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자의 장편동화 / 하늘이 이야기 -2
박은자의 장편동화 / 하늘이 이야기 -2
  • cwmonitor
  • 승인 2008.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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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쌍둥이 누나가 참 부러웠어요 누나들은 마치 다람쥐가 나무를 타는 것처럼 계단을 아주 잘 다녔지요. 엄마는 누나들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거나 뛰어 내려와도 조심하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누나들이 부러웠어요. 혼자서 계단을 올라가려고 해도 너무 높아서 멀미가 났거든요. 내려오는 것은 더 무서웠고요.

내가 겁쟁이여서 그랬을까요? 아니에요. 나는 절대로 겁쟁이가 아니에요. 누나들이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거나 얼굴을 가리는 벌레를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거든요.

우리가 사는 방에 벌레가 들어 와 기어가면 누나들은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비명을 지르며 나를 부르고는 했어요. 그러면 나는 얼른 종이를 벌레가 기어가는 방향으로 대는 거여요. 벌레는 머뭇거리면서도 종이에 올라타기 때문에 쉽게 벌레를 잡았어요.

나는 절대로 벌레를 우리 방에서 쫓아내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누나들이 너무나 무서워해서 벌레를 잡아야만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누나들이 방에서 나가니까요.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손톱처럼 동글납작한 벌레가 우리 방으로 들어 온 적이 있었어요. 등에 까만 점까지 있는 주홍색 벌레가 여간 예쁘지 않았어요.

그 벌레는 날지도 못하면서 등에 있는 날개를 활짝 펴기도 했어요. 그런데 누나들은 그 벌레를 무서워하며 얼른 잡아 버리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여요. 나는 누나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러자 누나들이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나갔어요.

“하늘아, 너 벌레랑 살아라! 누나는 벌레가 정말 싫어.”
누나들이 나가버린 방에서 하루 종일 혼자 있는 것은 너무나 심심했어요. 하지만 누나들이 아무리 야단을 해도 종이 속에 갇힌 벌레를 죽이지 않았어요. 누나들은 벌레가 들어있는 종이를 꾹 누르라고 말했지만, 만약에 누나의 말을 들었다면 작고 가엾은 벌레는 금방 죽고 말았겠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누나 몰래 사탕이 들어있던 깡통 속에 넣어 두었다가 엄마랑 밖에 나가는 날 깡통을 들고 나가서 벌레를 땅에 내려 주고는 했어요. 그러면 엄마도 나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벌레가 꼼질꼼질 기어가는 것을 한참이나 보고는 했어요.

벌레는 아주 천천히 기어가고는 했지요. 갑자기 넓어진 세상이 무섭기나 한 듯이 주춤거리기도 했고, 바람이나 햇빛이 무거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엄마는 벌레를 보고 말씀하셨어요.

“참 느리구나. 우리 하늘이가 크는 것처럼.”
그러면 나는 벌떡 일어서서 씩씩하게 말했어요.
“엄마, 나를 좀 보세요. 내 키가 엄마보다 더 커요.”
앉아있는 엄마보다 나는 항상 컸어요.

팔을 하늘로 치켜들면 내 키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의 키만큼 컸어요.
“정말 그렇구나. 우리 하늘이가 언제 이렇게 컸지?”

엄마의 음성은 언제나 조용했어요.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하고는 했어요. 웃을 때도 소리를 내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느 때는 엄마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어요.

아빠가 큰 발자국 소리를 내며 우리들의 방을 찾아오기도 했어요. 아빠가 오시면 나는 좋아서 아빠의 어깨에 매달렸어요. 그러면 아빠는 나를 번쩍 안아서 한 바퀴 빙 돌려주기도 했고 머리가 천장에 쿵 닿을 만큼 높이 올려주기도 했어요. 어지럽기는 했지만 마음은 신났어요. 아빠와 나는 큰 소리로 웃었어요. 아빠가 하하 웃으면 나도 아빠를 따라 하하 웃었어요.

아빠가 피노키오의 코처럼 입을 쑥 내밀고 웃으면 나도 아빠처럼 입을 쑥 내밀고 웃었어요. 그러나 엄마는 아빠를 향해 소리를 질렀어요.
“하늘이를 내려 놔요! 하늘이 몸에 손대지 말아요!”

아빠에게 매달린 것은 바로 나인데 엄마는 아빠한테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어요.
“애들이 보고 싶어 잠시 시간을 내어 왔다오. 좀 참아 주시오.”
나와 좀 더 놀고 싶어 하시는 아빠를 엄마는 끝끝내 밀어냈어요. 그러면 아빠는 고집을 부리지 않으시고 가셨어요.

나는 몹시 서운해진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아빠가 바보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엄마가 가라고 소리치며 아빠를 밀어낼 때 아빠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고 떼를 쓰면 아빠는 우리와 함께 살 수 있는데도 아빠는 쉽게 가셨으니까요. 아빠는 왜 몰랐을까요? 엄마는 ‘안 된다’ 고 말하다가도 누나나 내가 떼를 쓰면 못이기는 척 들어주신다는 것을.

하지만 쌍둥이 누나들도 엄마처럼 아빠를 싫어했어요. 아빠가 오면 인사도 하지 않았고 구석에서 고개를 무릎 깊숙이 박은 채 움직이지 않았어요. 아주 가만히 방바닥에 눈물만 떨어트렸어요. 엄마와 누나들은 아빠에게 왜 그랬을까요?

하지만 언젠가 겁에 질린 엄마가 아빠에게 소리 지른 몇 마디의 말은 지금도 생각나요.
“아이들을 빼앗아 갈려고 그러지? 절대로,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아빠가 다녀가시면 엄마는 마치 석고 인형이 된 것처럼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있고는 했어요. 그런 엄마의 모습은 너무나 슬퍼 보였어요. 그래서 아빠가 다녀가신 날에는 맛있는 반찬이 상위에 올라와도 아무도 밥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 날은 엄마가 기침을 더 많이 하셨어요. 어느 날은 엄마가 밤새도록 기침을 하셔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엄마는 기침을 하시면서도 우리들을 걱정하셨어요.

“괜찮아. 금방 그칠 거야. 걱정하지 말고 자렴.”
엄마는 기침을 참으시느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는 했어요. 엄마의 기침이 멈추지 않는 것, 그건 너무 무서운 일이었어요. 기침하는 엄마를 끌어안고 끝내 누나들이 울음을 터트리면 나도 무섭고 슬퍼져서 큰 소리로 울었어요. 그러면 엄마의 기침이 간신히 멎고는 했어요.

도대체 엄마는 왜 그렇게 기침을 하셨던 걸까요?
도대체 무슨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던 것일까요?
우리는 왜 아빠와 함께 살지 못하게 된 것일까요?
엄마가 많이 아픈데 아빠는 왜 모른 척 버려 둔 것일까요?

박은자동화작가 / 온양 예은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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