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억만 목사 l 강릉포남교회 ponamch@hanmail.net
둘째는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마음을 비워야(케노시스)만 가능하다.
기본(基本)이 충실하므로 일의 바탕을 깔고서는 이제 겸손한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한다. 지방선거운동 기간 길거리에 나가면 후보자들은 90도 이상 절을 한다.
아니 당선된 후에도 몇 일 동안 사거리에서 인사하고, 낙선된 사람은 성원해 주셔서고맙다는 현수막을 걸어놓는다. 모두가 이런 자세로만 살아간다면 대한민국은 금방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초심을 잃을 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이번 선거는 정부와 여당의 심판 정도가 아니라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탄핵(彈劾)이라고까지 말한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데, 민심(民心)이 이지경이 되도록 그들은 눈과 귀를 막고 무엇을 했단 말인가.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머리만 숙여 인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낮아진 만큼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들은 백성의 소리를 듣지 못했던지 아니면 무시했던지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상도 좋고 방향도 옳다 해도 전략(戰略)이 부재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겸손(謙遜)은 다른 것이 아니다. 민(民)의 소리를 알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전략이다. 물론 한나라당도 잘해서 표를 받은 것은 아니다. 대안이 없기에 심판의 반사이익을 얻은 것 뿐이니 초심으로 돌아가 겸허하게 수용하자는 박 대표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들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양(羊)은 다른 상처는 다 치료할 수 있으나 귀가 막히면 속수무책이라고 한다.
그 귀가 막히지 않도록 처음처럼 낮아지고 처음처럼 소리가 잘 들려야 한다.
그것이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는 것이다.
셋째로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는언제나 목표(目標)를 점검해야만 한다.
정말 우리 국민들은 단순하다. 언제나 정치와 언론에 놀아나고 있다.
역사는 이제껏 수구세력과 개혁(改革)세력의 싸움이 반복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로 그 한 쪽의 싹이 잘라버렸다. 걱정스럽게 여기는 것은 좋은 정책이란 항상 균형 잡힌 대립과 견제를 통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젠 그마저도 기대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혼자 잘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곧 초심을 지키려 기본에 충실하고, 또 겸손한 마음으로 일을 해도 자기를 돌아볼 거울과 같은 견제세력이 없다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먼저 스스로 자신을 통해 점검하고, 타인을 통해 반성하고 그리고 우리는 견제(牽制)자들을 통해 수정해야만 한다. 국민들은 220볼트 전기를 쓰고 있는데 나 혼자 110볼트 코드가 좋다고 계속 그것만을 강요한다면, 국민들에겐 무시와 냉소 그리고 모멸감을 주는 것 밖에 얻어지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견제자를 방해(妨害)자가 아니라 파트너로 생각하고 그 기회를 역발상적인 자기개발로 삼아야 한다. 멈춘 물은 썩는다. 그래서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건만 그것으로 부족한지 신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견제와 비판을 통해서 약속한 의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이다.
주여, 처음 기름부음 받을 때, 또 처음 직분을 받았을 때, 저는 두려움을 넘어 당신의 불꽃같은 눈에서 긍휼(矜恤)한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잃어버린 제 초심을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나요.아니면당신 앞에 토설해야 하나요.
다시금눈물이 회복되어당신의 음성을 듣기 전저들의 신음소리를 듣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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