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자의 장편동화 / 하늘이 이야기 - 5
박은자의 장편동화 / 하늘이 이야기 - 5
  • cwmonitor
  • 승인 2008.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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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자동화작가(온양 예은교회 사모)

“누나, 어떻게 하면 돈을 벌지?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지?”
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어요.

“네가 돈을 번다고?”
“응. 나는 돈을 벌고 싶어.”

누나는 나를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았어요. 그러더니 웃음을 터트렸어요.
“하늘아, 너는 돈을 벌 수 없어.”
“아니야. 나도 돈을 벌 수 있어. 꼭 돈을 벌 거야.”

“안 돼.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돈은 어른들이 버는 거야.”
“누나는 학교에 다니니까 열심히 공부해. 하지만 난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까 돈을 벌 거야.”

“너같이 조그만 아이는 돈을 벌수가 없는 거야.”
“싫어. 꼭 돈을 벌 거야.”
내가 자꾸만 고집을 부리지 누나는 또 한참을 생각하는 눈치였어요.

“하늘아, 네가 아무리 돈을 벌고 싶다고 해도 지금은 가능한 일이 아니야. 하지만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이다음에 화가가 되면 돈을 벌 수 있어.”
“화가가 되면 돈을 벌수 있어? 어떻게?”
그러자 누나가 또 말해 주었어요.

“아주 좋은 그림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거든.”
누나는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라며 소를 잘 그렸다는 이중섭 화가에 대해서 말해 주었어요. 이중섭 화가는 우리 집보다 더 가난했다는 거여요. 그래서 굶기도 했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종이가 없어서 담뱃갑에 그림을 그렸대요. 그런데 그 그림들이 지금은 굉장히 비싼 값에 팔린다고 했어요.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어요.
엄마도 누나들도 내 그림을 보고 모두들 참 잘 그렸다고 말했거든요. 가겟집 아저씨께 내가 그린 벌레나 꽃그림을 드리면 아저씨는 나를 보고 화가라며 사탕을 한 봉지 그냥 주시기도 했어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부터 그리는 그림은 사탕과 바꾸어 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나의 공책을 찢었어요.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주사 놓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지만 싫다고 했어요. 엄마는 혼자서 주사를 놓으러 가셨어요. 엄마가 오시기 전에 얼른 그림을 그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잘 그리려고 애썼지만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았어요. 땀방울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어요. 누나의 공책을 한 권 더 찢어서 연습을 하고 나니까 비로소 그림이 아주 잘 그려지기 시작했어요.

벌레는 살아서 꿈틀꿈틀 기어가는 것 같았고 새는 금방 날아 갈 것만 같았어요. 엄마가 좋아하시는 라일락도 그렸는데 라일락꽃에서는 꽃향기가 났어요. 나비도 그렸어요.
그림 아래에 가격을 적었어요. 제일 잘 그려진 새 그림에는 주인집 아줌마가 달라고 하는 보증금 5백만 원을 적었어요.

라일락 꽃 그림에는 누나가 피아노 학원에 내야 하는 수강료 10만 원을 적었어요. 누나들이 싫어하는 벌레 그림에는 매일매일 먹고 싶은 초코 아이스크림 값 천 원을 적었어요. 그리고 나 혼자서는 한 번도 올라 간 적이 없는 계단을 기어서 하나씩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물론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계단을 다 올라가서 내려다보아도 조금도 무섭지 않았어요. 칠이 벗겨진 청색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어요. 라일락 나무가 담장 밖으로 그늘을 만들어 놓은 곳까지 걸어갔어요. 라일락 나무 그늘에 그림을 펴놓았어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멈추어 서서 구경을 했어요. 얼굴이 작고 머리가 긴 아줌마가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어요.

“얘야, 이 그림을 네가 다 그렸니?”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대답했어요.
“네. 제가 그렸어요.”

하지만 아줌마는 그림을 구경만 할 뿐 사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혹시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을 그린다면, 그 때에는 네 그림을 꼭 살께.”
오늘 처음 만난 아줌마를 이다음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만나나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가려고 하는 아줌마를 불렀어요.

“아줌마랑 제가 어떻게 만나나요?”
“아줌마를 못 만나게 될까 봐 걱정이 되니?”
“네.”
“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을 그린다면 어디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아도 꼭 만날 수 있단다.“
아줌마의 말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줌마를 가만히 쳐다보았어요.
“너는 눈이 참 맑구나. 누구를 닮았니?”

“엄마를 닮았대요.”
“네 이름이 뭐니?”
“하늘이요.”

아줌마는 구름 한 점이 없는 맑은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어요.
“저 하늘하고 네 이름이 같은 거니?”
“네.”
아줌마는 곰곰이 생각하듯이 그림을 살펴보았어요. 한참동안 들여다보던 아줌마가 말했어요. “팔려고 그리는 그림은 진짜 그림이 아니란다.”
“아줌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제 그림이 진짜가 아니라고요? 이 그림은 정말 제가 그렸어요.”

“그래. 네가 그렸다는 것은 믿는단다. 그리고 정말 잘 그렸다는 것도 인정한단다. 하지만 너는 팔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잖니? 진짜 화가는 팔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지는 않거든.” 아줌마의 말을 듣고 있자니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가슴이 콩콩 뜁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림을 팔기 위해서 그렸거든요. 그림을 팔아서 엄마와 누나들이랑 라일락 집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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