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 영혼의 과학 -에니어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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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wmonitor
  • 승인 2008.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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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과학이라는 단어는 보여 지는 세계, 곧 ‘물질’이라는 개념을 전제한다. 과학은 인간에게 더욱 편리하고 풍요한 삶을 누리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군사과학을 통하여 인간을 죽이고 파멸시키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의 진보는 이렇게 극심한 빛과 어둠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학의 밝은 쪽만 보고 얼이 빠져 있거나 과학에 대한 미신을 가지고 있다. 지구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문명들의 부침이 있었고 어떤 것들은 약간의 흔적들을 남겨주고 있다. 전설의 아틸란티스로 부터 마야와 이집트의 피라밋과 기타 유적들은 신비로운 여운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 세 사람의 천사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들은 다른 세계로 부터 온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가 무거운 죄와 제멋대로 가는 미친 문명이기 때문에 파괴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는 불에 의해 소멸되고 말았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과 멸망의 이야기는 물질과 향락으로만 치달리는 문명은 반드시 멸망하게 된다는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과학은 인간의 물질과 향락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데 공헌하고 양의 확대와 보다 빠른 효율적인 시간의 편이성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현대과학은 1에서부터 시작하여 무한대의 숫자를 향하여 내달리는 것이라면 영적 과학은 0를 향하여 거꾸로 가는 것과 같다.

성령의 불꽃은 우리의 인간적인 모든 육적 요소들을 태워 0으로 돌아가게 한다.
0으로 돌아 갈수록 우리는 빛의 존재가 되고 빛을 방사하게 된다. 그것은 촛대의 몸에 하늘의 불이 옮겨 붙는 것과 같다. 그것은 컴퓨터의 잘못된 프로그램들을 지워내듯이 우리의 의식 속에 들어 있는 온갖 부정적인 프로그램들을 삭제시키는 것이다.

“심판날이 오면 모든 사람들이 세운 건축물은 불의 시험을 받아 건축자가 어떤 재료를 사용하였으며, 그 건축물이 존속될 것인가, 참으로 완벽한 건물인가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눈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고전 3:13)

불은 물질을 태워 다른 차원의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에너지는 창조되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 형태를 바꿀 뿐이다. 성령의 불꽃은 인간의 불완전한 것들을 불태워 보다 큰 일을 할 수 있는 큰 의식의 존재가 되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이 변환을 거듭남이라고 하고 그리스도 의식, 또는 나로서의 나라고 표현한다. 육체로서의 몸 ‘나’가 ‘나’가 아니라 얼 ‘나’가 참 ‘나’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 ”(고전 15:31) 고 고백했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자아의 죽음을 날마다 경험한다는 것이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0으로 서는 하나님을 향한 삶을 뜻한다.

신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중심적 자아의 쇠퇴와 죽음을 고백하였다. 세례 요한은 “ 그분은 더욱 더 위대해지고 나는 더욱 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 30)고 말했다.

그분의 자리가 커지고 커져서 내 에고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 바로 이것만이 인간이 신에게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위기에 처한 것은 바로 이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건물이 웅장하고 사람들은 많이 모여 있지만 진정 나를 죽여 그 분을 살리려는 자각은 찾아 볼 길이 없지 않은가.

이브에게 악마는 선악과 하나만 따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악마가 말하는 선악과는 쉽게 목에 삼키는 알약처럼 만병통치 즉효약이었다. 과연 그런 것일까.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지혜가 그렇게 한 순간에 얻어지는 것인가. 인간은 쉽고 편하게 가는 길을 원한다.

그것은 유혹이고 함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스턴트 식품의 홍수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인스턴트 종교와 구원을 원한다. 바로 이런 길들여진 인간들의 욕구에 맞춰주기 위해서 오늘의 목회자들은 얼마나 전전긍긍하고 있는가. 그러나 그 길은 구원의 길일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지만 결코 싸구려는 아니다.

구원의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일이다. 그 길은 험난하고 초라하며 혹독할 수 있다. 에고의 나를 불태우고 죽이는 십자가의 길이다. 겸손과 헌신과 봉사의 길이다. 입에서는 달콤하지만 뱃속에서는 쓸개보다도 쓰라린 고통이다. (계 10: 9-10) 그러나 그 길을 가는 자는 신성으로서의 실체를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자기 몸을 불태워 어린 새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처럼 불멸의 존재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를 지상에 보내주신 아버지의 뜻은 바로 이 때 완성된다. 육적인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날 때 (갈 4:19) 우리 각자는 자기 자신의 개별적 그리스도 됨을 입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나라의 공동상속자가 될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삶의 목표임을 깨닫고 발걸음을 옮기는 자는 복이 있다.

이병창 목사 / 시인·진달래교회 moam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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