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스토리3' 실패로 본 한국 영화시장의 특수성
'토이스토리3' 실패로 본 한국 영화시장의 특수성
  • 이문원
  • 승인 2010.10.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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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토이 스토리3'


21일 현재까지 2010년 세계 최고 히트영화는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3’다.

전 세계에서 10억5814만4168달러를 벌어들여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지 않은 수치로는 역대 5위가 됐다. 12월16일 개봉될 ‘해리 포터’ 시리즈 최종편 1부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가 기록을 깨지 못한다면, 그대로 2010년 세계 최고 히트영화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여기서 ‘토이 스토리 3’의 수익 분포를 살펴보기로 하자. 일단 10억5814만4168달러 수익 중 4억1284만4168달러가 미국, 캐나다 등 북미지역에서 거둬들인 액수다. 전체 수익의 약 39%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북미 지역을 제외한 여타 국가들에서 벌어들인 나머지 6억4530만 달러의 분포다.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둬들인 국가는 일본이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와 애니메이션 쌍끌이 흥행가도를 달리며 미화 기준 1억2666만533달러를 벌어들였다. 2위는 영국이다. 영국의 경우 동시개봉권인 아일랜드와 몰타 지역 수익을 합산해 집계되며, 언어의 공통성 탓인지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의 경우 해외수익 1위 자리는 영국이 차지하고 있다. ‘토이 스토리 3’ 경우에도 1위 일본과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1억1598만9068달러를 벌어들였다.

그 뒤 순위는 다음과 같다. 3위 멕시코, 4위 프랑스/알제리/모나코/모로코/튀니지(동시개봉권), 5위 오스트레일리아, 6위 스페인, 7위 브라질, 8위 이탈리아, 9위 독일, 10위 아르헨티나.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은 아르헨티나에 이어 11위에 올라있다. 아직 중국 등 몇몇 대형시장이 ‘토이 스토리 3’ 개봉을 앞두고 있어 향후 순위는 더 밀릴 수 있다

특이한 현상이다. 한국은 인구에 비해 영화 관람객수가 많은 시장이다. 대부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경우 북미지역 제외 순위에서 5위 내에 랭크되는 게 상례다. 올해만 해도 ‘인셉션’이 영국, 중국, 프랑스, 일본에 이어 5번째로 많은 수익을 한국에서 가져갔고, ‘아이언 맨 2’도 한국 수익이 영국에 이어 2위에 랭크돼있다. 한국서 유난히 잘 안 풀린다는 팀 버턴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성공해본 적이 없는 뱀파이어 장르 ‘이클립스’ 등도 모두 10위권 내로 턱걸이는 했다. 그 정도 규모는 되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토이 스토리 3’는 11위, 미화 기준 수익 1224만8035달러, 관객 수 기준으로는 146만1183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단순히 순위만 뒤처진 게 아니라 한국 영화시장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여름용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서 절대 성공작이라 볼 수 없다. 역대 북미지역 4억 달러 이상 수익작 중에선 최저 수치다.

어째서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까? 여러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대부분 다 틀렸다. 먼저 애니메이션은 원래 국내에서 잘 안 팔린다는 분석은 아예 불가능하다. 지난여름 함께 개봉한 ‘슈렉 포에버’만 해도 미화 1940만5755달러에 222만4542명 동원으로 10위 내에 들어섰고, ‘쿵푸 팬더’의 경우 영국, 프랑스에 이어 3위에 랭크됐다.

전편들이 크게 성공하지 못해 3편의 흥행이 저조했다는 분석도 틀리다. 1995년 개봉된 1편은 낯선 CG애니메이션 형식 등으로 극장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이후 비디오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 1999년 개봉된 2편은 서울관객 기준 66만4180명을 동원해 연간 외화순위 6위, 종합 순위에서도 10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전편을 압도한 극장흥행에 힘입어 2편은 비디오시장에서도 전편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다.

비디오/DVD 등 2차시장이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후 등장한 관객층이 전편들을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는 분석은, 비디오/DVD 등 합법화 시장은 죽은 대신 약 2조 원대 거대시장으로 떠오른 불법 웹하드 시장상황을 감안한다면 차마 나올 수 없는 얘기다.

