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 존재의 양 날개- 마르타와 마리아
에니어그램 / 존재의 양 날개- 마르타와 마리아
  • cwmonitor
  • 승인 2009.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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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목사 시인·진달래교회

존재의 특성은 양면성이 있다. 특히 동양 사상의 음양 이론은 이 부분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어둠과 빛, 하늘과 땅, 땅과 바다, 남자와 여자, 정과 동, 내향성과 외향성, 원심력과 구심력... 등의 상대성은 인간과 이 세계의 이치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지혜이다.

에니어그램의 도형은 각 힘의 중심인 3,6,9 번의 좌우에는 원심력으로써의 에너지와 구심력으로써의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회전하는 에너지의 중심에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작용한다.

가슴형의 중심인 3번 유형은 밖으로 나가는 에너지인 2번과 내면으로 들어가는 4번 유형이 있다. 머리형의 중심인 6번 유형은 원심력은 7번 구심력은 5번 유형이다. 장형의 경우 중심 9번의 원심력은 8번 구심력은 1번 유형이다.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고 사랑을 전달하는 방식에도 이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마르타와 마리아 두 자매의 이야기에 적용해 보자. (루가 10:38-42)
어느 날 마르타는 자기 마을에 들린 예수 일행을 자신의 집에 모셨다. 그리고 접대 준비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의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었다.

마르타는 마리아의 그런 모습에 화가 나서 “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봉사하라고 하는 데 어찌 이를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도와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그 때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마르타, 마르타, 너는 걱정하며 많은 일에 마음을 쓰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부분을 택했다.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아서는 안된다”

에니어그램에서 봉사자라고 일컬어지는 2번 유형 마르타는 예수의 일행을 보는 순간 자신의 좋은 이미지, 곧 헌신적이고 착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그래서 마르타는 온갖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고 지나치게 걱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자신이 이미 정해 놓은 방식으로 과도한 접대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각본대로 짜여진 방식의 손님 역할을 그녀는 예수에게 배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님을 잘 접대하는 주인으로서의 평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에 대하여 예수는 당연하게 만족하여야만 하고 동생인 마리아는 자신을 도와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바로 이런 확신은 자신의 태도는 마냥 옳고 마리아는 잘못되었다고 하는 판단 분별과 공격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동생의 그릇된 태도를 당연하게 꾸짖어야만 한다고 하는 요구를 예수에게 하게 된 것이다. 상대방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열심히 베푸는 사람의 특징은 사소한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상처를 받게 된다. 그 감정의 상처는 내면의 공격성을 자극하고 즉각적으로 짜증과 험담으로 나타나게 된다.

에니어그램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2번 유형을 지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고치에서 나오고자 몸부림치는 나비를 도와줌으로써 날지 못하는 불구의 나비를 만드는 심각한 폭력을 봉사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명성과 좋은 평판을 위해 일하는 숨은 동기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즐거워야 할 봉사가 짐이 되어버리고 공격적 에너지로 환원되어 버린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신앙의 양면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4번 유형의 마리아와 외면으로 나가는 2번 유형의 마르타의 모습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로 편가를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새에게서 양 날개와 같다. 마르타가 없는 마리아는 개인주의나 영적 자기도취에 빠질 수 있다. 마리아 없는 마르타는 타인의 진정한 필요는 간과하면서 자신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주의로 나갈 수 있다. 예수는 지나치게 행동주의로 기울어진 마르타에게 마리아적인 요소를 그 상황에서 강조하심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촉구하셨다.

마르타는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밥상만 생각했었지 예수가 차려주는 진리의 밥상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주는 사랑보다도 받아 주는 사랑이 큰 것임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 역시 언제나 말씀 듣기 하나에만 몰입해 있었다면 올바른 무엇인가를 행하는 삶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 분의 말씀에 깊이 귀 기울이는 자들은 귀했다. 예수의 말씀은 들으려고도 않고 그냥 바쁘게 나대는 것을 봉사요 헌신이라고 강변하는 목소리는 드높았다.

기도와 묵상, 자신과 홀로 있는 시간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들의 관심은 많은 종교적 활동을 통한 업적 쌓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이 예수의 원하시는 바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어 볼 겨를이 없이 바쁘다. 예수는 그런 마르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 ‘하나’인 주의 말씀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분주한 활동을 방패삼아 자신을 숨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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