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과 국제적 토지 정의
여호사밧과 국제적 토지 정의
  • 박창수
  • 승인 2009.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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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수 연구위원 / ‘희년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모압과 암몬과 에돔 족속의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하자, 유다왕 여호사밧과 백성이 함께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은,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대하20:15-17)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을 "여호와의 전쟁"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왜 그렇게 선언하셨을까? 그것은 바로 ‘민족간 지계표의 준수’ 문제 때문이었다.

세 이방 족속의 연합군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사탄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땅이 아닌 가나안 땅에 대해 그들의 탐심을 격동시켰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닌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 되시는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처럼 그들 세 이방 족속에게도 각각 그 기업으로 땅을 주셨다. 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그들 세 족속의 땅을 침노하지 말라고 경계하셨다.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 모압을 괴롭게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게 말라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신2:4-19).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행17:26)시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것처럼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 오게”(암9:7) 하신 모든 민족의 주(主)이신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각각 일정한 땅을 그 기업으로 주사 평등한 토지 사용권을 모든 민족이 갖게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웃간에 지계표를 두신 것처럼, 민족간에도 지계표를 두셨다. 각 민족의 지계표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기에 이 지계표를 옮기고자 다른 민족을 침범하여 일으킨 전쟁은 본질적으로 그 민족에 대한 전쟁 이전에, 지계표를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일으킨 전쟁, 곧 하나님에 대한 전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본질적으로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이 아니라 그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사탄이 인간들의 탐심을 격동시켜 일으킨 전쟁인 것이다.

진실로 탐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하게 하는 근원이고, 바로 우상 숭배(골3:5) 그 자체이며, 죄와 사망을 낳는 근원(약1:15)이다. 사탄에게 미혹되어 격동된 탐심으로 부동산 매매 차익을 노리고 부동산 투기를 자행하면서, 만민에게 토지 사용권을 평등하게 나누어 주신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고 있는 현재의 지주들 역시, 그들의 행위가 전·월세 값 폭등 등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잔학 행위 이전에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전쟁 행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산 사람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치우쳐 저희를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이제 저희가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저희가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 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대하20:10-12). 온 유다 백성과 함께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세 이방 족속의 토지 사용권을 인정하고 침노하지 아니한 옛 이스라엘 선조들의 정의로운 행위와, 지금 이스라엘의 토지 사용권을 빼앗기 위해 침노한 세 이방 족속의 불의한 행위를 비교하며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호소한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20:12) 여호와의 전쟁을 위해 하나님의 군대로 모집된 교회가 드려야 할 기도는, "인생 스스로는 능력도 없고 작전도 없으니 오직 하나님만 바라봅니다."라는 정직하고 겸비한 고백이다.

막강한 지주 권력 앞에 맞서 희년적인 토지 정의의 실현을 위해 싸우는 소수의 힘이 너무 미약해 보여, 희년적인 토지 정의가 신앙 양심에 옳고 또 현실의 빈곤과 제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매우 실제적인 대안이라는 것에 동의하고도 "이것이 과연 실현 가능합니까?"라고 되묻는 사람들의 현실 인식처럼, 이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이 우리 쪽에 능력이 없고 또 능력이 없으면 탁월한 작전이라도 있느냐 하면 그다지 뾰족한 수도 없다는 것을 정직하게 고백하면서, 겸비하여 주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는 기도이다. 여호사밧이 그렇게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이 전쟁이 여호와의 전쟁이며 유다 백성은 두려워하지 말고 항오를 이루고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자 여호사밧은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었고, 온 유다 백성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드렸으며,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은 심히 큰 소리로 여호와를 찬송하였다.

그리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이렇게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대하20:21). 여호와의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것은 찬양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향해 진격하는 이스라엘에게 유다 족속을 먼저 보내라고 말씀하셨다. "유다"의 말뜻은 "찬송"이다. 유다를 먼저 보내라고 하신 것은 전쟁에 임한 하나님의 군대에게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시는 상징적 의미일 수 있다. 실제로 전도지(傳道地)와 같이 영적 전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찬양의 위력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족속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였더라.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뿐이요 하나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대하20:22-24) 찬송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무리들은 자멸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숨겨 두사 세 이방 족속을 치게 하신 복병은 과연 누구일까? 이스라엘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단지 항오를 이루고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이 복병은 천군이라고 보인다. 하나님께서 하늘 군대를 보내사, 하나님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킨 무리들이 내분을 일으켜 자멸하도록 하셔서 그들을 쓸어버리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 가족과 민족에게 나누어주신 평등한 토지 사용권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지계표를, 자신들에게 힘이 있다고 제 멋대로 옮기며 빈민을 학대하고 공의를 박멸하는 무리들에 대해 하나님은 하늘 군대로 진멸시킬 것이다.

“여호사밧과 그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취할새…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취하고 제 사일에 무리가 브라가(송축)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대하20:25-26) 우리 역사 가운데에도 함께 모여 승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브라가 골짜기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여호와께서 친히 싸우시고 승리하실 것을 믿기에 우리는 불신앙의 눈으로는 절망적인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승리를 미리 맛보며 찬송할 수 있다. 희년적인 토지 정의를 실행하려는 사람들이 대적에게 공격받고 위협받는 지금 이 곳이 바로 브라가 골짜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 한고로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 하나님이 사방에서 저희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대하20:29-30).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그 권능을 나타내시면, 어떤 불신자도 권능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힐난하던 무리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평화가 임할 것이다. 불의 가운데 강요된 거짓 평화는 사라지고 정의가 우뚝 선 참된 평화가 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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