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ㅣ모성- 나 자신의 어머니가 되라
에니어그램 ㅣ모성- 나 자신의 어머니가 되라
  • cwmonitor
  • 승인 2008.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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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 수련에 이상주의자 1번 유형 남편과 의심 많은 6번 유형 부부가 참여했다. 그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아니라는 것을 부인의 얼굴이 잘 보여주고 있었다. 6번 유형의 아동기는 무능한 부모(특히 아버지의 폭력, 알콜 중독 )를 만났거나 소년 소녀 가장처럼 어린 시절에 어른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 6번 유형의 무능력에 대한 느낌은 의심의 근원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그의 방황은 유능한 권위자를 찾는 데 있고 실제로 찾게 되면 그들의 가면을 벗기려 하고 배후를 파헤치곤 한다. 밖에서 보면 그럴 듯하게 포장된 가정이지만 내용으로는 전혀 아닌 가족사의 비밀들을 많은 6번 유형들은 가지고 있고 어린 시절 겪었던 생존의 위협은 깊은 두려움의 상처로 남아 있다. 6번의 비극적인 점은 홀로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버림 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두려움을 일소할 수 있는 권위자로서의 배우자로 목사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녀의 판단이 오판이었다는 것은 반 지하실에서 출발한 신혼에서부터 확인 되었고 뱀이 출몰하는 농촌교회의 주택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이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이제 한계점에 이르렀고 공포와 싸우는 6번 유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한 남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을 해결해줄 해결사로서의 권위자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남편을 공격했다. 자신은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편의 이중성과 거짓과 품위없음과 이러저러한 모습을 보아줄 수 없노라고. 과연 그런 것일까?

그녀의 정직성에 대한 신념을 백번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비극은 그녀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데 있어서는 완벽한 실패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사랑은 용서할 때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는 자신의 분노와 실망을 정당화 할 뿐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노와 실망 안에 갇혀서 자기를 건너가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이란 먼저 자기를 스스로 풀어주고 놓아 주는 것이다. 이런 전제가 없을 때 자신은 희생자가 된다. 사랑은 자기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사랑은 쓴 사랑이 된다. 희생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가해자의 다른 얼굴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위해 희생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상대를 놓아주지 않는 집착의 면모를 보인다는 것을 아침 드라마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가 너를 위해 희생했기 때문에 너도 나를 위해 응분의 희생을 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동일시 의식이 작용할 때 그 희생 안에 감추어진 무서운 공격성이 나타나게 된다.

가장 많이 베푸는 2번 유형의 양 날개와 스트레스 방향이 모두 공격적 에너지라는 점은 이 사실을 여실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소유욕에 불타는 사람, 자신의 두려움을 보호해줄 상대를 찾는 사람의 사랑은 상대가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칠 때 무서운 공격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해야 한다.

나는 그녀에게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 하와’ (창 3:20)의 마음을 가질 것을 권했다. 그리하여 열 한번 째 아들로 남편을 삼으라는 인도의 덕담처럼 남편을 영혼으로 품을 수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중심에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남편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에니어그램의 날개 이론으로 풀어 보면 인간을 새라고 비유할 때 두 날개가 동시에 사용되어져야 비행할 수 있는 것처럼 두 개의 상반된 에너지(음과 양, 동과 정. 빛과 어둠, 하늘과 땅. 육과 영---) 를 사용할 수 있어야 삶의 상승이 일어난다.

여성에게 있어서는 중심이 모성이고 다른 두 날개는 여왕과 야성녀다. 가장 중요한 중심과 출발은 모성이다. 생명은 모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생명을 낳고 기르고 품고 돌보는 봉사와 헌신은 모성에 있다. 이 모성성은 자식을 낳고 기르는 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예전의 모성은 어머니 역할에만 머물렀지만 이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교육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들의 역할과 모성성의 발휘가 더욱 필요하다. 즉 다양한 모성의 발휘가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모성은 여성들이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한 모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나 자신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았고 예수를 통하여 마리아는 자기 자신의 어머니가 되었다. 자기 자식의 목구멍에 어떤 반찬을 먹일까만 골몰하는 어머니 역할에만 머물지 말고 자식과 함께 성장하는 어머니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의 어머니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을 향하여 모성을 실현한다는 것은 보다 높은 영적 각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을 눌러온 두려움과 의심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용기 있게 새로운 삶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이병창 목사 / 시인·진달래교회 moam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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