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신발
낡은 신발
  • 박은자 / 동화작가
  • 승인 2010.10.0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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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자의 인물동화> 이재오 씨 편 4.

정연이는 오늘 아빠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어떤 데이트였느냐고요? 아빠와 함께 피자집에 가서 피자를 실컷 먹는 데이트였습니다. 사실 정연이는 살이 찐 편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정연이가 피자나 통닭 따위를 먹지 못하게 합니다. 과일과 야채만 먹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연이는 고기를 좋아합니다. 피자도 좋아하고 통닭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엄마가 못 먹게 하니 좀처럼 먹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이번 시험에서 수학을 세 개나 틀렸습니다. 이 일이 또 엄마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정연이는 엄마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수학시험은 백 점을 맞아야 하는지, 또 뚱뚱해서는 왜 안 되는지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정연이 마음을 잘 아는 아빠가 오늘 학원으로 정연이를 만나러 온 것입니다. 그리고 정연이를 피자집에 데리고 온 것입니다.

아빠가 데리고 간 피자집은 꼭 먹고 싶었던 피자가 있는 집입니다. 분위기도 좋고, 무엇보다 값이 다른 곳의 피자보다 다섯 배나 비쌉니다. 그래도 그 피자집에는 손님이 많습니다.

소문대로 피자는 정말 맛있습니다. 더구나 아빠는 피자를 큰 것으로 주문했습니다. 그래서 정연이는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눈치를 보지 않고 먹는 피자는 더 맛있습니다.

물론 아빠도 정연이처럼 피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커다란 피자가 한 조각도 남지 않았습니다. 배가 부른 정연이와 아빠는 행복한 마음으로 피자집을 나왔습니다. 비로소 정연이 마음이 다 풀렸습니다. 엄마가 꾸중했던 일은 그냥 가볍게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연이가 막 지하철을 나왔을 때 일입니다. 어떤 아저씨가 혼자서 명함을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 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명함을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명함을 받은 사람이 저만큼 가서 명함을 획 집어던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명함을 나누어 주던 사람이 황급히 뛰어가서 명함을 주웠습니다. 하지만 그 명함은 벌써 지나가던 사람 발에 밟혀서 더러워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명함을 주워서 먼지를 툭툭 털더니 한 쪽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발이 아픈지 걷는 것이 불편해 보입니다. 아마 발가락 하나가 구두 끝에 닿는 것 같습니다. 정연이가 아빠에게 묻습니다.

“아빠, 오늘 학원에서 이번 우리 동네에서 출마하신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해서 들었어요.”
“그래? 어떤 분 이야기를 해 주시던?”

“이재오 후보자요. 그 분은 진짜로 훌륭하신 분이래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가난한 것은 황희 정승 같고요.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것은 김구 선생님 같대요. 그리고 정직한 분이래요. 그런데 무지 가난하대요. 아빠, 그런 분이 왜 가난할까요?”
정연이는 지금 아빠에게 참 어려운 질문을 합니다. 아빠가 얼른 대답을 못하고 있는 사이 정연이가 또 말합니다.

“아빠, 그 국회의원 후보자는 아직도 운전면허가 없대요.”
“그래? 그건 아빠도 몰랐던 사실이구나. 왜 여태까지 운전면허를 따지 못했을까?”

“아빠, 그건 그 후보자님이 민주화운동 하느라 도망 다니고, 또 감옥 가서 살고, 그러다보니 운전면허를 못 땄대요. 그리고 그 후에는 너무 바빠서 운전면허를 딸 시간이 없었대요. 신기하죠? 그래서 그 분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대요. 우리 학원 선생님도 그 분과 함께 자전거를 탄 적이 있대요. 자전거 대회에서 그 후보자님이랑 끝까지 완주한 적이 있대요. 아빠, 나도 자전거 탈래요.”

정연이 이야기는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더니 갑자기 자전거 이야기를 꺼냅니다. 사실 정연이는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연이 엄마가 자전거는 안 된다고 반대를 합니다. 위험하다고 말입니다. 세상에, 자전거가 위험하다면 아빠와 엄마가 운전하는 차는 얼마나 더 위험한가요?

그런데 정연이가 명함을 나누어 주고 있는 아저씨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그리고 아빠에게 묻습니다.
“아빠, 이 분이 우리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분 맞죠?”

