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 개의 길 늑대의 길
에니어그램 - 개의 길 늑대의 길
  • cwmonitor
  • 승인 2009.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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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목사 시인·진달래교회 moamm@hanmail.net

인간의 본성 안에는 잘 길들여진 개처럼 살고자 하는 욕구와 황야의 늑대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누가 복음서의 집나간 탕자의 이야기처럼 집 안을 잘 지키는 큰 아들의 길과 집 나가서 고생하다가 철들은 작은 아들의 경우도 이 예에 해당될 것이다. 에니어그램은 이 두 욕구의 조화가 개인이나 사회에서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인이나 사회가 발전하려면 늑대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모두가 고시공부하고 공무원 시험에 목매는 사회로만 달려가면 사회의 발전적 추동력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늑대의 에너지가 죽어버린 사람은 영적 성장이 멈추어 버리게 된다는 점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쪽의 인간 본성을 살려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영혼의 길 구도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자기 존재의 내면에서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에 응답하는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이었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어이없게 사형 당한 후 그의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남을 헤치거나 도둑질 한 것도 아닌 진실한 철학자를 죽이는 그런 사회에 절망하게 된 것이다. 플라톤 보다 이십 살 연상이었던 안티스테네스는 스승을 살해한 세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스승처럼 노동자들과 어울리고 그들과 같은 옷을 입고 민중들을 계몽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무정부, 무소유, 무종교를 주장했다. 그의 제자가 되어 철저히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디오게네스이다. 디오게네스는 세계를 제패하여 이룩한 헬레니즘 문명의 부와 전통과 방식을 송두리째 거부했다.

그는 노숙자로 살았고 스스로‘개와 같은 생활’한다고 말했다. 디오게네스는 애완견이 아닌 거리의 개처럼 문명을 거부하고 무소유로 살아가면서 사람다운 삶의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이른바 견유학파의 시조가 되었다.

그는 사람이 많은 장터에서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외치고 다녔고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알렉산더 대왕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하라, 내가 모두 들어주겠다’ 고 했을 때 ‘햇빛을 쬘 수 있게 비켜주시오’라고 대답했다.

붓다는 왕궁과 왕국과 부를 다 버리고 거지가 되었다. 마침내?깨달음을 얻어서 ?수도로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크게 화를 냈다. 붓다는 무한한 빛과 침묵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그러나 붓다의 아버지는 그 침묵과 광채를 느낄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단지 한 명의 거지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만하면 됐다. 너는 충분히 바보짓하며 돌아다녔다. 이제 돌아오너라! 나의 문은 아직 열려 있다. 네 자신을 보아라. 황제의 아들이 자신의 왕궁이 있는 수도에서 음식을 구걸하고 있다. 너의 동냥그릇과 찢어진 옷을 보아라.

거의 걸레이다! 너는 네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냐? 나는 네가 부끄럽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 있고 나의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너는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지만 아직도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 있다. 돌아오너라! 거지처럼 다니지 말고… 황제가 되어라."그러자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거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황제가 되었습니다 - 그러나 어떻게 아버지께 확신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궁궐에 살 때 거지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이 왕국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때, 저는 거지였고 속박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저는 황제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아버지께 확신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제 제 속에서 흘러넘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합니다.”

행복의 조건이 돈과 권력에 있다고 믿고 그 신기루를 향하여 모든 사람들이 달려 갈 때 자신의 존재에서 찾아야만 한다고 외쳤던 그 목소리는 갈릴리 예수의 목소리와 통하고 있고 오늘날의 한국 땅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황금만능의 시대풍조와 가치관이 범람하는 현실 속에서 그에 대항했던 예수의 길은 공생애의 시작 전에 광야 사십일 망식 후의 세 가지 시험과 가르침과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잘 나타나고 있다.

예수는 이스라엘이라는 사회를 낡은 옷과 포도주를 담는 낡은 가죽부대로 비유하고 있다.(룩 5:36-39)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새 옷과 새 술 운동이었다. 벽의 벽지를 바꾸는 운동이 아니라 집을 새로 짓는 운동이었다. 그것은 인간의식의 새로운 변형이 일어나는 거듭남의 운동이었다.

생베는 당기는 힘이 있어서 헌 옷에 갖다 붙여 놓으면 낡은 옷이 찢어지게 된다. 발효 중인 포도주는 폭발력이 있어 낡은 부대를 터뜨리게 된다. 결국 예수운동은 낡은 세상의 가치관과 체제를 찢고 터뜨려 없애버릴 것이라는 뜻이다.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을 비인간화 시키는 모든 체제의 무너짐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있는 휘장이 찢어졌다고 복음서는 전하고 있다.

성전은 유대사회를 지탱해주는 근간이고 지성소는 그 핵심이다. 그런데 그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이다. 예수는 목숨을 던져 그 휘장을 찢었는데 오늘의 기독교는 그 휘장을 다시 꿰매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의심스럽다. 불의한 체제를 옹호하고 순응하고 하수인 노릇하는 데 앞장서 온 부끄러운 역사가 있었고 오늘날에도 그 모습은 여전하지 않은가.

새 옷과 새 포도주를 내 자신에게 적용해 보자. 나는 그리스도의 새 술로 익어가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낡은 구습에 젖은 옷을 입고 있는가? 나도 누군가에게 기쁨과 사랑과 평화의 존재가 되고 있는가? 아니면 절망과 고통이 되고 있는가? 자본주의의 물살 속에서 속절없이 떠내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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