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건국 무렵인 10세기 초 동아시아는 중심축이던 당(唐)이 무너지면서 격동의 시대로 돌입했다.
중국 대륙에서는 50여년간 5대 10국이 흥망을 거듭하면서 힘의 공백상태가 발생했다. 이후 북방민족과 중원왕조가 경쟁하는 혼란의 시기가 시작된다. 이러한 역사적 시·공간의 한가운데 있었던 고려는 셀 수 없을 만큼 수없는 전쟁을 치렀다.
‘고려, 북진을 꿈꾸다’는 500년 고려시대 전쟁사를 담은 책이다. 강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이 고려를 동북아의 강자로 만들었고, 고려가 획득한 성취는 상당한 성과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한국사에서 전쟁은 지나치게 국난 극복사로 이해되거나 서술돼 왔다. 지은이는 일제 강점기와 1970년대 유신 독재를 거치는 동안 역사에서 자긍심과 향수를 찾아내려는 이데올로기적 경향이 강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동아시아에서 한족이 독점적으로 군림하던 판도를 깨고 파란을 일으킨 거란(요)과의 전쟁, 한국 역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대외정벌인 여진 정벌, 세계제국 몽골에 대한 항전 시기 그리고 홍건적과의 전쟁 등 고려의 전쟁을 네 갈래로 파악했다.
한때 수도 개경이 함락되고 국왕이 파천까지 했음에도 고려가 거란을 격퇴하고 승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지, 고려가 여진 정벌을 실패한 이유는 어떠한지, 대몽항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홍건적과의 싸움에서 고려군의 활약이 어떠했는지 등을 재조명한다.
아울러 고려가 싸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왜 고려로 쳐들어왔는지, 전쟁 국면에서 고려가 내린 선택은 어땠는지 등을 이해하려면 시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당시 국제 정세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저자는 “당시 국제 정세나 상대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다면 그저 외침을 극복했다는 지난한 전쟁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며 “복잡다기한 국제 정세 속에서 행한 고려의 주체적인 생존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해은 지음, 328쪽, 1만8000원, 플래닛미디어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