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자의 장편동화/하늘이 이야기 - 8
박은자의 장편동화/하늘이 이야기 - 8
  • cwmonitor
  • 승인 2008.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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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기에 걸릴까 봐 엄마가 그렇게 애쓰셨는데도 나는 끝내 감기에 걸리고 말았어요. 한밤중에 열이 아주 높아서 병원에 가야만 했어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쌍둥이 누나가 양쪽에서 우산을 받쳐주었기 때문에 비에 젖지 않고 병원에 갔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참 이상해요. 다른 사람 주사는 아주 잘 놓아줄 수 있는데 나에게 주사를 놓으려면 가슴이 뛰고 손이 막 떨린대요. 우리 엄마는 왜 손이 떨리고 가슴이 뛰었을까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결국 나는 병원에서 아프게 놓는 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었어요.

비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세차게 쏟아지고는 했어요.
엄마가 주사를 놓으러 가면 나는 엄마가 올 때까지 그림을 그렸어요.
벌레 그림을 열세 장 그렸을 때인가 봐요. 비가 그치고 해가 났어요. 그러자 이상한 냄새가 우리 방으로 흘러 왔어요. 아주 좋지 않은 냄새였어요. 냄새를 맡으려고 코를 막아 보기도 했지만 입으로 숨을 쉬니까 토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가보았어요.

계단을 하나 오른 다음에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너무나 무서웠어요. 계단을 아홉 개 올라 왔을 때는 꼭 구를 것만 같았어요. 누가 발을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무서움을 꼭 참고 끝까지 올라갔어요.

밖에 나오니까 햇빛에 눈이 부셨어요. 세차게 비가 왔었다는 것이 거짓말 같았어요. 주인집 강아지가 나를 보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어요.
‘어디에서 냄새가 나는 걸까?’

냄새가 나는 곳을 열심히 찾아보았어요. 하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았어요. 라일락 나무 끝까지 가보았어요. 그러자 거기에 물이 빠지는 하수구가 있었어요. 냄새는 그곳에서 나고 있었어요. 비가 오니까 주인집 아줌마가 뚜껑을 열어 놓았나 봐요. 담장 안에 쏟아진 빗물이 빠져나가야 하니까요. 뚜껑은 굉장히 무거웠어요. 하지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뚜껑을 밀어 구멍을 막았어요. 그러자 냄새가 금세 사라졌어요. 라일락 푸른 잎들이 나를 보고 웃었어요. 아마 라일락 나무도 냄새 때문에 괴로웠을 거여요. 나는 라일락 나무를 한 번씩 안아 주고 계단을 내려갔어요.

엄마는 아주 늦게 돌아 왔어요.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누나들도 늦게 왔어요. 엄마는 서둘러 밥을 지으시면서 비가 또 올 것 같다고 하셨어요. 누나들은 숙제가 많다며 나와 놀아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는 심심하지 않아요. 그림을 그리면 되니까요. 지난번 하나 누나의 공책을 찢어 그림을 그린 후에 엄마와 누나들이 공책을 많이 사다 주었어요. 줄이 없는 공책이라 그림 그리기가 아주 좋지요.

나는 참 이상해요. 누나들은 스케치북에만 그림을 그리는데 나는 공책에 연필로 그리는 그림이 좋거든요. 틀리면 쉽게 지울 수도 있고 또 아주 많은 곤충들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곤충을 그렸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리나 더듬이나 등을 하나씩 지우기 시작하면 그렇게 하나하나 사라져 가는 것이 신기하고 참 재미있어요. 물론 나비의 등에 금빛 날개를 달아 주거나 더듬이를 만들어 주는 것도 근사한 일이지요.

우리 네 식구가 사는 방은 지하실 방이라 바람이 불어도 잘 들리지 않고, 비가와도 희미하게 들렸어요. 준비물을 사러 나갔다 온 두나 누나의 옷이 젖었어요. 나는 물었어요.
“누나, 비가 많이 와?”

비가 많이 온다고 누나가 대답했어요. 나는 밖에 나가보고 싶었어요. 빗방울을 손바닥에 잡아보고 싶었어요. 손바닥에 떨어진 빗방울은 틀림없이 구슬 같거나 별처럼 빛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 일요일 아침 일찍 엄마와 누나랑 공원에 산책을 간 적이 있어요. 그 때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을 보았어요.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지요. 엄마는 이슬이라고 말했어요. 빛이 나는 것은 햇빛 때문이라고 했어요.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도 참 예쁜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방울은 얼마나 더 예쁠까요? 그냥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는 말고요.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면 손바닥에 하나씩 떨어지는 빗방울 말이에요. 그래서 엄마에게 물어 보았어요.
“엄마, 우리는 언제 주인아줌마가 사는 그런 집에 사나요?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방안에서 비가 오는 것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대답 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누나들은 숙제를 하느라 잠시 엄마를 슬프게 한 나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거여요.
쌍둥이 누나는 침대로 올라가고 엄마와 나는 요를 깔고 꼭 껴안았어요. 나는 매일 엄마를 꼭 껴안고 자거든요.

엄마는 아침까지도 나를 안은 팔을 풀지 않았어요. 누나들은 몰랐을 거여요. 내가 밤마다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며 잠들었다는 것을. 엄마는 나보다 먼저 잠이 드실 때가 있었어요. 엄마 코에 손을 대보면 알지요. 우리 엄마는 잠이 드시면 온음표가 죽 늘어선 것처럼 길게 숨을 쉬셨어요. 엄마가 잠이 드신 것을 확인하고도 나는 계속 엄마의 젖을 만졌어요. 엄마의 젖을 만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는 했어요.

박은자동화작가 온양 예은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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