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의 노동법과 이랜드의 반(反)희년적 노동착취
희년의 노동법과 이랜드의 반(反)희년적 노동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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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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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 목사가 박성수 회장에게 성경의 희년법을 가르쳐야
박창수 사무국장 / 한미FTA기독교, 공동대책위원회 사무국장

2008년 초, 사랑의교회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인 이랜드 노동자들을 방문하여 함께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필자를 포함해 방문자 두 사람과 농성 중인 이랜드 여성 노동자 두 사람, 이렇게 네 사람이 작은 기도회를 진행한 것이다. 여성 노동자 중 한 아주머니는 과거에 교회에 나갔지만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서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기도회 중에 그 아주머니가 눈물을 흘렸다.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한 맺힌 마음과 북받치는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자신이 메시야임을 선언하시며, 메시야 사역의 핵심 중 하나는 희년(禧年)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4:16-19). 예수님이 선포하신 희년은 구약성경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50년째 되는 해인데, 희년의 노동법에 담긴 원칙들은 우리 시대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노예 노동 금지’이다. 동족 히브리인은 결코 노예로 부릴 수 없다(레위기 25:39,42).
둘째, ‘적극 고용’이다. 극빈자를 맞아들여 일자리를 주어야 한다(레위기 25:35).

이 성구에서 극빈자를 맞아들여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단순히 극빈자가 살 집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품꾼으로 삼아 일감을 주어 일을 하게하고 그 정당한 품삯을 주어, 극빈자가 그 품삯을 저축하여 언젠가는 자기 기업 토지를 되찾아 독립하여 자영노동자가 될 수 있게 한다는 넓은 의미이다. 현대적 의미로는 실업자를 적극적으로 맞아들여 고용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랜드가 비정규직보호법의 원 취지와 정신에 따라 2년간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집단 해고한 것은, 실업자를 적극 고용하라는 성경의 노동법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셋째, ‘가혹 노동 금지’이다. 노동자를 가혹하게 부려서는 안 된다(레위25:43,53).
그런데 이랜드 홈에버 월드컵경기장 매장의 계산대에서 일하고 있는 계산원(캐쉬어)들은, "이 매장이 입지가 좋아서 항상 손님이 많은데도 직원을 더 뽑지 않는다, 밀린 손님들 계산을 하느라고 화장실도 못 가고 물도 마실 수 없다"고 증언했다.

이 매장의 계산대는 1층과 2층 모두 합쳐 총 36개로서, 밀려드는 고객을 무리 없이 소화하려면 130명 정도의 직원이 필요하지만 80명 정도의 계산원을 두고 중노동을 요구한 것이다. 계산원들은 쉴 새 없이 오랫동안 서서 일하기 때문에 건강이 나빠져, 발에 감각이 없거나, 어깨를 90도 이상 못 올리거나, 하지정맥류나 방광염, 갑상선 질환을 앓았다. 이와 같은 이랜드의 중노동 강요는 성경의 노동법이 규정한 가혹노동 금지를 어긴 것이다.

넷째, ‘정당 임금 지급’이다. 토지를 다음 희년까지 한시적으로 사고 팔 때, 억울하게 하지’KJV: oppress(압제하지)’ 말아야 한다(레위기 25:14,17). 누가 누구를 억울하게 하기 쉬울까? 상식적으로 강자가 약자를 억울하게 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토지를 팔아야 하는 가난한 사람이 약자로서 제 값을 받지 못하고 토지를 헐값에 넘김으로써 억울해 지기 쉽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정당한 값을 지불하라고 강자에게 명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레위기 25장 전체 문맥에서 토지뿐만 아니라 노동(품)을 다음 희년까지 한시적으로 사고 팔 때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거래 원칙이다. 곧 노동(품)의 거래 시에 강자인 고용주가 약자인 품꾼을 억울하게 하지 말고 정당한 품삯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레위기 25:50).

구약 시대 당시 품꾼 고용 계약에서 품꾼이 일시불 선불로 받는 품삯의 수준은, 고용 계약 기간 동안 품꾼이 행할 총 노동의 대가로 품꾼이 받아야 할 정당한 수준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성경은 품꾼 고용 계약이 끝날 때 고용주가 품꾼에게 후히 줄 것을 명령했다(신명기 15:13,14,18). 그래서 품삯을 주지 않는 행위는 성경에서 악으로 정죄된다(욥기 31:38~40, 야고보서 5:1,4).

