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자의 장편동화하늘이 이야기 -4
박은자의 장편동화하늘이 이야기 -4
  • cwmonitor
  • 승인 2008.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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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자동화작가 (온양 예은교회 사모)


어느 날 아주 뚱뚱하신 할머니가 찾아 왔어요. 할머니는 방안을 잠시 둘러보시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이런 곳에서 애들을 키울 생각이냐? 이게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냐?”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지금 엄마가 몹시 떨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할머니께 할 말이 많은 것 같았어요. 할머니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고 그런 엄마의 모습은 참으로 애절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떨고만 있습니다. 동그랗게 몸을 구부리고 앉아있는 엄마의 모습은 너무나 작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할머니가 소리를 칩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들만 끼고 있으면 어쩔 것이야? 무슨 말이든 해! 아무 말 않고 그렇게 앉아있지만 말고 아이들을 어떻게 할 건가 말해 보란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입을 열지 않습니다. 엄마는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던지 할머니가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요. 엄마 역시 할머니가 원하시는 대답을 할 수가 없나 봅니다.

우리 삼남매를 보내면 엄마는 어쩌면 좋은 집과 편안한 생활을 약속 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엄마에게 우리 삼남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어요.
만약에, 만약에 누나들과 내가 할머니를 따라 간다면 엄마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는 꽃잎처럼 금세 하얗게 말라 버리고 말겠지요.

언젠가 그런 적이 있었지요. 큰 아빠라는 분과 할머니가 오셔서 우리를 강제로 데려가려고 했어요. 나는 큰 아빠가 너무나 무서웠어요. 그래서 큰 아빠가 나를 번쩍 안아 가는데 소리도 지르지 못했어요.
울기만 하던 엄마가 쓰러졌어요.

그러자 누나들이 큰 아빠에게 달려들어 나를 빼앗았어요. 누나들은 나를 빼앗아 쓰러진 엄마에게 주었어요. 그리고 얼마나 세게 큰 아빠에게 달려들었는지 큰 아빠는 좁은 부엌으로 굴러 떨어졌어요.

그 후로는 큰 아빠가 우리 집에 찾아오는 일은 없었어요.
할머니가 가끔 오시기는 했지만 할머니는 엄마를 가만히 달래다가 가시고는 했어요.
할머니는 더러 두툼한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리실 때도 있었어요.
“아이고, 어미 잘 못 만나서 어린 것들이 너무 불쌍하구나.”

그러나 정말 불쌍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엄마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왜 아무도 몰랐을까요?
할머니가 다녀가시거나 혹은 아빠가 다녀가신 날이면 엄마는 아침이 될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어요. 나는 엄마가 옆에 없어서 깊이 잠들지 못하고 여러 번 잠을 깨야 했어요.

하지만 엄마를 부르거나 잠을 재워 달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책상위의 스탠드 불빛을 가슴에 안은 엄마의 등은 한없이 작고 어두웠어요. 날마다 나를 업어주는 엄마의 등이 아니었어요. 밤이면 아주 작아졌다가 낮이면 나를 가뿐히 업어줄 만큼 커지는 엄마의 등어리가 참 이상했어요. 엄마는 밤새도록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고 계셨을까요?

봄이 가고 있었어요.
보랏빛 라일락이 꽃가지에서 모두 떨어지자 더 이상 꽃향기가 우리의 작은 방으로 흘러오지 않았어요.

우리가 사는 집은 마당이 모두 시멘트로 덮인 집이었어요. 풀 한 포기 살 수 없는 집이었지만 커다란 라일락 나무 다섯 그루가 담을 따라 나란히 서서 봄이면 아주 먼 곳까지 봄 향기를 보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집을 라일락 집이라고 불렀어요.

아빠와 헤어진 엄마는 방을 구하러 다니다가 라일락꽃이 흐드러지게 핀 집을 발견했대요. ‘지하실 방 세 놓음’이라는 글씨도 라일락 꽃향기에 취해서 담벼락에 삐뚤삐뚤 누워 있더래요. 라일락 꽃향기가 엄마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이사 한 집은 지은 지가 하도 오래 되어 주인이 사는 지상의 방도 낡고 허름했어요. 문들은 모두 삐걱거렸고 마루는 겨울 내내 추웠지요. 그래서 주인집 아줌마는 집을 수리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주인집 아줌마가 지하실 작은 우리 방으로 내려와서 푸념을 하면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우리가 이사를 가면 아줌마는 당장에라도 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엄마는 일 년 후에 올려 주기로 약속한 보증금을 주인집 아줌마에게 드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우리 엄마에게는 돈이 없었나 봐요. 그래서 우리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보증금을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주인집 아줌마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아줌마에게 섭섭한 마음도 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돈을 벌면 주인집 아줌마에게 보증금을 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주인집 아줌마는 집을 예쁘게 고치고, 우리는 라일락꽃이 피는 집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엄마처럼 주사를 잘 놓을 줄 모르니까 돈을 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오른쪽 다리가 짧아서 빨리 걸어 다닐 수도 없으니까 일을 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한참이나 생각을 해 보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었어요. 그래서 누나에게 의논을 해 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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