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ㅣ진정한 삶은 만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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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wmonitor
  • 승인 2009.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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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목사(시인·진달래교회 moamm@hanmail.net)

킬리만자로의 분화구를 바라보면서 여한 없이 자기 자신을 분출시킨 삶에 대하여 생각한 적이 있다. 산이 높다 보니 구름이 산에 걸려 비로 쏟아지게 되고 그 덕에 꽤나 넓은 지역이 풍요함을 누리고 있었다.

계곡의 물과 울창한 바나나 숲, 여유롭고 당당한 여인들의 발걸음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큰 산은 인간의 세상에서는 성인에 비유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한 생애를 남김없이 진리에 헌신하고 제물의 삶을 살았던 분들이 있어 지구의 문명은 짐승의 문명으로 떨어지지 아니하고 유지되어 왔다.

율곡은 19살 때 금강산에 들어가면서 ‘내가 산에 들어가는 것은 산이 되고자 함이다’는 내용의 시를 남겼다. 산이 되려면 산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도 작은 산이라도 되기 위해서 큰 산이 된 분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산을 오르고 어떤 이는 또 다른 산을 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산을 오르고 있는가?

수많은 종교인들이 있지만 산을 오르지는 않고 산에 대해 말만 많이 하고 있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종교는 산을 오르고 산이 되는 데 있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한다” 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사람이란 삶을 말한다. 그것은 진리를 독점한 종교 귀족들에 의하여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외침이다.

나에게 보내 온 성탄절 소식 가운데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허벤님의 “ Real life is Encounter. That was very nice to know you as a gift from God " 라는 글이었다. 진정한 삶은 만남이다. 바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이 지상에 보내어진 선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멋진 일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 내 마음의 구유에 예수를 영접한다는 것은 진정한 삶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것이요,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기가 죽어 옹졸하고 눈치 보며 살아 온 인생에서 두려움 없이 사는 삶을 향해 투신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하여 내 존재의 가치가 오르내리던 에집트적 노예 인생에서 자유의 가나안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일이다. 바로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우리는 불멸의 ‘나’를 만나야 한다.

그 무엇들의 나가 아니라 나로서의 ‘나’를 만나야 한다. 세상에 속고 인생에 속고 자기 자신에 속아 사는 멍텅구리 인생을 청산하고 영생불멸의 진정한 삶을 찾아야 한다고 예수는 말씀하셨다. 복음은 진정한 삶을 만나는 소식이다. 내가 나를 만나고 너를 만나고 자유와 사랑과 평화를 만나는 것이다. 인간의 무한한 가치를 나와 이웃에게서 발견해 가는 일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에서도 가장 못사는 땅 중의 하나인 베들레헴, 그것도 방을 못 얻어 마굿간의 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비참한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만약 그 상황을 오늘에 적용한다면 아기 예수를 누가 돌아 볼 것이며 작은 자비라도 베풀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이 기다려온 메시아는 그런 메시아가 아니었다. 그들의 메시아는 금관의 메시아지 말구유의 메시아는 아니었다.

바로 이 긴장은 예수의 전 생애, 십자가에 까지 이어지고 있고 오늘의 현실에 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로마가 다스리는 식민지의 땅, 척박하게 내몰린 가난한 민중의 자식으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찾아온 사람들은 광야에서 밤을 새우고 있던 목자들과 이방인의 땅 페르샤에서 온 동방박사들이었다. 동방 박사는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성직자인 마기들이었다.

목자는 또 누구인가. 그들은 부자들의 양을 치면서 광야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동물들과 함께 살다보니 몸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성전에도 들어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소외되고 냉대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아기 예수를 영접했다. 바로 이 기록이 무었을 말하는 가를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구유의 아기 예수를 잃어버리고, 권력과 부와 명예를 추구하고 과시하는 교회가 되기 때문에 오늘의 교회는 힘을 잃어버렸다. 현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에 오늘의 한국 사회는 넌크리스챤은 없고 안티 크리스챤만 있다고 하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다. 천사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는 목자들의 영혼, 구유의 아기 예수를 찾아가는 목자들의 겸손한 태도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과연 그런 말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구유에 계신 아기 예수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예수는 동물 인간을 그리스도 (왕, 제사장, 선지자) 의식으로 깨어나게 하셨다. 그리스도 의식으로 존재의 중심을 잡고 이 세상의 문제를 내 책임으로 자각하는 사람, 세상의 불의를 바로 잡아가는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내가 깨어날 때 진정한 크리스마스는 시작된다. 크리스마스의 사람들은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가 누구이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좋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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