그런데 이랜드 홈에버 월드컵경기장 매장의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하던 한 여성노동자는 그 매장에서 근무한지 4년이지만 월급은 85만원밖에 안 된다고 증언했다. 이와 같은 이랜드의 저임금 정책은 성경의 노동법이 규정한 정당임금 지급을 어긴 것이다.

다섯째, ‘노동자 생존권 최우선’이다. 성경에는 빈자생활수단저당금지법이 있다. “맷돌은커녕 맷돌 위짝도 저당 잡힐 수 없다. 그것은 남의 목숨을 저당 잡는 일이다.”(신명기 24:6). 이 성구에는 율법의 위대한 경제 사상이 담겨 있다.

채주(債主)가 빚을 지게 된 가난한 사람에게서 맷돌을 저당 잡아서 가져가 버리면, 그 가난한 사람의 가족은 맷돌을 사용해야만 가능한 요리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자칫하면 굶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상태가 장기화되면 그 가족이 죽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에게서 맷돌을 저당 잡는 것이 곧 그 가족의 생명을 저당 잡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율법의 정신은 비단 맷돌에만 국한되지 않고, 겉옷과 같이 가난한 사람의 다른 필수적 생활 수단에도 확대 적용된다. 요컨대 율법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에게서 생활 수단을 빼앗는 것은 곧 그 생명을 빼앗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도 등장한다. “네가 내 생활 수단을 빼앗는 것은 내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4막 1장).

그리고 이 율법에 의하면, 생존권이 소유권보다 우선한다. 채주가 빚을 진 사람에게서 전당을 잡을 수 있는 권리는 바로 꾸어 준 빚에 대한 채주의 소유권으로부터 파생된다. 채주가 맷돌을 전당 잡으면 안 된다는 이 율법은, 채주의 전당권을 파생시킨 소유권보다 빚을 진 가난한 사람의 생존권이 우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권은 생존권까지 위협해도 무방한 절대적인 권리가 결코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은 성경의 정신은 우리 시대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노동 관행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고용은 사주(社主)의 경영권의 발동인데, 이 경영권은 사주의 소유권으로부터 파생된다. 사주는 소유권에 근거한 경영권의 일환으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고용을 정당화하지만, 해고된 사람은 일자리가 없어서,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 불안과 열악한 임금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노동은 생존권이 소유권보다 우선한다는 성경의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노동 악습인 것이다. 이랜드가 고용노동 방식을 비정규직 노동으로 채택하고, 그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할 시점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집단 해고한 것은 성경의 빈자생활수단전집금지법에 담긴 ‘빈자 생존권 최우선 원칙’과 위배되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근에 사랑의교회 당회는 천막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3차에 걸쳐 공문을 보내 농성 천막 철거를 통보했다. 그러나 해고된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랑의교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한 2007년 12월 21일 이래 지금까지 노동자들이 사랑의교회에 요청했던 옥한흠 목사와 오정현 목사와의 면담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천덕 신부에 의하면, 성경에서 구원이란 바로 “문제 해결”이다. 성경은 “전쟁 문제 해결”, “병 문제 해결”, “경제 문제 해결” 등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모두 구원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구주’라는 말은 ‘문제 해결하시는 주님’이라는 뜻으로서, 예수님은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시는 분이시다. 절박한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구속 수배와 손해배상 가압류가 철회되고,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것일 것이다. 예수님은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구원자이신가? 과연 그렇다면 교회는 예수님의 구원을 이 노동자들에게 나타내야 할 사명이 있다. 더 이상 방관하면 안 된다. 한국 교회가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박성수 회장에게 성경을 가르친 옥한흠 목사가 나서야 한다. 회사 일이니까 관여 안한다는 식으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그것은 교회와 목회자의 중대한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 옥한흠 목사는 먼저 농성 천막으로 이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러 찾아와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탄식어린 사연을 듣고 그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그 아픔을 따뜻하게 품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박성수 회장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권면해야 한다. 절박한 상황 가운데 있는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교회가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할 사람들이며, 그 가운데에는 기독교인 성도들도 있다. 예수님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구원을 베푸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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