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에 남을 대통령
청사에 남을 대통령
  • 노창현 뉴욕 특파원
  • 승인 2010.01.22 1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이 산유국(産油國) 부럽잖은 산전국(産電國)이 된다는 꿈이 마침내 실현됐습니다. 구랍 27일 들려온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의 원전 수출 성사는 400억 달러에 이르는 계약액의 규모도 놀랍지만 궁국적으로 전기를 수출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석유 자원은 없지만 전기라는 자원을 생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는 것은 정말 짜릿한 소식입니다. 더구나 그 상대가 중동의 대표적인 산유국인 UAE라는 것은 얼마나 상징성이 큰지요.

원전 수주가 결정된 후 대부분의 언론은 다양한 기사로 기쁨을 표시했고 일종의 끝내기를 한 이명박 대통령의 노고를 칭송했습니다. 물론 시작은 전임 대통령 시절부터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뚜껑을 열기 전까지 결과를 아무도 알 수 없없다는 점에서 칭찬에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보 언론의 냉정한 평가 또한 폄훼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될 것입니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기 마련입니다. 모두가 좋은 면만 부각하고 장밋빛 전망만 한다면 미처 짚지 못한 문제점이 우리 발목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다’는 사기(史記)의 유후세가(留侯世家)나 사서삼경의 ‘군자신기독야(君子愼其獨也)’처럼, 무릇 군자는 홀로일 때 조심하라는 뜻의 신독(愼讀)은 시공을 관통하는 지도자의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원전 수주는 지난 10월19일 한승수 전 총리에 의해 예고되었습니다. 당시 뉴욕을 방문한 한 전 총리가 뉴욕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새로운 에너지 수출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가 산전국으로 탄생한다”면서 “빠르면 연내 좋은 소식이 들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어 월스트리트저널이 11월16일 B섹션 1면톱으로 “한국이 세계 최대의 원자력발전소 프로젝트의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다”며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한국이 최종 승자가 되면 사상 첫 핵원자로 수출의 신기원을 이룩하게 된다”며 그 가능성을 한결 높였습니다.

1978년 고리원자력발전소를 시발로 한 원자력발전이 이제는 국내 전기 총생산량의 35%를 맡을만큼 비중이 커졌고 바야흐로 막대한 수출 자원으로 부상한 현실이 흐뭇한 감회를 불러 일으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원자력발전 선진국이 되려면 중요한 선결 과제가 있습니다. 바로 핵 문제입니다. 핵개발을 끝낸 북한은 6~10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고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등 다양한 핵무기 생산 기반을 다져놓은 상태입니다. 현실적인 핵무기의 위협 앞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핵우산 밑으로 들어가는 방법뿐입니다.

핵을 방어하기 위해 남이 펴 준 핵우산을 쓰고 있다는 것, 한편으로는 처연한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우리도 자위 차원에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핵과 핵의 싸움은 공멸입니다.

만일 60년 전의 조잡한(?) 히로시만 원폭이 수도 서울에 떨어질 경우 그 자리에서 50만 명이 죽고 수도권이 초토화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고 보면 오늘날 가공할 수준의 핵무기가 어떤 재앙을 가져올 것인지는 불보듯 훤한 일입니다.

가장 좋은 해결점은 물론 모두가 비핵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핵보유국으로 인정된 소수의 국가들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은 핵사찰을 받아야 하는 NPT의 질서 아래 강제돼 있습니다.

한국 최고의 핵전문가 중 하나인 한국국방연구원의 김태우 박사는 지난해 뉴욕 강연에서 1991년 한국이 자충수를 둔 남북한 비핵화선언과 관련하여, 인질과 인질범이 사랑에 빠지는, 이른바 ‘스톡홀름 신드롬’에 한국이 빠진 게 아니냐는 비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1991년 11월8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한 비핵화선언을 하면서 대한민국에 단 한 개의 핵무기도 없으며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것까지는 좋습니다. 문제는 농축과 재처리도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김태우 박사는 이를 ‘바보 짓’이라고 질타했습니다.

타버린 폐연료봉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분리하면 보석처럼 소중한 자원, ‘목스(MOX)’라는 핵연료가 됩니다. 이걸 써야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는 겁니다. 재처리는 또다른 의미의 위상 강화를 가져옵니다. 일본은 일찍이 비핵 3원칙을 선언했음에도,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이 있는 록카쇼무라(六個所村)에 MOX 연료를 만드는 재처리공장을 함께 지었습니다.

현재 한국에 있는 수십개 원자력 발전소에서 매년 800~900톤의 폐연료봉이 쏟아지지만 1991년 비핵화선언에 발목을 잡혀 재처리를 못하고 ‘수조(水槽)’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습니다. 그나마 2016년이면 더 묻어놓을 데도 없다니 심각한 일이 아닌가요.

원전 수주에 마냥 좋아라 할 수 만은 없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기왕에 큰 일을 해낸 이명박 대통령이 비핵화선언에 발목 잡힌 우리나라의 족쇄를 푸는 장면을 그려봅니다. 그렇다면 진정 청사(靑史)에 남을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