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떤 바람에 날아가고 있는가? (2)
당신은 지금 어떤 바람에 날아가고 있는가? (2)
  • cwmonitor
  • 승인 2007.04.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양규목사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은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하여 사색의 실마리가 되는 말씀이 창세기에 있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 3:9-10) 네가 어디 있느냐? 라는 물음은 너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전제한다. 두려움에 시달려 숨고 살아야 할 네가 아니지 않느냐? 라는 탄식이 배어있는 물음이다. 인간은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물음 앞에 정직하게 서지 않는 한 두려움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성서는 이 근원적 물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숨으려고 하는 데서 인간의 비극은 시작되었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통찰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비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의 삶의 경험들은 생로병사와 자기 뜻대로 안될 때 슬퍼하고 화내고 원망과 탓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즉 기계적 반응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에니어그램 수련은 이 경험들을 인식하는 의식의 차원이 바뀌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거듭남’에 대한 가르침이나 바울의 눈에서 비늘 떨어졌다는 것과 통할 것이다. 애벌레의 눈으로 보면 장애물인데 나비의 눈으로 보면 놀이터가 되는 이치와 같다.

거듭남이란 인간의식의 내용과 질이 변혁되었다는 것이요, 바라보는 눈의 차원이 달라짐을 의미한다. 의식은 존재의 자리를 결정한다. 의식이 없으면 식물인간이다. 한 방안에도 여러 차원의 정보를 가진 전파가 존재하듯이 인간 역시 여러 차원의 의식을 가진 존재들이 있다. 시간과 공간에 갇힌 사람도 있지만 그 경계를 깨고 나간 사람도 있는 법이다. 한국 땅에서는 동서남북이 있지만 북극이나 남극에서는 한 방향만 있을 것이고 지구의 중심점에서는 그 방향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 의식, 신성을 자각한 의식도 있지만 거지 의식, 노예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문화나 종교 역시 어떤 의식을 가진 사람이냐에 따라 그 내용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자신의 의식이 두려움에 근거한 사람이라면 그가 믿는 하나님은 두려움의 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식이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그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일 것이다.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믿어 왔던 신은 두려움의 신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식은 두려움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향하여 예수는 자비로운 아빠 하나님을 선포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이었던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는 사소한 것들에 목숨 걸고 하지 말아야 할 일과 안 해도 될 일에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붓는 사람이다. 그러나 바위위에 집을 짓는 자는 자신이 꼭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의 정열을 투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해도 될 일을 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정작 자신이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 일에는 도전조차 못해보고 삶이 마감되는 것이다. 바위는 어떤 삶의 공격에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부동심, 또는 아파테이아 상태를 의미한다. 바위 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은 인간관계와 일과 소유와 미래에 대하여 지나치게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순간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생각과 느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관찰할 수 있는 근원의 ‘나" (I AM)를 자각했기 때문이고 영원불멸의 가치 위에 자신의 존재의 집을 세웠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이 자각만이 사람을 돈으로 재단하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첩경이다.

에니어그램 도형의 삼각형은 힘과 지혜와 사랑의 삼위일체가 우리 삶의 바위요, 뚫어야할 우물임을 밝혀 주고 있다.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사랑을 우선하는 것, 그 사랑을 현실화 하는 것이 정화된 영혼의 사명이다.

두려움이 지배하는 세상을 사랑의 세상으로 바꾸어 가는 사람은 먼저 두려움의 무덤을 깨치고 사랑의 부활로 거듭난 사람이다. 그는 세속의 법칙인 두려움을 정화시켜 사랑만이 마음속에 남게 한다. 자신 안에 있는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물을 구걸하러 다니지 않는 사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