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빛과 어둠이 함께 살아간다
임종권 시인이 구가하는 또 하나의 의식세계는 기도를 통한 자기와의 화해이다. 그것이 그의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자아를 인식하는 하나의 단계로 삼는다. 이는 그의 기독교에 대한 신심도 시의 발상이나 이미지의 추출에 많은 여백을 제공하면서 주제의 명징화(明澄化)에 기여하고 있다.
우선 그가 취택하는 소재에서 ‘모두 예수이다’, ‘도시의 십자가’, ‘전주성결교회’, ‘교회 앞을 지날 때’, ‘기도’, ‘성탄절 감상’, ‘헌금을 내면서’ 등등 교회와 관련된 부분이 많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게 된다.
어둠을 빛과 함께 살면서
아침을 기다린다
빛은 어둠을 닫힌 공간에
숨겨 두고 밤에 쫓겨 아침으로 간다
어둠과 빛은 한 몸이면서
사랑과 미움으로 서오 바라본다
밤과 낮의 그림자가 내 몸 안에서
세상을 만들고 감정을 키운다
오늘 내가 존재하는 것은
빛과 어둠이 섞인 혼돈의 색채가
화산처럼 살아 있기에,
용암으로 녹은 묵직한 삶이
세월을 만들어 가기에,
바람으로 빛을 잡을 수 없어
어둠을 타고 아침을 찾아 간다
빛과 어둠의 색깔이
함께 있을 때 드러나듯이
내가 있기에 빛과 어둠이
함께 살아간다.
임종권 시인의 심저에는「빛과 어둠」전문에서 보는 바처럼 존재와 인생에 대한 고뇌가 여전하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구원의 ‘빛’일지라도 암울한 사유의 정체(‘어둠’)를 지우지 못해서 고뇌하고 있다. 어쩔 수가 없다. 그의 존재 인식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해야 한다.
이처럼 공존은 화해를 의미한다. 현실적 외연과 내면의 진실이 괴리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존재 지표는 공(空)이며 허(虛)이다. 이는 절규와 호소로 분출되어 방황과 절망의 늪을 스스로 허우적이는 현대인들의 삶이다.
임종권 시인은 이러한 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설령 일상적 삶과 지성적 시인들의 지혜라고 억지스런 가치관을 누가 주창한다하더라도 그는 지적인 진실을 신뢰한다.
그가 ‘왜 하나님은 매일 궁색해야 하는지 / 이해하기 어려운 신앙이다(「헌금을 내면서」)’거나 ‘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양이 / 바람따라 하늘에 맴돌고 예수는 / 술취한 가난뱅이의 넋두리를 들으며 잠을 잔다(「성탄절 감상」)’ 또는 ‘가벼워라, 내가 지닌 믿음 / 난 그래서 알지 못한다(「주기도문」)’ 그리고 ‘내 귀에 들리는 절규가 커져가면 / 끝내, 예수 그리스도를 원망하다가 // 저만치, 벽에 걸린 십자가 앞에 / 나의 목소리만 무릎을 꿇고 있다(「기도」)’는 등의 비판적 어조도 새로운 가치관 창조를 위한 갈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고뇌와 갈등은 화해를 모색한다.
벽에 걸린 그림 한 폭은
너와 내가 있기에
늘 아름답다.
--「미술관」중에서
예수는 어디에 있는지 모두가 안다
내 안에서 내 영혼을 붙잡고 있는 자,
너였고 나였으며
우리 모두였던 세월마다 항상
바람처럼 다가오는 사람은 예수이다.
--「모두 예수이다」중에서
임종권 시인은 처음부터 모든 작품에 ‘너와 내’라는 시적 화자를 고르게 배치함으로써 화해를 시도하였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칭대명사 ‘나’와 ‘너’를 대입하여 작품의 구도를 설정하고 전개한 사실은 그가 의도적으로 자아(自我)와 대아(對我)의 상호 화해를 탐색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아(어둠)와 대아(빛)의 조화는「도시의 십자가」에서 ‘빛이 스스로 드러낼 수 있는 것도 / 빛이 없는 어둠이 옆에 있기에’ 더욱 확연해지고 있으며 임종권 시인의 내면에 잠재한 공허가 ‘지금 빛으로 존재하고 있는 / 세월과 함께 내가 가고 있다(「가로등」)’는 인식으로 단정하고 있다.