아빠는 얼굴 가득 웃음이 가득한 채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연이는 아저씨 앞으로 가더니 명함을 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생긋 웃으면 말합니다.

“아저씨, 저는 어려서 투표권이 없지만 저희 집에는 할아버지도 계시고, 할머니도 계셔요.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삼촌과 고모도 있고요. 그러니까 모두 여섯 명이에요. 아저씨, 여섯 명은 꼭 아저씨를 찍도록 제가 열심히 말할게요. 아니 우리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저씨 편이에요. 그러니까 4표는 확실해요. 제가 고모와 삼촌에게도 잘 말해 볼게요.”

정연이의 말에 아저씨의 구부려졌던 어깨가 쫙 펴집니다. 바위가 머리에 얹어진 것처럼 피곤하던 재오 씨의 몸이 쫙 펴집니다.
“고맙구나. 힘이 난다.”

그런데 정연이의 눈이 아저씨 발로 갑니다. 아저씨가 신은 구두가 많이 낡았습니다. 뒤축이 다 닳았습니다. 발이 불편할 것 같습니다. 정연이는 얼른 아빠에게 달려가서 말합니다.

“아빠, 아빠는 좋은 신발이 많이 있지요? 그때 왜 미국 사는 고모부가 사 오신 신발, 그 신발 신으면 발이 정말 편하다고 하셨잖아요. 아빠는 그 신발 잘 신지 않으니까 그 신발 아저씨에게 드려요.”

정연이 말에 아빠는 빙긋 웃습니다.
“그래. 나도 그런 생각했다. 우리 딸은 어쩌면 그렇게 아빠 마음과 똑같을까?”

정연이 아빠는 얼른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딱 두 번밖에 신지 않은 비싼 신발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발이 맞을까 걱정이 됩니다. 눈대중으로 보아서는 맞을 것 같았는데도 걱정이 됩니다. 괜히 신발이 작거나 커서 서로 민망해질까봐 말입니다.

아빠는 아저씨 앞에 신발을 꺼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이러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연이가 얼른 아저씨 신발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가져온 신발을 신겨드립니다. 아, 어쩌면 그렇게 딱 맞을까요? 아빠가 말합니다.

“그 신발은 정말 편합니다. 많이 걸어도 피곤하지 않아요. 저한테는 필요 없는 신발이지만 후보자님께서는 그 신발이 꼭 필요하신 것 같아요. 선거운동 하시느라 하루 종일 서계시거나 돌아다니시는데, 우선 발이 편하셔야지요.”

그 신발은 정말 좋습니다. 재오 씨는 그 신발을 신고 이렇게 저렇게 발을 굴러 봅니다. 무겁던 발이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유명한 신발입니다. 비싼 신발을 선물 받으니 황송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정연이의 마음은 알아 챈 재오 씨는 그 신발을 신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연이가 재오 씨가 신었던 헌 신발을 가슴에 안으며 말합니다.

“아저씨, 대신 이 신발은 저에게 주세요.”
“그 낡은 신발을 뭐하게?”

“낡았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뛰어다니시며 일하시는 귀한 발이 담겨있던 신발이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기념으로 가질래요. 그래도 되죠?”
참 민망한 일입니다. 그 신발은 하도 오래 신어서 냄새도 납니다. 그런데 그 신발을 가져가겠다고 하니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연이는 또 조릅니다.

“아저씨, 허락해 주세요. 네?”
재오 씨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정연이게 이렇게 말합니다.

“냄새가 날 텐데........ 다른 누가 신기에는 너무 낡았고........ 버려도 괜찮다.”

“아저씨, 절대로 버리지 않아요. 친구들에게 아저씨가 신었던 신발이라고 자랑할래요. 친구들에게 보여줄래요. 그래도 되죠?”

정연이는 재오 씨에게 밝은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갑니다. 그들 부녀가 가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습니다. 재오 씨는 가만히 생각합니다.

“그래. 저런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사는 세상, 저런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라고 이번엔 꼭 당선되어야 해.”

주먹을 꼭 쥐고 있는 재오 씨 등 뒤로 간판불이 하나 둘씩 켜집니다. 그 불은 마치 재오 씨가 세상에 던져주는 희망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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