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자의 장편동화/하늘이 이야기 - 9
박은자의 장편동화/하늘이 이야기 - 9
  • cwmonitor
  • 승인 2008.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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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었나봐요. 엄마와 누나들과 내가 바다에 갔으니 말이에요. 바다에 간 것이 너무 좋아서 꿈속에서도 자꾸만 꿈이 아니냐고 물었어요. 틀림없는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기도 했어요.

나는 커다란 물고기가 되어 헤엄을 쳤어요. 헤엄을 치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어요. 물고기들이 가까이 와서 말을 걸기도 했어요. 그 중에 초록빛 물고기가 참 아름다웠어요. 지느러미가 마치 날개처럼 생겼어요. 초록빛 물고기는 어떤 물고기보다도 빠르게 헤엄치고 있었어요. 아니에요. 초록빛 물고기는 헤엄을 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새처럼 물속을 날아다니고 있었어요.

초록빛 물고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에게는 종이와 연필이 없었어요.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울고만 싶었어요. 그러자 초록빛 물고기가 다가와서 물었어요.
“안녕? 너는 왜 울려고 그러니?”

“널 그리고 싶은데 연필이 없어. 종이도 없고. 하지만 종이가 있다고 해도 여기는 물 속이라서 금세 젖어버리고 말 거야. 너를 그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
초록빛 물고기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다 보니까 그만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어요.
정말 이상한 일이에요. 누군가에게 내 진실한 마음을 이야기하면 눈물이 나오는 것 말이에요.

“너는 정말 우는구나. 울지 마. 너는 나를 그릴 수 있어.”
“어떻게? 연필이 없는데…. 종이도 없고…. 연필과 종이가 있다고 해도 금세 젖어서 찢어지고 말 거야.”

“너는 그림을 종이에만 그린다고 생각하니?”
“그럼 어디에다 그리는데?”
초록빛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 나를 잘 봐. 나의 무엇을 그리고 싶니?”

“날개 같은 너의 지느러미와 초록빛 네 몸을 그리고 싶어. 아니 너의 전부를 그리고 싶어.”
“자, 나를 네 맑은 눈으로 자세히 보렴. 나의 모든 것을 네 맑은 눈에 담는 거야. 그리고 네 마음속으로 그리는 거야. 네 마음속에 그린 그림은 물에도 젖지 않고 불에도 타지 않는단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그림만 그리지. 그런 그림들은 쉽게 사라진단다. 때때로 도둑을 맞기도 하지.”

나는 초록빛 물고기를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그러자 초록빛 물고기의 몸에 내 얼굴이 보였어요. 나는 깜짝 놀랐어요.
“너는 나를 그렸니?”
“응.”
초록빛 물고기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너도 벌써 나를 다 그렸는걸. 네 눈 속에 내가 있는걸.”
“정말? 믿을 수 없어.”

“그럼 뒤로 돌아 서 보렴.”
초록빛 물고기가 시키는 대로 뒤로 돌아 섰어요.
“잘 보렴. 나는 지금 네 뒤에 있단다. 그러나 지금 너는 나를 보고 있지? 네 눈앞에 나의 멋진 지느러미와 초록빛 몸이 보이지?”

초록빛 물고기의 말은 사실이었어요. 뒤돌아 서 있어도 초록빛 물고기의 눈까지 나는 볼 수가 있었어요. 초록빛 물고기가 다시 말했어요.
“나와 함께 노랑 물고기가 있는 곳에 가지 않겠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초록빛 물고기와 함께 노랑 물고기가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마음껏 헤엄을 친다는 것은 참 근사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얼마큼 가다 보니까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엄마한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록빛 물고기야, 미안해. 엄마한테 가야 해. 노랑 물고기한테는 다음에 갈게.”
초록빛 물고기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어요.
“잘 가. 너를 꼭 다시 만나고 싶어.”

그런데 엄마가 있는 곳으로 아무리 헤엄을 쳐도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는 거여요.
갑자기 엄마가 비명을 질렀어요. 엄마가 나를 번쩍 안아다 침대에 던졌어요. 나는 너무 놀라 잠에서 깨었어요.

엄마가 누나들을 막 흔들어 깨웠어요. 잠이 많은 두나 누나도 벌떡 일어났어요. 그만큼 엄마의 목소리는 절박했어요.
정말 큰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우리 방으로 물이 들어오고 있는 거여요. 엄마와 내가 잠들었던 이불은 이미 젖고 있었어요. 방문을 열자 부엌에 가득 찼던 물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어요. 그러자 방바닥은 금세 물이 찼어요. 엄마는 재빠르게 문을 닫았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계단으로 물은 계속 흘러 들어오고 있었어요.

다급해진 엄마가 비명을 질렀어요.
“이게 웬일이지? 이게 웬일이야?”
엄마는 물을 퍼서 싱크대에 붓기 시작했어요. 엄마의 손놀림은 무척 빨랐어요. 하지만 엄마가 아무리 퍼내도 물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우리에게 침대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하지만 하나 누나와 두나 누나는 부엌으로 뛰어나가 엄마와 함께 물을 퍼냈어요. 그러자 부엌 바닥에 있던 물이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비가 그치자 더 이상 물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나는 침대에 앉아 방안에 가득 고여 찰랑거리는 물을 보다가 문득 헤엄을 치던 넓은 바다가 생각났어요. 초록빛 물고기도 생각났어요. 만나지 못한 노란빛 물고기도 궁금했어요.

박은자동화작가 (온양 예은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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