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나아갈길 '방자전'류에서도 찾아라
한국영화 나아갈길 '방자전'류에서도 찾아라
  • 이문원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0.06.10 11: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영화 '방자전'
 김대우 감독의 사극 ‘방자전’이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3일 오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관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일 개봉된 ‘방자전’은 개봉 첫날 전국 449개 스크린에서 약 16만5000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물론 지방선거일 특수라는 점이 감안될 필요가 있지만, 딱히 스타급이 출연하지 않는 성애영화로서 괄목할 만한 성과인 건 맞다.

‘방자전’은 고전 ‘춘향전’을 놓고 방자와 춘향과의 사랑, 출세를 위해 사랑을 이용하는 이몽룡, 그리고 이 둘에게 덫을 놓는 춘향 등으로 캐릭터 관계를 뒤집어 성애요소를 버무린 영화다.

이 같은 ‘방자전’의 성과를 미리 내다본 듯 먼저 짚고, 거기다 통시적인 분석까지 시도한 매체가 바로 인터넷 연예매체 스타뉴스다. 스타뉴스는 ‘방자전’ 개봉 전날인 1일 기사 ‘“벗어서 통하였느냐?”…역대 음란영화 흥행사’를 통해 “영화진흥위원회의 역대관객순위에 이름을 올린 영화들을 살펴보면 외화보다는 한국영화가 ‘벗었을 때 잘 통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0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영화들 가운데 섹스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던 영화는 대부분 한국영화”라면서 “수위 높은 노출로 관객들을 유혹하는 ‘야한 영화’의 흥행에는 언제나 좋지 않은 경제상황이 맞물려 있었다. 주가가 급락한 2002년 말에는 ‘색즉시공’이 있었고, 부동산 시장이 활황의 정점을 찍고 냉각기로 접어든 2003년 10월에는 ‘스캔들’이 개봉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발한 2008년 12월에는 ‘쌍화점’이 관객몰이에 성공했다”고 짚었다. 독창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기사는 “‘하녀’가 210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오는 6월에는 ‘방자전’과 ‘섹스 앤 더 시티2’가 관객을 찾는다. ‘헐벗은’ 이들 영화가 천안함 사태 및 남유럽 발 경제위기의 악재 속에서 재미를 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며 사실상 성공 예측을 날렸다.

이어 스타뉴스는 같은 날 게재된 또 다른 기사 ‘‘하녀’ ‘방자전’ ‘SATC2’, 후끈해진 스크린..왜?’에서 ‘미인도’ ‘쌍화점’ 등 성공한 성애영화의 공통점을 들어 “이런 영화들은 웰메이드를 추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단순한 자극으론 관객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색, 계’에 주부팬들이 움직인 것도 베를린영화제 수상이란 브랜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녀’도 칸영화제 초청이란 포장이 있었다. ‘방자전’은 고전의 재해석이란 타이틀이 붙는다”고 지적했다. 역시 날카롭고 적절한 분석이다.

사실상 ‘방자전’ 흥행과 그 배경에 대한 분석은 스타뉴스의 위 6월1일자 기사 둘로 완전히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뛰어난 기획기사들이었고,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쾌한 해석이었다. 다만 스타뉴스 기사 중 제시되지 않은 근본적 성애영화 흐름 하나만을 더 짚어 보기로 하자.

위 기사들에 제시된 근래 성애영화 흥행작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 가지 명확한 흐름을 발견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는 현대 배경 성애영화들이 인기를 끌었다.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 1999년 ‘해피 엔드’, 2000년 ‘거짓말’, 2002년 함께 개봉된 ‘색즉시공’과 ‘몽정기’ 등이 예다.

그러다 2003년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이후부터는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사극 형식의 성애영화들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2005년 공개된 ‘몽정기’ 속편, 2007년 등장한 ‘색즉시공’ 속편 등은 전작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대신 ‘음란서생’, ‘쌍화점’, ‘미인도’ 등 사극들이 밀려들어왔다. 해외영화 ‘색.계’ 역시 일단 근대사극의 형태를 띠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물론 단순 트렌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상황을 되짚어보면 시기적으로 절묘한 일치가 발견된다. 성애영화 트렌드가 현대극에서 사극으로 이동되던 시점은, 바로 한국영화 주 관객층 취향이 남성 중심에서 여성 중심으로 변화하던 시점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실미도’ 등 선 굵은 남성영화들이 흥행의 중심에 서있던 2000년대 초반에 비해, 2004년부터는 ‘어린 신부’,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늑대의 유혹’ 등 여성 취향 영화들이 흥행의 중심부에 들어왔고, 2005년 ‘왕의 남자’, ‘웰컴 투 동막골’, ‘말아톤’, ‘마파도’, ‘너는 내 운명’,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2006년 ‘미녀는 괴로워’, ‘맨발의 기봉이’, ‘달콤, 살벌한 연인’, 2008년 ‘과속스캔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으로 흥행작 구도가 빠지는 과정은 주 관객층, 또는 영화 선택권이 여성으로 이동되고 있다는 명확한 방증이 된다.

