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자동화작가 / 온양 예은교회 사모
팔려고 그리는 그림은 진짜 그림이 아니라는 아줌마의 말은 나에게 충격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열심히 그린 그림이 가짜가 되었으니까요. 하고 싶은 말이 입가에 맴돌았어요.
“하지만 마음을 다해 그린 그림은 진짜래요.”
“누가 그러던? 마음을 다해 그리면 진짜가 된다고?”
“누나가 말해 주었어요.”
“너는 이 그림을 마음을 다해 그렸니?”
“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땀도 났어요.”
문득 아줌마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아줌마의 손에 물감이 묻어 있었으니까요.
“아줌마는 그림을 그리나요?”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처럼 보이니?”
“네. 아줌마 손에 물감이 묻었어요.”
“너는 무척 세심한 아이구나.”
“아줌마는 무슨 그림을 그리나요? 아줌마도 소를 그리나요?”
“소? 아줌마가 왜 소를 그릴 거라고 생각하니?”
“소를 그린 그림이 굉장히 비싸대요.”
아줌마 얼굴에 미소가 피었어요.
“아줌마는 소를 그리지 않아. 아줌마가 그리는 그림은 ‘성화’라고 한단다.”
처음 듣는 ‘성화’라는 말이 알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우뚱하자 아줌마 얼굴에 또 웃음이 가득했어요.
“아줌마는 예수님을 그린단다. 때때로 노아와 모세를 그릴 때가 있지.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님을 그릴 때도 있고.”
소를 그리지 않은 아줌마가 안타까웠어요.
“아줌마, 소를 그리지 그랬어요? 이중섭 화가는 소를 그렸대요.”
“그래. 소를 그리는 일도 중요하고 너처럼 벌레나 꽃을 그리는 일도 소중하단다. 하지만 아줌마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을 그릴 때가 행복하단다.”
“아줌마, 저도 예수님을 알아요. 그리고 삭개오도 알아요. 예수님이 보고 싶어서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갔거든요. 삭개오는 어른인데도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대요.”
“넌 정말 많이 아는구나.”
“아줌마는 정말 그림을 팔지 않나요?”
“그래. 팔지 않아. 원하는 사람에게 준단다. 더러는 교회의 벽에 걸릴 때도 있고.”
“그럼 아줌마는 어떻게 돈을 버나요? 우리 엄마처럼 주사를 놓으러 다니나요?”
“그렇지 않아. 아줌마는 주사를 아주 싫어해.”
아줌마는 정말 주사가 싫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어요.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른이 되면 살아가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하거든.”
“아줌마는 언제 그림을 그려요? 나는 심심할 때 그리는데.”
아줌마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아줌마 마음이 뭉클해지거나 가슴이 활활 탈 때가 있지. 아줌마는 그럴 때 그림을 그린단다.”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활활 탈 때가 있다는 이야기는 조금 어려웠어요. 하지만 가만히 아줌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까 조금은 알 것도 같았어요.
내가 그린 그림이 가짜 그림이라 그랬나 봐요.
나와 한참을 이야기해 주던 아줌마도, 아주 잘 그렸다고 칭찬을 했던 다른 사람들도 그림을 사가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고등학생 형들이 지나가다가 내 그림을 보고 막 웃는 거여요.
“어? 얘 좀 봐라? 웃기는 꼬마네.”
나는 절대로 웃기는 꼬마가 아니었지만 형들이 하하 웃어대서 그만 얼굴이 빨개졌어요.
“너, 정말 그림을 팔려고 앉아있는 거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형들은 서로들 그림을 사라고 말했어요. 한참을 옥신각신 다투더니 한 형이 5백 원을 내고 벌레 그림을 샀어요.
나는 참 기뻤어요. 새 그림과 라일락 꽃 그림도 곧 팔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 엄마랑 누나가 환하게 웃는 것을 보고 싶었어요.
팔려고 그린 그림은 진짜가 아니라는 아줌마의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하는 동안 기대에 부풀었어요.
사람들은 ‘허! 그 녀석도 참···.’ 하면서 웃기도 했어요.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는 그만 깜빡 잠이 들었어요.
큰일 났어요.
라일락 꽃 그림이 바람에 저만큼 날아가는 거여요. 빨리 뛰어가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새 그림도 날개를 활짝 펴더니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하는 거여요. 안타까워서 막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자 누군가 “괜찮아! 괜찮아!”라고 소리치며 달랬어요.
엄마가 나를 꼭 안고 있었고 누나들은 어서 일어나라고 내 팔을 흔들고 있었어요. 꿈이었어요. 그림을 파는 동안 꼬리를 치켜세우고 주위를 빙빙 돌며 나를 지켜주던 강아지도 내가 잠들자 심심했나 봐요. 주인집 강아지도 들어가고 없었어요.
엄마는 나를 업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어요. 정말 처음이었어요. 엄마가 나를 업고 계단을 내려 간 것은. 팔리지 않은 그림은 누나들이 사겠다고 했어요. 물수건으로 나를 닦아주시던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쏟아졌어요. 참 이상했어요. 나는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그림을 그려서 팔려고 한 것인데 엄마는 왜 자꾸 우시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어요.
저작권자 © 크리스챤월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