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민관 그라쿠스 형제와 기독 정치인
호민관 그라쿠스 형제와 기독 정치인
  • cwmonitor
  • 승인 2009.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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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수 / ‘희년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연구위원

“들짐승도 날짐승도 저마다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로마 시민들에게는 햇볕과 공기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집도 없고 땅도 없이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헤매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이제 자기 것이라고는 땅 한평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기원전 134년 여름, 호민관 선거를 위한 평민 집회에서 29세의 청년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연설은 로마 평민들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고대 로마에서 호민관 제도는 원로원의 귀족 계급에 대항하여 평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는데, 제 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에 승리한 직후인 이 당시에는 그 대립이 극심했다. 그것은 귀족들의 토지 독점과 자작농의 몰락 때문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토지는 권력과 부의 원천이다. 로마는 전쟁에서 이긴 나라의 토지 일부를 몰수하여 국유지로 삼고 이 국유지를, 한 개인과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하여, 아주 적은 임대료를 받고 자국민에게 빌려주었는데, 이 국유지 임차권은 상속과 양도가 허용되어 사실상 사유지와 같았다.

귀족 계급은 법으로 규정된 상한선을 무시하고 이 국유지 임차권을 독점하고 노예를 이용하여 대토지를 경영하면서 막대한 부를 획득했다. 반면 평민의 절대다수인 농민들은 병역에 종사한 뒤 귀향해 보면 자신이 없는 동안 가족노동으로 얻은 수확물은 노예를 부리는 대규모 농장의 값싼 수확물에 밀려 팔리지 않거나 가격이 폭락하여 곤경에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농민들이 곤경을 타개하기 위해 빚을 지게 되었고, 이 부채 때문에 땅을 빼앗기고 실업자로 몰락하여 수도 로마로 흘러들어 엄청난 사회 문제가 되었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만연해졌다. 그 결과 연전연승을 자랑하던 로마군도 급격히 전투력이 약화되어 에스파냐에서 일어난 반란군에 패배하고 시칠리아에서 일어난 노예 반란에 대해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 앞에서 청년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그 원인이 불의한 토지 제도에 있음을 직시하고 호민관에 출마하여 토지 개혁 법안을 제출했다. 그 골자는 이미 법으로 규정된 임차 국유지의 상한선을 회복하고 그 이상의 토지를 임차하고 있는 자는 그것을 국가에 반환하고 국가는 대신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농민에서 무산자로 전락한 이들에게 반환된 토지를 나눠 주어 자작농에 복귀시킴으로써 로마 시민층의 기반을 건전하게 하고 실업자를 구제하는 동시에 사회 불안을 해소하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무산자들이 농촌에 다시 정착하는 데 필요한 보조금을 국가가 지불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그러나 대지주인 원로원의 귀족들은, 겉으로는 개인에 대한 귀농 보조금을 국고에서 지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속에 감춘 가장 큰 이유는 부정 임차 토지의 반환에 따른 막대한 부와 기득권의 상실이었다.

귀족들의 지연 전술과 반대 공작으로 토지 개혁은 실행되지 않은 채 1년이 지났다. 호민관의 임기는 1년이었기 때문에,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 결국 1년 후 다시 호민관 선거에 출마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지지파와 반대파의 충돌로 혼란에 빠진 평민집회에서, 귀족들에 의해 300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쇠몽둥이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 후 그의 아홉 살 아래 동생인 가이우스 그라쿠스 역시 29세에 호민관에 취임하여 토지개혁을 시도했으나, ‘반역자는 재판 없이 죽일 수 있다’는 초법적인 ‘원로원의 최종권고’에 의해 지지자 3000명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몇 세대가 지난 후 그들의 정신을 계승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들의 염원은 실현된 것이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이 시대의 정치와 경제 현실 속에서 그라쿠스 형제를 생각한다.
가장의 실직으로 밥을 굶는 결식아동과 깨어지는 가정, 노숙하며 유리하는 빈민들을 바라보며 묻는다. 국회의원 중에 그라쿠스 형제와 같이 생명을 바쳐 백성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진정한 호민관(護民官)이 나올 수 없는가?

실업과 불황의 근본적 해결 대안이, 가만히 앉아 놀고먹는 지주들에 의해 도적질 당하고 있는 매년 100조원에 달하는 지대(地代, 토지사용의 대가)를 거의 전부 과세, 징수하여 원소유자인 사회 공동체로 돌리고 대신 생산 활동과 일자리 창출을 제약할 뿐인 여타의 세금을 대폭 삭감하는 ‘지대조세제’에 있음을 통찰하고,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이 ‘혁명과 같은 개혁’을 시도할 수 있는 진정한 호민관이 나올 수 없는가?

지난 군사독재 시절에 시인 김지하는 담시(譚詩) ‘오적(五賊)’을 발표하여, 나라의 큰도둑 다섯으로 재벌과 고위 공무원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등을 풍자했다. 몇 해 전 공직자 재산 공개 때 이들 오적은 다섯이 아니라 실상은 하나, 곧 투기를 목적으로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지주로 드러났다.

이들 중에서 이 ‘도적’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는 진정한 호민관이 나올 수 없는가? 그라쿠스 형제도 모두 몽둥이와 칼에 죽었으니 이 혁명과 같은 개혁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정하고 포기해버리는 이 ‘믿음이 없는 시대’에, 주의 영광을 위해, ‘토지는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하고, “하나님이 하시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에 찬 기도와 순종으로, 피 흘림 없이 비폭력 혁명을 이루어낼 수 있는 진정한 기독인 호민관을 교회가 기르고 배출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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