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어요.
선생님과 강에 가기도 했고, 들판으로 갈 때도 있었어요. 선생님과 함께 가고, 함께 보았던 모든 길과 산과 들과 집들 중에서 음봉의 논둑길은 참으로 근사했어요.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인 벼들이 좁다란 둑길을 다 막아 버렸어요. 양팔로 사락사락 벼들을 헤치며 선생님과 논둑길을 걸어가면 폴짝폴짝 뛰던 메뚜기들이 내 어깨에도 올라타는 거여요. 메뚜기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면 벌써 저만큼 달아나고, 그래서 노래를 부르면 메뚜기들은 다시 눈앞에서 연두 빛 날개를 눈부시게 펴거나 포로록 뛰었어요.
나는 메뚜기를 잡아 실에 꿸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메뚜기를 손에 올려놓고 가만히 보았더니 지금까지 내가 그렸던 그 어떤 벌레보다도 크고 예뻤어요. 금세라도 찢어질 것만 같은 연두 빛 날개는 엄마가 잘 입었던 스웨터처럼 부드러웠어요. 엄마 등에 업혀 있을 때, 나는 그 연둣빛 털에 코를 부비며 엄마 냄새를 맡고는 했어요.
정말이지 엄마를 왜 볼 수가 없지요? 왜 엄마랑 살아서는 안되지요? 할머니랑 사는 것이 행복하거나 조금도 즐겁지 않은데,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은데엄마는 왜 우리를 할머니에게 보냈을까요?
메뚜기 날개를 살짝 잡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선생님은 어느새 메뚜기 사진을 다 찍었나 봐요. 선생님은 나를 향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어요. 내가 웃을 때를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을 위해서 나는 환하게, 환하게 웃었어요. 아니에요.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언제라도 웃을 수 있었어요. 선생님은 내 웃음소리를 파아란 하늘같다고 했어요.
갖가지 이야기가 구름처럼 피어나는 하늘을 닮았다고 하셨어요. 나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내가 웃기만 하면 선생님은 무척 좋아하셨어요. 어느 날은 내 웃음소리에 틀림없이 별이 들어있을 거라고도 하셨어요. 어느 날 내가 막 웃었더니 선생님께서 이렇게 소리치셨어요.
“얘들아, 여기 좀 봐! 별이 쏟아진다!”
그러자 희은이 누나가 장단을 맞추었어요.
“아! 눈 부셔! 하늘이 별이 눈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네.”
정말 그럴까요? 내 웃음소리에 하늘같은 색깔이 들어 있을까요? 정말 눈부신 희망과 기쁨이 들어 있을까요?
* *
쌍둥이 누나는 항상 나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학교에 가고는 했어요.
누나들이 먼저 학교에 간 뒤에 나는 혼자 밥을 먹었어요. 그리고 시간표와 책이 잘 맞는지 밤마다 하나누나가 검사를 한 책가방을 등에 메고 계단을 하나씩 천천히 내려가지요. 누나들은 쉽게 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오지만 나는 발 하나를 먼저 내린 다음에 다른 한 발을 먼저 내린 발과 나란히 해야만 해요.
그러니까 누나가 계단 두개를 내려 갈 때에 나는 하나밖에 내려갈 수가 없어요. 그래도 계단을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계단을 내려갈 때에 엄마 생각을 많이 하니까요. 늘 내 손을 잡아 주셨던 엄마 말이에요. 혼자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누구든지 나를 자세히 보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어요. 맞아요. 사람들은 볼 수 없지만 엄마가 늘 내 손을 잡아 주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내가 뒤뚱거리며 혼자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줄 알지요. 하지만 그건 마음의 눈을 뜨고 나를 자세히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 손을 잡아주고 있는 우리 엄마를 보지 못하는 거여요.
