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3D 아바타, 한국영화산업 먹구름
경이로운 3D 아바타, 한국영화산업 먹구름
  • 이문원<대중평론가>
  • 승인 2010.01.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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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바타'

영화 ‘아바타’가 세계를 열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개봉 17일 만에 전 세계에서 10억2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역대 최단기간 10억 달러 돌파 기록이다. 애초 10억 달러를 넘어선 영화도 ‘아바타’ 포함 5편밖에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실망스런 첫 주 흥행을 극복하고, 개봉 20일 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8일께에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 세운 외화 역대 흥행기록도 갈아치울 전망이다. 1월내로 1000만 관객 돌파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아바타’가 전 세계에 걸쳐 별달리 경이로운 오프닝을 기록하지 못하고도, 놀라운 뒷심으로 연일 후발기록을 경신하는 이유는 하나다. 소위 말해 ‘잇(It)’ 영화가 됐기 때문이다. 본래 시간이 지날수록 탄력을 받는 게 ‘잇’ 영화의 특성이다. 그렇다면 대체 ‘아바타’의 어떤 점이 ‘잇’ 영화로 이끌었을까. 이견의 여지가 없다. ‘아바타’는 ‘3D 영화의 전도사’가 됐다.

물론 이전에도 3D가 한국에 안 들어온 건 아니다. 그러나 ‘아바타’는 3D 효과를 현 시점 가능한 극한까지 올려놓은 경우다. 이러면 단순히 ‘새로운 3D 영화’에서 그치지 않게 된다. 시대 변화, 미디어 전환 등 갖가지 굵직한 이슈들을 한 데 모을 수 있게 된다. 애초 영화 관람이 유원지화 돼가는 현실도 한몫하고 있다. 서서히 대중에게 ‘아바타=3D, 3D=아바타’ 공식이 퍼져나갔다. 세계 어디서도 상황은 모두 비슷하다. 모두 ‘아바타’를 등에 업고 2009~2010년을 ‘3D 원년’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바타’의 3D 관람률이 40%대를 넘어서고 있다.

어찌됐건 새로운 미디어가 탄생됐다는 건 관객 입장에서 즐거운 일이다. 영화 장르는 탄생 100년 만에 조로했다. 장편 상업영화에서 마지막 신(新) 장르 개척은 1984년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로 시도된 모큐멘터리, 마지막 표현 혁신은 1995년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본다. ‘아바타’는 참 ‘간만에’ 등장하는 변화다운 변화다.

그러나 동시에 ‘아바타’를 통한 3D 영화 붐은 한국영화계로선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1980~1990년 중반까지 겪었던 극심한 할리우드 콤플렉스가 부활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따라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계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한국영화 르네상스’라는 기치 아래 할리우드 상업영화와 승부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해왔다. 파이를 급격히 부풀려 내수시장이 1000만 관객 동원까지 가능하게끔 이끌었다. 이를 바탕으로 100억~200억 원대 블록버스터급 제작비를 설정, 외연 상으로 어느 정도 할리우드 콘텐츠를 따라잡게는 됐다. ‘디워’처럼 미국시장에 직접 진출해 1000만 달러가량 벌어들이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3D 시대가 ‘아바타’를 통해 일찍 도래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3D는 같은 규모 영화를 놓고 볼 때 2D 제작비에서 30% 이상 더 든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3D는 배가량 비싼 1만3000∼1만6000원을 받는 것이다. 3D 기술이 정착되고 그만큼 값싸지는 동안, 거칠게 5~10년 정도 동안은 그 정도 부담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영화의 제작비 산출은 난제에 빠진다. 100억~200억 원대 적정 블록버스터 제작비는 3D를 전제로 했을 때 훨씬 작은 규모로 재책정 돼야한다. 할리우드 콘텐츠와의 경쟁력은 다시 1990년대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자칫하면 그 5~10년 사이 한국영화 시장붕괴가 이뤄질 수도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3D를 시도하지 않는 건 아니다. 가장 열정을 보이고 있는 건 한일월드컵 기간 당시 일어난 연평해전을 다룬 ‘아름다운 우리’다. 앙투라지의 ‘소울메이트’도 3D 제작 계획을 밝혔다. EBS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도 극장판 3D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한국이 아직 걸음마도 채 못 뗀 현 시점, 할리우드는 거의 모든 장르를 3D로 소화해낼 만큼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또 고도화시키고 있다. 애니메이션 3D는 이제 기본이다. ‘크리스마스 캐롤’ 등 블록버스터 3D도 흔하디흔하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3D’처럼 공포 장르도 3D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엽기 스턴트 다큐멘터리 ‘잭애스’까지도 그 3편을 3D로 준비하고 있을 정도다.