임종권 시인이 시의 축으로 삼는 신심은 바로 그의 진실이며 이를 바탕으로 시적 상상력을 확대하는 것은 바로 그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현실적 상반된 부조화로 인한 갈등과 내면의 진정한 심미적 가치가 더러는 충돌하고 대립하여 끝내 절망하더라도 이를 결합하고 수용하려는 조화의 정서가 ‘빛’과 ‘어둠’의 이미지로 순환되고 있는 것이다.
5. 나가면서
임종권 시인은 이제 이러한 불투명 속에서도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분사한다. 향수로 젖은 사유의 향방이 자아에 대한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고독하며 불투명한 존재를 예감한다.
다음 「발걸음」전문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가는 길에
저만치 적막이 기다리고 있다
가로수처럼 길가에 늘어선
삶의 기억들은 벌써 낙엽이 되어
바람에 떨어지고 있는데
가야할 길이 너무 멀기만 하다
가다가 잠시 나무 밑에 앉아
앞을 보면 누군가
내 앞에서 걸어갔던 흔적들이
먼지가 되어 길바닥에
내려앉고 있는 동안 내 발걸음은
그 위로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길은 내 등 뒤로 뻗어 있어
또 누가 그 길을 걸어올지 난 몰라도
아마, 나같이 고독의 바람만 만나리라
길이 어느 곳으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나 혼자 상상으로
걷고 있을 뿐, 이미 그 길을 지나갔던
사람들처럼 내가 가야할 이유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새가되어 하늘로 날고 있다.
임종권 시인의 시세계의 대미를 장식하는 진솔한 언지이다. ‘기다림’과 ‘고독’과 ‘불투명성’이 고르게 적시된 ‘발걸음’이다. 이것은 바로 그의 인생관이 곰삭은 자아 성찰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의 고독은 영혼에의 지향이다. 임종권 시인의 시학은 영혼에로 지향하는 고독이 숨어 있다. ‘서 있는 나무들도 모두 혼자이다 / 태양도 빛을 내며 홀로 살고 / 달도 혼자 걸어간다’, ‘혼자인 모두가 숲은 이루어 / 존재하는 이유를 갖고 있다(「숲」)’는 결론을 제시한다.
그렇다. 임종권 시인은 이러한 인생적, 시학적 주제의 결론을 이미 그의 내면에 확고하게 철학으로 굳어져서 ‘깊고 깊은 과거에 뿌리를 내린 채 / 땅을 딛고 일어나 / 다시 떠난 햇빛을 기다(「늦가을 오후」)’리고 있는 것이다.
그 ‘기다림’은 희망이며 ‘그리움’이다. 어쩌면 시인의 기대에 못미치는 기다림일지라도 우리 인간들은 기다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임종권 시인도 이렇게 시창작을 통해서 ‘존재하는 이유’를 찾고 그 가치관의 승화를 위해서 사물에 대한 상상적 세계를 구축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임종권 시집 『전주시가도』의 특징은 보편적인 체험에서 출발한 향수를 원류로 해서 사랑의 의미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존재의 이유를 추적하고 있다. 이 존재는 바로 자아의 인식과 성찰의 내적 진실을 투영하는 단계에서 현실적 모순이나 불확실성을 때로는 비판하면서 그의 신심과도 갈등이 일어나지만, 어쨌거나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에 그는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임종권 시인에게 귀결된 시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런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예수에게」)’와 같이 그의 간절한 기원도 결론적으로 기다림을 전제로 하는 근엄한 성찰이며 그 성찰을 통한 화해로서 임종권 시학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옛날 백거이(白居易)의 명언처럼 ‘시란 정(情)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는 시창작의 기본을 축으로 한 더욱 좋은 작품을 제2시집에서는 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