결국 성애영화의 변화 역시 이 같은 배경 하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성애영화들은 분명한 남성 취향이었다. ‘거짓말’은 여성이 받아들이기 힘든 거친 사도마조히즘 영화였고, ‘색즉시공’과 ‘몽정기’ 등은 여성이 불쾌하게 여기는 남성들만의 전유물, 음담패설 덩어리였다. 그러나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로부터 시작된 사극 성애들은 달랐다. 의복, 색감, 영상미가 두드러졌으며, 남녀의 감정묘사에 역점을 뒀다. 여성이 받아들이기 쉽고, 또 관심 갖기 쉽도록 유도됐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 성애영화 성공작들은 ‘여성용 성애영화’이기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결론이다. 예로, 같은 사극 형식을 취했지만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던 성애영화의 대표로 2008년작 ‘가루지기’를 들 수 있다. 비록 사극 형식이긴 했어도 섹스 슈퍼맨을 다룬 뚜렷한 남성 취향 영화였기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성애영화 열풍 당시에도 ‘어우동’을 선택한 건 중장년 여성층이었지만, ‘변강쇠’와 ‘매춘’을 선택한 건 젊은 남성층이었다는 분석이 존재했다. 오래된 공식인 셈이다.

한편 과연 여성층이 성애영화에 반응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심은 현재 성애 콘텐츠의 유통구조만 생각해봐도 쉽게 누그러진다. 현 시점 남성층은 사실상 극장용 성애영화에 별 관심이 없다. 인터넷 웹하드의 불법동영상 유통 과정에서 해외 포르노와 국내외 유출 동영상 등을 얼마든지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비아 크리스텔 영화만 나왔다하면 달려가던 1980년대와 상황이 다르다.

반면 여성층은 실질적으로 인터넷에서 불법유통 되는 하드코어 포르노 동영상에 별 관심이 없다. 성애 장면에 관심은 있지만 하드코어급으로 거칠게 표현되는 영상에는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 결국 ‘극장용 성애영화’를 보러갈 관객은 유통구조 상으로만 볼 때도 여성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점차 데이트무비화 돼가는 극장용 영화소비 구조 내에서 남성층은 여성이 선택한 성애영화에 ‘불만을 표하지는 않는’ 정도가 된다.

그리고 이런 배경이 있기에 스타뉴스가 기사가 제시한 “웰메이드를 추구하는 공통점”이 작동하는 것이다. 남성층에는 이런 부가적 요소가 크게 작용하질 않지만, 여성층은 다르다. 성애 콘텐츠를 관람한다는 부담감을 누그러뜨리는 심리적 방어막이 바로 ‘품위’, ‘품격’, ‘예술성’이다.

1980년대, 헐벗은 한국영화계를 여배우들이 헐벗어 먹여 살린다는 우스개가 돈 일이 있다. 왜 그랬을까. 스타뉴스 기사 내용처럼 “외화보다는 한국영화가 ‘벗었을 때 잘 통한다’”는 속성이 뚜렷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애영화는 지금도 무척이나 중요한 장르다. 여름만 되면 몰아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열풍 속에서 제대로 한 번 싸워볼 만한 장르는 역시 ‘우리가 했을 때 제일 잘 통하는’ 장르들이고, 그 중심에 선 것이 바로 성애영화이기 때문이다.

현재 명확히 드러난 흥행코드들, 여성 취향 성애영화, 웰메이드, 사극형식, 여성층에 반응이 좋은 남자배우, 그리고 정치·경제의 저점 상황이라는 타이밍 등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를 뛰어넘는 새롭고 대담한 도전과 발상들이 등장한다면 금상첨화다. 한국영화가 가장 오랫동안 기대왔으면서도 가장 저개발 상태인 장르에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서울=뉴시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