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 감각의 깨어남
에니어그램 / 감각의 깨어남
  • cwmonitor
  • 승인 2008.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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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꽃송이를 접고 사람들의 발길 정도에 따라 꽃대의 높이를 정하는 민들레를 바라보노라면 한송이 꽃이 가지는 생존의 감각에 대하여 경이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감각은 생존의 기본 조건이기도 하지만 환상의 현실에서 실재의 현실로 깨어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감각은 현실을 인식하는 창과 같기 때문에 감각의 수준은 그 사람의 현실인식과 비례한다. 육체의 감각, 마음의 감각, 영혼의 감각이 어떻게 살아 있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의 내용과 질이 결정된다. 육체의 감각 하나만 사용하는 사람은 육체적 현실 하나에 만 몰입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감각은 인간의식의 원초적 바탕이며 힘이다. 인간은 그가 지닌 감각의 능력만큼 대상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힘을 갖는다.

감각은 육체의 오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시간 감각이 있을 때 그는 철을 아는 사람, 곧 철인이 된다. 그러나 자연의 시간과 자기 존재의 성장 과정에 대한 시간감각이 없거나 무딘 사람은 철부지다. 공간 감각이 있어야 그는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공간은 빔으로써 우주와 만상을 담는다.

공간은 존재의 자궁이다. 공간이 없다면 형태도 어떤 모양도 존재할 수 없다. 공간 감각이 예민해져야 디자이너가 될 수 있고 신의 사인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감각은 현실과 소통하는 경계선이다. 감각이 죽으면 그에게 있어 현실은 실재가 아니라 환상이다. 실재하는 밖의 세계를 감각하지 못할 때 그는 이미 자기 안에 입력된 기계적 반응과 본능만이 남는다. 그러기에 감각은 인간의식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감성이 열리고 영성이 열리기 위해서는 감각이 먼저 열려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에고의 정밀한 파악과 극복의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에고이스트란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이다. 그는 환상의 현실을 사는 사람이고 인간이 되찾아야할 세 가지 감각이 마비된 사람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실재의 현실, 지금 여기의 실재에 ‘현재함’으로부터 소외 시킨 사람이기 때문에 외로움과 긴장, 소외감에 시달리게 된다. 삶에 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삶 자체가 애매모호하다. 성서는 그런 사람을 어둠 속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 (마 13:10-16참조) 마음이 완악하여 자기 가까이 와있는 하늘나라를 알 길이 없다.

예수는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으라고 말씀했다. 즉 인간다운 감성이 살아있는 인간이 되라는 말씀이다.
그 살아있음의 출발점에 감각이 있다. 감각이 죽어가는 증세는 생각과 느낌과 행동에 긴장이 발생하게 되고 급기야 웃거나 울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점이다.

이 긴장은 인간의 평화로움을 결정적으로 깨뜨리는 원수와 같다. 동서고금의 영혼의 스승들이 숨과 호흡을 중요시하는 명상을 가르친 것은 인간성의 회복과 행복에 있어 이완과 유연함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깨달음도 평화로움도 어떤 행복의 추구도 고요함에서 출발한다. 고요함은 몸과 마음의 편안함과 가벼움에 있다. 숨이 거칠면 고요할 수 없다. 내쉬는 숨을 들숨보다 4배로 해보라. 그렇게 천천히 하다보면 숨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게 되고 잠자던 감각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숨을 통하여 매순간 나에게 강림하신다. 숨은 내가 쉬고 싶어 쉬는 것이 아니다. 숨은 주시는 것이요, 은혜의 선물이다. 아담의 콧속에 숨을 주셨듯이 지금 여기 나라고 하는 아담에게 하나님은 숨을 주신다.

만약 숨을 인간이 쉬는 거라면 백년이고 이백년이고 인간은 숨을 멈추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숨 안에서 만물은 하나의 숨을 쉬고 있다. 사람의 숨, 동물의 숨, 나무와 풀들의 숨으로. 생명의 중심에는 하나의 숨이 있을 뿐이다. 숨을 쉬는 존재는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은 파동과 진동이다. 나타난 모든 현실 역시 진동과 파동이다. 다만 진동의 수준이 있을 뿐.

지금 나에게서 나가고 있는 에너지의 파동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때 인간의 영적 감각은 깨어난다. 나의 에너지 파장을 바라보고 다스릴 때 그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두려움에서 발생하는 파동이 사랑의 파동으로 바꾸어질 때 의식의 집착에서 파생되는 집착과 시도들을 내려놓게 되고 그는 자기 자신과의 평화로움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는 감성체의 몸이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숨을 잊을 때 인간은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영적 자살과 같다. 그는 현실을 사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살게 된다. 과거와 미래로 삶을 투사하면서 지금 행복하고 지금 기뻐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언젠가는 행복해질 거라고, 자신이 그려놓은 목표가 이루어지면 행복해질 거라는 막연함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늘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 하늘은 그냥 비를 주지만 죽은 나무는 더욱 썩게 되고 살아있는 나무는 더욱 푸르러질 뿐이다.

“있는(살아 있는) 자 는 더욱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조차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살아있는가? 유연하고 편안한가? 시간과 공간과 인간에 대한 감각이 보다 예민해지고 있는가?

이병창 목사 / 시인·진달래교회moam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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