 한 통씩 보냈다.

열무를 팔고, 김치를 담느라 그만 신문사 글 쓰는 일도 깜빡 잊었다. 일은 한꺼번에 덮친다고 하더니 학원 강사마저 방송통신대 출석 수업이 있어서 결근을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글을 쓰고 있으니 아이들이 궁금했던 모양인지 자꾸 뭘 쓰느냐고 묻는다. 나의 환타지 동화 1부를 읽은 어떤 꼬마가 2부를 쓰는 거냐고 물었다. 1년 넘게 통 못 쓰고 있는, 아니 잊어버리고 있는 동화를 아이가 기억하고 물으니 또 가슴 한 쪽이 아리다.
정말 왜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김치를 담그면서 최순예 권사님이 책망하셨다.
"사모님이 자꾸 일만 하시려고 하면 어쩝니까?"
최 권사님 말씀 속에는 내가 기도에 게으른 것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최 권사님 말씀에 나는 또 통증을 느낀다. 정말 내가 왜 자꾸 일을 벌이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소독 한번 하지 않은 열무" 라는 말에 우리 성도님들에게 김치를 담아주고 싶은 마음이 불처럼 일어나는 것을 어쩌랴? 그리고 김치를 맛있게 담아서 주일날 공동식사 식탁을 눈부시게 만들고 싶은 마음을 정말 어쩌지 못하겠다.
아침 일찍 그 농부는 이슬 젖은 열무를 싣고 왔다. 너무나 선해 보이는 그 분의 얼굴을 보면서 또 슬펐다. 해 뜨기 전에 들에 나가 어두워질 때 까지 일해도 별 수입이 되지 않는 그 분의 노동, 소독대신 벌레를 잡아주며 가꾸어도 제 값을 받지 못하는 농산물, 우리 예은교회가 얼른 컸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분이 농사지은 것을 제 값을 주고 살 수 있어서 그 분의 정작하고 아름다운 땀방울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행복한 하루다. 사모가 기도하지 않고 일만 한다고 책망을 듣기는 했지만 그 책망도 가슴 사무치는 사랑이기에 달콤하다. 또 하루의 노동으로 우리 성도님들이 행복하니 그 행복은 오롯이 내 즐거움으로 돌아와 육체의 피곤도 달콤하다.
정말 사모된 자가 아니고는 누릴 수 없는 기쁨이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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