그렇다면 ‘토이 스토리 3’가 한국시장에서 그토록 유난히 무시당한 이유는 대체 뭘까? 한 마디로 줄이자면 ‘속편 효과가 안 나왔다’고 보는 게 옳다. 해외시장 곳곳에서 누렸던 속편 프리미엄이 한국에선 깨지고, 여타 단일품목처럼 등장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단일품목으로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은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올 여름에도 미국에서 2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슈퍼 배드’의 한국성적도 ‘그저 그랬’고, 그밖에 ‘몬스터 vs. 에이리언’, ‘앨빈과 슈퍼밴드’ 등도 큰 재미는 못 봤다. ‘토이 스토리 3’에 기대치가 높았던 것도 단일품목으로서 히트 가능성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속편 프리미엄을 감안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유독 한국시장에서만 ‘토이 스토리 3’의 속편 프리미엄이 깨져버린 걸까?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한국 극장시장은 아동시장이 붕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근래 10세 전후 아동들의 부모는 대개 30~40대다. ‘토이 스토리’ 1, 2편이 등장했을 당시 이들은 10대 중반~20대 중반이었고, 정확히 ‘토이 스토리’ 1, 2편을 국내 성공시킨 세대로 보는 게 옳다. 따라서 이들 역시 자녀들에 ‘토이 스토리’ 1, 2편을 비디오, DVD 또는 불법 다운로드 등을 통해 소비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토이 스토리’ 관련 완구제품이 여전히 시장에 잔존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본래 자녀의 문화체험은 부모세대의 유도에 의해 대물림받기 쉽다. 한 마디로 애니메이션 주(主)소비층인 아동층도 충분히 ‘토이 스토리’의 속편 프리미엄을 내줄 환경은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386세대에서 포스트386세대로 넘어오는 부모 세대는 희한하게도 자녀의 ‘극장관람’은 유도하지 않는 세대로 알려져 있다. 특히 포스트386세대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다. 본인들 자체가 1980년대 후반 비디오시장 활황기에 대다수 영상문화체험을 한 세대여서 ‘굳이’ 극장체험이 필요치는 않다 여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것은 사회변화다. 먼저 사교육 열풍 문제다. 실질적으로 현 시점 아동들은 극장까지 갈 ‘시간’이 별로 없다. 갖가지 학원에 다니느라 놀 시간이 많지 않고, 그 피로 탓에 대부분 학원을 마치면 귀가해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한편 부모세대 역시 시간이 없다. 전업주부가 다수를 차지하던 1970~80년대에는 자녀를 데리고 극장나들이까지 할 만한 시간적·육체적 여유가 있었지만, 맞벌이부부가 절대다수인 현 시점에는 어머니 아버지 할 것 없이 모두 극장‘씩’이나 데리고 갈만한 시간적·육체적 여유가 없다. 맞벌이부부가 많은 건 물론 ‘토이 스토리 3’가 성공한 여타 국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성인의 노동시간은 여타 대중문화 선진국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

그러다보니 아동영화시장은 가정시장으로 귀속된 지 오래고, ‘토이 스토리 3’ 역시 결국 그 주 소비층인 아동층에까지 도달하려면 DVD 출시나 하다못해 고화질 불법 파일이 나올 때까지 유보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가정시장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또 다시 ‘토이 스토리’ 관련 완구들은 잘 팔려나가겠지만, 희한하게도 극장흥행에서는 별 재미를 못 본 현상을 남기게 된다는 것이다.

‘토이 스토리 3’의 또 다른 속편 프리미엄 파괴 원인은, 이른바 세대의 문제다. ‘토이 스토리 3’는 1, 2편에 비해 너무 늦게 나왔다. 1편과 2편 사이 텀이 4년에 불과했던 반면, 2편과 3편 사이에는 11년이라는 격차가 있다. 이 정도 격차면 영화 주 소비층 자체가 물갈이될 만한 텀이다.

물론 해외, 특히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은 그래도 속편 프리미엄을 낼 수가 있다. 미국 등지도 10~20대가 영화 주 소비층인 건 맞지만, 그 외 여타 세대들도 딱히 급격하게 극장관람률이 떨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10~20대를 피치로 비교적 완만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 마디로 20세에 ‘토이 스토리’ 1편을 본 관객이 35세가 되더라도 여전히 극장을 찾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시장 환경이 아니다. 극장관람률은 20대 후반을 피크로 급격하게 떨어진다. 청년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는 현 시점은 20대 후반도 이미 무너져가고 있다. 극장관람에 드는 비용 탓에 가정에서 불법 다운로드 등으로 대체관람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지고 있다. 따라서 ‘11년 전 영화의 속편’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에선 위험하다는 얘기다. 11년 전 10대 중반이었던 이들도, 20대 중후반이 되면 점차 극장관람을 꺼리는 분위기가 번져있다. 이들을 그나마 이끌어주는 게 초대형 블록버스터나 데이트무비 등인데, ‘토이 스토리 3’는 여기에 끼기는 다소 어려운 조건이었다. 결국 속편 프리미엄은 깨지게 돼있었다.

마지막으로, 한국 영화시장 특유의 이벤트성을 지적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영화 전편이 사회문화적 현상을 일으키고 난 뒤 2~3년 정도는 그 이벤트성이 살아있지만, 5~6년 이상 텀이 벌어지고 나면 사실상 이벤트성은 죽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전편 콘텐트에 대한 만족도에 기대 속편 프리미엄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영화시장은 이벤트성 강조가 지나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전편 만족도를 통해 속편 프리미엄이 발생하는 과정이 상당부분 죽어있다. 예컨대 2편으로부터 16년 만에 등장했던 ‘대부 3’는 1, 2편이 영화사에 남을 정도의 평가를 받은데 힘입어 미국을 비롯한 여러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지만, 한국에서만큼은 처참하게 실패한 바 있다. 아무리 괜찮았던 영화, 아무리 좋았던 기억을 남긴 전편이더라도 속편 자체로 일종의 이벤트적 이슈를 내지 못하면 극장까지 관객을 끌어내지는 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처럼 ‘토이 스토리 3’의 다소 시시한 국내 반응은 한국영화시장에 몇 가지 분명한 반면교사(反面敎師) 역할을 해주고 있다. 첫째 한국에서 극장용 아동영화 기획은 여전히 무리수라는 점, 둘째 30대 이상만 돼도 극장관람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탓에 ‘30대용 영화기획’ 등도 무리수가 크다는 점, 셋째 모로가도 무조건 이벤트성부터 살리고 봐야한다는 점 등을 다시금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도출되는 몇 가지 긍정적인 이슈들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30대 이상 관람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으므로, 불과 10년 전 영화라도 아깝게 흥행에 실패했던 영화라면 다시 리메이크해도 무방한 시장 환경이라는 점 등이다. 어디건, 무엇이건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성공사례보다도 실패사례에서 배울 건 더 많은 법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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