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혼탕, 십자군위안부…유럽의 뿌리깊은 매매춘
남녀혼탕, 십자군위안부…유럽의 뿌리깊은 매매춘
  • 양태자 박사<비교종교학>
  • 승인 2010.06.1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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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매매춘, 여성의 집
중세유럽의 목욕탕을 살짝 들여다 보자. 거기에는 3년간 교육받은 수장격인 치료 목욕사가 늘 상주한다. 그는 손님의 머리도 깎아주고, 치아치료와 사혈뿐 아니라 다리수술 등 외과적인 치료까지 해준다. 당시 기독교적 사상으로 무장된 의사들은 성서적 교리에 따라 외과 치료시에 흘리게 되는 피와 접촉하는 걸 꺼렸다. 그래서 치료 목욕사가 피를 동반하는 외과치료를 대신 맡았던 것이다.

16세기부터 목욕문화가 쇠퇴기로 접어들자 이발사들이 18세기까지 이런 작업을 대신 했다. 당시에는 가발이 유행했으므로 가발사들이 이발사들과 대항하기도 했다. 이들은 세월이 가면서 가발사는 미용실로, 이발사는 남자 이발사로 정착하게 됐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의사들이 점점 더 이발사의 의료영역을 받아들이다 오늘날 서양의학의 외과로 자리잡게 됐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 사람들은 하루에도 서너개의 목욕탕을 방문하면서 향략을 일삼았다. 요즈음의 골프장에서와 같이 당시에는 목욕탕에서 혼인이나 친구관계를 엮기도 하며 사교장소로 꽃을 피웠단다. 이렇게 탕에서 먹고 마시며 놀다 취한 상태에서 때론 싸움질까지 해댔고 덩달아 도둑과 사기꾼들까지 등장했다.

1400년께 한 여인이 법정판결로 자택에 감금당했다. 이때 그녀가 집을 잠시 떠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이 부여되는데, 하나는 성당에 고해 성사를 보러 갈 때, 다른 하나는 목욕탕에 가는 것만 허용 됐다 하니 당시의 일상이 얼마나 목욕과 연결되었는지를 잘 나타낸다. 이런 향략문화가 12~13세기엔 전성기를 이루고, 심지어 14세기 초부터는 결혼식의 피로연까지 목욕탕에서 열렸다. 목욕탕이 인기를 끌자 치료 목욕사들은 여자들을 고용해 매춘을 시작했다. 매춘녀들이 늘 상주하게 되자 치료 목욕사는 또 하나의 직함을 갖는데, 다름 아닌 뚜쟁이 역할인 것이다. 창녀가 있는 목욕탕에는 귀족과 평민 구별없이 벌거벗은 몸으로 탕에 들어가 판대기 위에 올려놓은 술과 음식으로 남녀가 서로 몸을 만질 수 있는 거리에서 향연을 즐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악사까지 동원돼 노래. 연주, 익살을 풀어내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딴 방에 놓인 침대로 가서 남녀가 즐겼단다.

당시에 이런 남녀혼탕 문화가 도처에 우후죽순처럼 번졌지만 중세 유럽교회는 속수무책이었다. 가톨릭이 여러 번 지나친 풍기문란을 경고했건만, 아랑곳 없이 더욱 더 무절제하고도 음탕한 장소로 변모해 갔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수도자들까지도 목욕탕에서 그들의 본분을 잊고 유별나게 즐겼다 한다.

또 하나의 중세유럽 매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은 14세기 말에 시 자체가 여인들을 고용해 만든
‘여성들의 집’<그림>이다. 이들은 대개 하층민 출신으로 성적인 영업을 하다 보니 쉽게 성병에 걸릴 뿐더러 사회적인 대접 또한 형편없었다. 바깥 외출시에는 의무적으로 그들이 매춘녀라는 표시를 빨강, 노랑 그리고 그린 등의 색깔로 나타내고 다녔다. 도시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지만 빈에는 노란 숄을 어깨에, 뮌헨 근교의 아우구스부르크에서는 그린 숄을 걸쳐야 했고,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노란색 단을 댄 옷을 입어야 했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녀들의 수입 중 상당한 부분을 자신들의 사후세계를 위해 교회의 미사예물로 바쳐야 했던 것이다. 교회에 돈을 갖다 바치지 않으면 그녀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럼 자연적으로 천국으로 들어 가는 길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하기야 중세엔 교회의 복전함에 돈을 많이 넣어 돈 떨어지는 소리가 크면 클수록 조상령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빨리 올라갔다고 믿었다 하니 오늘날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얼토당토 않은 믿음인 셈이다.

그런 그녀들이 드물게 잘 되는 경우는 수녀원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신분상승의 기회가 있는 귀족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첩 제도는 중세 십자군 원정과 연관성이 있다. 중세 기독교 십자군이 원정을 떠날 때 기독교인 여인들을 함께 데리고 다녔다. 이유는 십자군들이 이방인 여인들과 교통한다는 것은 죄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이때 동반된 여인들의 역할은 다친 군인의 치료는 물론 매춘으로 십자군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풍습이 나중에 첩의 형태로 변모하게 됐는데 시대가 변해도 남녀 사이의 질투는 변함이 없었나 보다.

이야기인즉, 한 남자가 병이 들자 첩으로 있던 여인이 그 남자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그러자 그 병든 남자는 복면한 남자들을 보내 그 여자의 얼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 더 이상 딴 남자에게 갈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그 남자는 재판을 받게 됐다는 얘기가 법정기록으로 남아 전해진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여성의집이 16세기 말부터는 법적인 제재가 내려지면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목욕탕 역시 당시 유행하던 매독, 페스트, 그리고 사혈 등을 통해서 전염병이 급속하게 번지는 온상지가 되자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 빈에는 16세기 초 11개, 18세기 초엔 7개로 격감하고 프랑크푸르트는 14세기 말에 15개 업소가 성업 중이다가 16세기에 이르러 2개, 1809년 완전히 문을 닫는다. 이때부터는 목욕 대신 향수나 파우더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세 때에는 한 달에 한번 옷 갈아 입는 것이 다반사였으므로 귀족들이 나쁜 냄새를 향수로 대치하다 보니 향수문화가 발달 했다.

최근 유럽에서 한국인을 위해 발행되는 신문에 흥미 있는 기사가 났는데, 다름 아닌 늘 품위 있고 격 있는 미술품만 전시해 오고 있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네덜란드 사창가의 전시를 하고 있다는 뉴스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한 건물을 사창가 그대로 복제한 후 그 안에는 영업했던 여인들을 실제의 인물처럼 석고로 뜬 후 딱 전시 했다. 이 전시장에 많은 관객들이 몰려 오고 있단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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