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도형에는 두 개의 화살표가 있다. 화살이 오는 쪽은 활력방향이라 하고 내려가는 쪽은 스트레스 방향이라 한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매사가 마음먹은 대로 순풍에 돛 달 듯이 잘 풀려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일 때 인간은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게 된다. 화살표가 내려가는 방향은 바다로 떠내려가는 민물고기처럼 자기도 모르게 스트레스 상황에 빠져들었을 때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 깨어 있는 인간은 역풍이 불어 올 때 비행물체가 비상하듯이 자기 존재의 영적 상승이 일어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화살표는 내가 지금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생명의 길로 가고 있는가를 분별하게 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인생의 길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삶의 목표이고 그에 따른 방향이다. 그 사람이 현재 어느 길로 가고 있느냐에 따라 인생은 결판나게 되어 있다.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지면 그에 따른 수단은 나타나게 되어 있다.
서울에 가고자하는 분명한 목표가 서있다면 자동차냐? 기차냐? 아니면 도보로 가느냐? 하는 방법은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오늘 날 인간의 삶이 혼란에 빠져드는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목표가 없이 막연한 불안감으로 수단만 찾아 우왕좌왕하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찾아 열심히 더듬이질 하며 돌아다니는 개미 꼴이 요즈음 우리 현실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문제가 어찌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밥(경제) 하나에만 있겠는가. 이러한 논리는 인간을 더 깊은 어둠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마귀의 논리임을 알아야만 한다.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이나 망식한 예수를 마귀가 시험할 때 ‘돌이 떡이 되게 해보라’고 유혹했다. 그 때 예수는 무어라고 대답했는가?
“ 성경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태 4:4)
물질의 떡을 더 많이 가지고자 무한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어 꼼짝 못하고 사는 인간을 성경은 죄인이라고 말씀한다. 그들은 자신의 존귀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에고의 노예이며 함께 나누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 모든 세계, 모든 존재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지구에서 경험하는 지옥생활이다.
삶이란 물질에서 신성으로 나아가는 방향이다. 하나의 단세포에서 생명체로, 그리고 인간의식에서 영적 자각에 이르기 까지 인간의 존재는 성장과 성숙의 길을 이 땅에서 경험해 간다. 이 길은 동물적인 원초적 본능(자기 보존. 사회적. 성적본능)을 지나 신과 하나 되고자 하는 인간 진보의 길이기도 하다.
인간은 동물의 완성이며 신성의 시작점에 와있는 존재이다. 동물성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죽음의 길이며 인간의 본성(하나님의 형상)과 신의 뜻에 어긋나는 길이다. 그러나 신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돌아설 때 그는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의인이다. 그의 걸음걸이가 위태위태하다 하더라도 신성을 향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자는 복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복되랴! 남 우습게나 여기고 제 잘난 체만 하는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지 아니하는 이는. 얼마나 복되랴! 여호와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그 가르침을 밤낮으로 읽으며 늘 명상하는 이는” (시 1 :1-2)
“여러분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히 11:6)
중력의 지배를 받는 지구에서 모든 움직이는 물체는 저항과 마찰이 있다. 이것은 몸을 가진 인간의 영적 세계에도 적용된다.
걸음이 빨라질수록 저항에너지가 커지는 것처럼 지고한 인간 존재로의 성숙, 하나님과 하나 되고자 하는 노력 역시 온갖 사악한 힘의 저항을 받게 된다. 그 힘은 나의 영적 공간이 커져 가는 것을 치열하게 방해한다. 그러나 말씀의 밥으로 힘을 얻고 자신의 부족을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로 채워가는 자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믿음은 인간의 기본적 의무이며 사명인 신성을 향해 가는 것이다. 신에게로 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저항과의 투쟁이기도 하다. 믿음의 길을 가는 자는 누구나 지구에서의 삶을 마칠 때까지 이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될 것이다. 이 싸움을 피하거나 두려워 할 때 인간의식의 성장은 멈추게 되고 스트레스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육적 본능으로서의 성격과 에고의 노예가 됨을 의미한다.
짐승은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짐승이지만 인간은 그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물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에니어그램 화살표는 보여주고 있다. 복 있는 사람으로서의 의인과 악인은 바로 여기에서 판가름이 나게 된다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병창 목사 / 시인·진달래교회 moam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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