3층에 사시는 아저씨도 계단에서 나를 만나면 내 손을 잡고 있는 엄마를 보지 못하고 나를 번쩍 안아다 아파트 마당에 내려다 놓고는 해요. 그 순간, 내 손을 놓친 엄마는 계단에 넘어지며 울고 말지요. 3층 아저씨가 싫었어요. 그래서 3층 아저씨가 계단을 내려가는 7시 50분에는 절대로 나가지 않았어요. 7시 40분에 나갔다가 계단 중간에서 아저씨께 붙들려 내려 간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꼭 8시가 되어야만 계단을 내려가요.
오늘도 8시에 내려 왔어요. 자칫하면 학교에 지각을 하기 때문에 아주 빨리 걸어야만 해요. 그래서 저만큼 학교가 보이는 곳까지 뛰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쌍둥이 누나들이 나타났어요. 누나들은 나를 보자마자 왜 그렇게 늦게 오느냐고 야단을 했어요. 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했어요.
“누나들이 학교에 지각했겠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어.”
하나누나가 내 어깨에 있던 가방을 받아 들었어요. 나는 싫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하나누나 가방은 더 무겁거든요.
“누나, 가방 이리 줘. 내가 메고 갈 거야.”
“괜찮아. 누나가 들고 갈 거야. 너는 빨리 걸어야 해.”
그런데 참 이상했어요. 학교가 저만큼 보이는데 누나들은 학교 가는 길 반대방향으로 가는 거여요.
“누나, 학교는 저기야. 왜 다른 길로 가는 거야?”
누나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나는 걱정이 되었어요. 학교에 가지 않으면 선생님한테 혼날 것이고, 그리고 할머니한테도 혼날 것이 분명하니까요. 내가 누나들을 따라가지 않고 서 버리자 아무 말 없이 조금 앞서서 걷던 두나 누나가 뒤돌아 와서 말했어요.
“엄마 만나러 가는 거야. 너 엄마가 보고 싶지?”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저 쪽 길 건너 커다란 나무에 앉아 있던 비둘기 떼가 화드득 날아가는 것만 보였어요. 맞아요. 엄마 만나러 간다는 누나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앞에는 하얗게 눈부신 빛만 보였어요. 빛은 모두 흰 새 떼가 되어 하늘을 덮는 거여요. 어지러웠어요.
“정말? 정말 엄마를 보러 가는 거야?”
누나들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어요.
“엄마는 어디에 계셔? 응? 어디에 계신 거냐고? 정말 엄마 계신 곳을 알았어? 어떻게 엄마를 찾았어?
하나누나는 대답대신 말없이 내 머리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어요.
“그런데 왜 이제 말하는 거야? 응? 어제 말해 주었으면 오늘 아침에 누나들이 학교 갈 때 나도 일찍 나왔을 거 아냐?”
나는 그만 울고 말았어요. 엄마를 보러 간다는 누나 말에 그 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하나누나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었어요.
누나들과 역으로 갔어요. ‘대천’이라고 써진 표를 사고 플랫홈으로 나갔어요.
엄마를 만난다는 사실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어요. 차창 밖을 내다보아도 무엇이 지나가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쌍둥이 누나도 아무 말 없이 꼼짝 않고 앉아 있기만 했어요. 그러다가 먹을 것을 파는 아저씨가 지나가면 나에게 물었어요.
“하늘아, 뭐 좀 먹을래?”
나는 싫다고 말했어요. 그러면 누나는 더 권하지 않고 입을 꼭 다물었어요. 누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어요. 그런 누나를 붙들고 또 물었어요.
“정말 엄마를 만나러 가는 거지?”
“응. 정말이야. 엄마가 우리를 찾으신대.”
“엄마가 우리를 찾아? 왜 이제서 찾아? 왜 이렇게 늦게 찾은 거야? 응?”
나는 또 울고 말았어요.
“울지 마.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하지만 나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지 않았어요.
참을 수 없을 때 억지로 참는다면 그게 더 바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털보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 주었으니까요.
박은자동화작가 / 온양 예은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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