결국 ‘아바타’ 덕에 50개 정도에서 117개로 늘어난 국내 3D 영화관은, 상당기간 동안 할리우드 영화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어쩌다 한국 3D 영화가 등장한다 해도, 이제 막 신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한 수준으로는 한동안 승부가 힘들다. 1990년대 중반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단어를 등장시켜 애국심에 호소했던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이에 대해 주간한국 12월2일자 기사 ‘한국 3D 영화 총대를 메다’는 한국의 초기 3D 영화가 “영화의 정체성을 ‘3D’에 맞추기보다 드라마와 캐릭터를 중심에 두되 입체영상으로 보조하는 정도로 3D를 활용”하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며, “이 정도 제작비를 들인 영화라면 5백개 관 정도에서는 상영하게 마련인데, 3D 상영관의 개수가 그 정도에는 미치지 못할뿐더러 관람료 때문에 2D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 역시 공략”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기술 인프라도 같은 맥락으로 문제가 있다. 지난 10여 년 간 ‘할리우드 따라잡기’라는 모토 아래 뜨겁게 진행됐던 특수효과 기술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판국이다. 촬영 장비, 스테레오그래퍼 등부터 다시 해외 기술에 의존해야 한다. 국내 기술 이전을 전제로 한 계약이 검토되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한편, 3D를 통한 할리우드 영화의 독주 예상은 또 다른 곳에서도 예견된다. 불법 다운로드 시장의 문제다. 한 때 한국영화 극장흥행을 도와준 것이 불법 다운로드라는 말까지 돌았다. 일본, 중국 등지 영화는 상영 시차 탓에 DVD급 화질로, 시차가 거의 없는 할리우드 영화는 캠 버전으로라도 불법 동영상이 도는 반면, 한국영화는 불법 업로더들이 일정부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해운대’ 정도부터도 극장 상영과 맞물려 동영상이 돈다. 더 치열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 할리우드가 일제히 3D로 시장을 개혁해버리면 상황이 달라진다. 3D 영상은 불법 캠 버전이 거의 불가능하다. 미묘한 색감 차로 입체 영상을 만들어내기에 조금만 명암이 달라져도 효과가 잘 안 나온다. DVD 버전으로 들어오더라도 마찬가지다. 아직 DVD까지는 3D 체험이 옮아가지 않은 상황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 쪽이건 입체안경을 집에 구비해둬야 하는 문제도 있다. 또 3D 붐 자체가 유원지형 관람 형태의 대세를 가리키므로,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여럿이 경험하는 형태를 추구하게 된다.

결국 불법 다운로드 시장에서 여전히 기능할 수 있는 건 대다수 한국영화가 된다. 3D가 거의 없기에 다운받아 보나 극장에서 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할리우드 영화’와 ‘아무렇게나 봐도 상관없는 한국영화’ 차이는 크다.

이처럼, 사실상 한국영화는 현재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해있다. 거대 자본·기술국의 위상은 이토록 무섭다. 타국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을 진일보시켜놓고, 막상 따라잡으면 그간 선점해 확보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한다.

일본은 할리우드 3D 기술을 따라잡기 전까지 충성도 높은 시장으로 버틸 수가 있다. 픽사의 3D 애니메이션 열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포켓몬스터’, ‘도라에몽’, ‘명탐정 코난’ 등 2D 애니메이션 시장이 꿋꿋이 버티고 있고, 친숙한 TV드라마의 영화화도 안정적 시장으로 버텨주고 있다. 자국영화에 대해 기본 프라이드와 애착이 있는 프랑스 등 유럽 등지, 춤추고 노래하는 ‘마살라’ 영화들을 중심으로 독특한 취향을 구비해 경쟁력을 잃지 않는 인도 등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한국은 위험하다. 애초 ‘작은 할리우드’를 목표로 했기에 그렇다. 영화산업의 모든 요소가 그렇게 맞춰져 있다. 국내 정서대에 맞춘 가벼운 코미디나 멜로 영화 등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

‘아바타’ 성공은 그래서 마냥 웃고 즐길 일이 아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어마어마한 파문을 그려내듯, ‘아바타 1000만’을 통해 한국영화계의 희망이었던 ‘아시아의 할리우드’가 허상이었음이 입증될 수 있다. 결국 3D 기술 확보도 중요하지만, 할리우드 신기술에 언제라도 맞설 수 있는 갖가지 전략들을 지금부터라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세계 진출의 거창한 포부 이전에, 절대적인 한국형 시장, 충성도 높은 한국영화 시장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3D 이후엔 또 어떤 것이 등장할지 모른다. SF영화에서나 보던 장면들이 실체화될 수도 있다. 그때마다 몸살을 앓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시장붕괴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내수시장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사회과학적 접근부터 시도해봐야 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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