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시간적 화해를 위한 내면 공간-2
자아의 시간적 화해를 위한 내면 공간-2
  • 김송배
  • 승인 2009.12.11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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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권 시집<전주시가도>


2. 전주에는 내 시간이 걸어간다.
  이제 임종권 시인이 작품을 통해서 고뇌하거나 갈등하면서 구현하려는 의식의 시간과 공간적인 의미를 추적해 보자.

내 외로움이 커지면
기린봉이 되어
전주시가를 바라본다

때론 하늘 위로 구름이 지날 땐
눈물에 젖던 나무들
그 사이로
좁은 길이 산 위를 향해
꿈틀거리며 달려가듯
내 추억이 기린봉으로 올라간다

늘 침묵으로 살아온 봉우리
그 아래 지도처럼 펼쳐진
전주시 거리마다
사람들이 지나고,
무수한 얘기도 흘러가고
내 시간도 걸어간다.

  우선 이 작품「기린봉 풍경」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임종권 시인의 ‘전주’에 대한 향수는 ‘외로움’에서부터 출발한다. 스스로 ‘기린봉이 되어 / 전주시가’에 ‘펼쳐진’ ‘추억’의 ‘내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임종권 시인이 확인하는 향수 공간은 기린봉 이외에 ‘전주’에 산재하는 모든 대상물로서 다양하다. 전주역, 중노송동, 노송동, 풍남동, 전주성결교회, 중앙동, 덕진공원, 다가공원, 완산칠봉, 풍남문, 팔달로, 풍남다방, 다가동, 서학동, 한벽루, 전주천, 가람시비, 경기전 대나무 숲, 다가교, 중앙동 1가 36번지 한옥집, 전신전화국, 미원탑, 교동, 완산동, 매곡교, 평화동, 팔복동, 신흥학교, 음악다방, 회현로 등 지명뿐만 아니라, 형숙이, 누이, 어머니, 아버지, 친구 은찬과 병렬이, 24살의 여인 등 대상 인물들이 있는가하면, 전주비빔밥, 교복, 과수원 복사꽃, 재봉틀, 홍등가, 한옥집 담장, 창, 가야금 산조가락 등 시각과 청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로 분포되어 있다.

   임종권 시인에게서는 이러한 사물들이 곧 자신의 생장과 상관된 상상력의 원류이며 시적 승화를 위한 발상의 현장이다. 누구나 고향은 삶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력을 부여한다. 더구나 시인의 고향에 대한 이미지의 형상화는 남다르다.

  그렇다면 임종권 시인이 발현하는 향수의 근원은 무엇일까. 위의 작품「기린봉 풍경」에서는 ‘외로움’이라는 전제가 이미 적시되었지만, ‘이제, 전주를 떠나면서 / 오랜 방황 끝에 머물다 가고 싶은 /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 그 벤치를 비워두고 / 그곳에 추억들의 그림을 남겨두었다(「달을 향해 하늘로 오르면」)’는 등의 시적정황은 ‘그리움’ 이라는 대전제를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종권 시인의 내면에는 ‘어머니’라는 외연(外延)의 존재 대상에 크게 집착하면서 향수의 범주를 벗어난 일종의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인식세계를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일상적 회상의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이방인이 된 듯한 운명의 기록이라는 인식 단정으로 유로(流露)하기도 한다.
 
중앙동 36번지가 아름다웠던 것은
어머니의 한복을 입은 여인들의
기억들이 다니고 있기 때문
지금도
가야금 운율처럼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는
바람이 되어 중앙동 거리를 걷고 있다.

  이「재봉틀」은 바로 어머니와 연관된 기억의 재생이지만, 임종권 시인이 간직한 정서의 기본축을 이루면서 형성된 시적 이미지의 총체적 시원(始原)이 되기도 한다. 그는 또한 ‘가야금 운율’이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로 합일시키면서 ‘바람’이라는 무형의 조화를 시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새로우면서도 ‘전주’의 특징이 생동하는 이미지를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임종권 시인의 뇌리에는 언제나 고뇌와 갈등의 흔적들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이 비록 어머니, 아버지, 누이와의 가족들 애환에서 단초가 형성되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기록으로 지나기엔 너무나 많은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이것은 작품「자화상」두 편에서 우리는 그의 방황과 고독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어머니의 찬 눈물이 고인 한과 아버지의 잃어버린 꿈속에서 태어나, 기억 없이 보낸 어린 시절이 현실 속에서 방황한다--중략--앞만 바라보다가 어느덧 내가 분열하고 그 속에서 꿈틀거리며 온몸을 찔러대는 내 길의 무수한 가시더미 사이로 세월만 간다 그 끝에서 누군가 한 그루 큰 나무로 서서 나를 보고 있다.
                     -- 「첫 번째 자화상」중에서

내 얼굴에는 세월이 간다
이마에 새겨진 잔주름은
어머니의 애환과
아버지의 방랑과
누이의 설움으로 엮어진 삶의 잔해들

--중략--

이따금 뒤를 돌아보면
발자국은 흔적 없이 흙먼지에 묻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침묵으로 서있다.
                       -- 「두 번째 자화상」중에서

  보라. 임종권 시인이 진실로 갈망하는 향수의 진원지는 바로 ‘어머니’이며 그의 가족이다. ‘어머니 의 찬 눈물’과 ‘아버지의 방랑’과 ‘누이의 설움’이 복합적으로 연계된 ‘자화상’에서 ‘전주’를 너무나 아프게 추억하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시적 발원의 주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통된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지난날 우리 모두의 모습이며 지금은 한낱 회상의 골짜기에 남아 있는 향수의 한 단면이다. 이러한 일상의 단순성을 시적으로 풀어보려는 임종권 시인의 정서는 ‘분열’과 ‘침묵’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적시되고 있어서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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