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 공간의 ‘빈 사이’를 보는 사람
에니어그램 / 공간의 ‘빈 사이’를 보는 사람
  • cwmonitor
  • 승인 2009.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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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사에는 무려 19년 동안이나 칼을 갈지 않아도 여전히 그가 사용하는 칼날이 전혀 무디어지지 않았다는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 포정이 등장한다. 문혜군(文惠君)의 주방장이기도 했던 그는 소를 잡는 데 도통하여 소 한 마리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웠다.

뿐만 아니라 어찌나 능수능란했던지 손 놀리는 것이나 어깨 위에 둘러매는 것, 발을 내디디는 것, 무릎으로 밀어치는 동작, 살점을 쪼개는 소리, 칼로 두들기는 소리가 마치 뽕나무 숲에서 춤을 추듯 음악에 맞고 조화를 이루었다. 이를 보고 감탄한 문혜군이 말했다.“정말 훌륭하도다! 경지에 이르는 비결이 무엇인고?”

그러자 포정이 말했다.“소인은 항상 도(道)를 위해 몸 바쳤습니다. 도는 단순한 기술보다 고상하지요. 제가 처음 소를 잡았을 때는 소 전체가 눈앞에 보였습니다. 그러나 3년 정도 지나니 소를 보지 않게 되더군요. 지금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봅니다. 즉, 육감의 지배를 받기보다는 오직 마음으로 일을 하지요. 그래서 소의 신체 구조를 따라 뼈마디와 마디 사이로 칼날을 놀립니다. 자연히 살점과 심줄은 건드리지도 않고 큰 뼈를 다치지도 않지요.”

이것은 《장자(莊子)》의 양생주편(養生主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포정(丁), 그는 지금까지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단 한번도 칼을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그 비결은 뼈마디에 있는 틈새로 얇디얇은 식칼의 날을 밀어 넣는 데 있다고 했다.그가 사용하는 칼의 칼날은 언제나 숫돌에서 갓 갈아낸 것처럼 예리했다고 한다.

뼈와 살 사이의 공간을 보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한다. 남들이 모두 안 된다 라고 할 때, 불가능을 말할 때 그 막막함의 현실 속에서 공간의 틈새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의 달인이다. 손자는 그의 병법에서 하늘이 주는 때(天時)와 땅이 주는 공간의 이로움(地利)과 인화(人和)를 이루는 것이 모든 승리의 요체임을 설파했다.

인생의 성패는 여기에 달려 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시간과 공간과 인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가 마르지 않는다. 부자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사람이다.

보이는 세계이건 보이지 않는 세계이건 공간의 지평이 넓은 사람이 힘이 있는 사람이다. 피아노의 음과 음 사이의 공간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백건우는 그래서 피아노의 대가가 되었다. 고은 시인의 그리움이라는 시구처럼 “그 사람이 그리워하는 곳 까지가 그 사람이다”.

예수는 산상수훈의 가르침에서 남들이 알아주느냐 여부에 목매는 피곤한 인생을 살지 말고 자신 안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마6“5-6) 자신 안에 골방이라는 은밀한 공간이 없는 자는 자기 과시하느라 인생을 허무하게 살게 된다는 교훈을 주신 것이다. 내가 나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종교적 연극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내면의 공간이 없는 사람들은 타인을 수용할 수 없고 용서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약자를 무시하는 인격의 비열함을 드러낸다.

그들은 하나님을 단독으로 만나고자 하거나 자기 변화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의 상은 이미 자기 과시로써 받을 상을 지상에서 다 받았기 때문에 장차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다.

기도란 세상의 소음에 문을 닫고 자기 내면의 골방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동안 내가 잃어버리고 무시하고 있던 골방 속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골방은 침묵의 공간이다. 그 골방에서 우리는 진실의 혀가 풀려지는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앞일에 대해 걱정하느라 여념 없던 내 머리가 쉬게 되고 후회와 질책에 시달리던 가슴이 고요해지게 된다. 고요함은 모든 깨달음의 길로 가는 시작점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내 자신을 시달리게 하는 모든 괴로움이 사라져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경험이 나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기도의 골방에서 우리는 쉼을 얻는다. 내가 나를 풀어 놓아 자유하게 한다. 내가 나를 얼마나 난폭하게 다루어 왔고 나를 스스로 단죄하면서 불평불만의 독침을 놓아 왔던가를 알고 그 행위들을 멈추게 된다. 인간이 찾아야할 본향은 자기 안에 있다. 예수는 그것을 골방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지성소와 같다.

지성소에는 대사제만이 들어 갈 수 있었다. 그 공간 안에는 그 누구도 들어 갈 수 없었다. 나의 지성소에는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만이 들어오셔야 하는 데 우리는 나의 지성소를 온갖 염려와 걱정들로 채우고 있지 않은가. 에니어그램 영성의 핵심은 바로 이 주제에 있다. 지성소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었다. 그 불은 지금 내 안에서 타오르는 영혼의 불이다.

지성소로서의 골방을 찾게 될 때 우리는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알게 된다. 신의 형상으로서의 존재. 나로서의 나인 존재를 알게 된다. 골방은 하늘로 통하는 통로이다. 거기에서 나는 영혼의 건강을 찾게 되고 자비로운 아버지의 마음을 회복한다.


이병창 목사 / 시인·진달래교회 moam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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