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자의 인물동화> 영원한 청년
<박은자의 인물동화> 영원한 청년
  • 박은자 동화작가
  • 승인 2010.11.10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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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씨 편 8.

꽁지 바람 마음이 참 급합니다. 오늘은 뒤에서 부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달려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꽁지 바람은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잘 압니다. 그래서 마음은 급하지만 뒤에서 살금살금 재오 씨 등을 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재오 씨가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골목 끝에서 다시 골목이 시작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 다섯 번째 집, 그곳에 살고 있는 강철 씨가 오늘 재오 씨를 꼭 만나고 싶어 합니다.

강철 씨는 이름과 달리 걷지 못합니다. 강철처럼 강하게 살라고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인데 다리를 잃었습니다.

오늘 강철 씨 마음이 참 아픕니다. 강철 씨는 지금 남한과 북한에 살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꾸 문 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친구 재오 씨가 아침 일찍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소슬바람이 와 있네요.

소슬 바람이 강철 씨네 집 창문에 붙어 강철 씨를 기웃기웃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철 씨는 어쩌다 다리를 잃은 걸까요?

재오 씨가 도착했습니다. 꽁지 바람은 얼른 재오 씨 등에 붙어서 따라 들어갑니다.
“아침밥은 드셨나?”

재오 씨 물음에 강철 씨가 대답합니다.
“자네 같은 사람이야 아침밥 일찍 먹지만 나 같은 사람은 늦게 먹는 것이 좋으네. 그럼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되고.”

“그래서야 되나? 적게 먹더라도 세 끼 잘 챙겨 드시게. 반찬은 좀 있나?”
“걱정 마시게 여기저기서 가져다주는 반찬들로 넘치네.”

그래도 재오 씨는 냉장고 문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반찬통을 열어 혹시 상한 것은 없나 확인합니다. 그런 재오 씨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도무지 정치가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강철 씨는 친구 재오 씨가 얼마나 강하고 단단한 사람인가 압니다.

강철 씨는 오래 전에 고문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몸이 많이 상했습니다.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당뇨도 심했습니다. 발에 났던 상처가 낫지 않더니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치료할 시기를 놓친 후였습니다. 썩기 시작한 발을 잘라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리까지 썩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끝내 양 다리를 잘라내야 했습니다. 다행히 양 다리를 잘라낸 후에는 더 이상 병이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잘라진 다리가 마치 있는 것처럼 통증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은 대학시절에 겪었던 고문들이 마치 방금 겪은 일처럼 떠오릅니다. 그건 재오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오 씨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강철 씨가 보고 있던 텔레비전을 바라봅니다. 그 때 막 늙은 어머니와 늙은 딸이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강철 씨 눈에 눈물이 비칩니다. 강철 씨는 구석에 있던 작은 보따리를 풀어봅니다.

“이걸 형님에게 전해주어야 할 텐데.......”
작은 보따리 속에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북에 가족들을 둔 채 잠시 남한에 왔다가 북에 가시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북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했습니다. 강철 씨가 그런 아버지를 보고 함께 운 적도 여러 번입니다. 강철 씨는 전쟁고아입니다.

전쟁으로 부모와 형제들을 잃고 혼자 떠돌아다니고 있을 때 착하고 외로웠던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그 사람은 강철 씨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었고, 평생 다시 결혼하지 않고 강철 씨를 돌보며 살았습니다.

강철 씨 역시 그런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학에 갔습니다. 그러나 데모를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자 너무나 상심했던 아버지가 병을 얻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가슴에 깊은 병이 들었었나봅니다.

재오 씨가 강철 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묻습니다.
“북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번에는 꼭 신청하시게.”
“이 몸으로 어떻게 만나겠는가?”

“아무려면 어떤가? 꼭 찾아서 아버지의 사진과 유품들을 북에 있는 자식들에게 전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보다는 아버지의 고향에 한 번 가보고 싶네. 아버지는 그곳 황해도를 무척 그리워 하셨지. 아버지가 하도 말씀하셔서 그 산과 들과 강이 지금도 보이는 것 같네. 아버지가 사시던 집을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얼른 통일이 되어야 할 텐데........”
“맞아. 우리나라가 분단만 되지 않았더라면, 자네와 내가 감옥에서 그렇게 고생했을 리가 없지. 이렇게 몸이 상하지도 않았을 거야.”

강철 씨 말에 재오 씨가 묻습니다.
“자네는 아직도 그 때 일을 기억하나?”
“그럼. 어떻게 잊나?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지. 잊을 수 없지. 사실 그 때 일을 지금도 가끔 꿈에서 겪는다네. 가장 끔찍했던 것은 수건으로 덮은 얼굴 위로 고춧가루 탄 물이 쏟아지는 거였어.”
“그런가? 나는 침대봉에 거꾸로 매달렸던 일이야.”

“나도 침대봉에 거꾸로 매달렸었지. 그 침대봉이 부러지기도 했어. 두 발목이 밧줄로 묶였었지. 두 손도 밧줄로 묶였고.”
“참으로 소름끼치던 일이야. 무릎을 두 팔 사이로 넣고, 굽힌 무릎 사이로 침대봉을 넣어 거꾸로 매달고 젖은 수건을 얼굴에 덮었었지.”

“맞아. 세상이 가물가물 사라져갔지. 거꾸로 매달렸던 것보다 얼굴 위로 쏟아지던 고추가루 물 때문에 정말 죽고 싶었지.”
“그래도 우린 살아났어.”

“그래. 우리는 용케 살아났지. 그런데 고문 받다가 감방으로 돌아왔을 때 기억나나?”
강철 씨 말에 재오 씨가 웃습니다.

“감옥이 천국 같았지. 그 천국에서 나는 <해방 후 학생 운동사> 저술을 계획했었지.”
“정말 자네는 대단해. 나는 그저 앓기만 했었는데.”

“자네는 약골이잖나? 약골인 자네가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낸 것만도 기적이야. 그러나 나는 일월산 깡촌에서 깜깜한 밤과 이야기하고 별을 헤아리고, 소를 먹이면서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면서 자랐으니까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거지.”

오늘은 꽁무니바람이 도무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강철 씨와 재오 씨가 나누고 있습니다. 꽁무니바람은 귀를 크게 열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한 모금 남은 차도 다 식어 갑니다.

“자네 그만 일어서게. 바쁘신 몸 아닌가? 나에게는 이렇게 자주 올 것 없네. 자네가 오지 않아도 나는 자네 마음 아네.”

“그래도 자주 와야지. 더 자주 오고 싶은데........”
재오 씨는 말을 잇지 못합니다. 목이 메입니다.

“난 자네를 보면 마음이 새로워지네. 자네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 자네를 보면서 나 역시 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네. 그러나 독재 정권은 용서할 수가 없네. 왜냐하면 독재정권이 인간을 야수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니까. 권력을 이용해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지금도 참을 수가 없네. 권력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것도 용서할 수가 없어.”
재오 씨를 바라보는 강철 씨 눈에 미소가 어립니다.

“자네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젊은 날 가졌던 그 높고 순수했던 기상이 여전해. 그래. 자네가 있어 이 나라가 더 이상 부패하지 않는 거야. 자네가 있어 한나라당이 썩지 않는 거야. 자네가 있어 내 가슴 역시 희망이 가득해.”

“다 늙어서 희망은 무슨........”
늙었다는 핀잔에도 강철 씨는 환하게 소리 내어 웃습니다.
“하하하! 내가 늙었다고? 자네도 마찬가지야. 자네 머리도 반백일세.”

“그래. 세월은 거스를 수가 없네.”
그러나 꽁지 바람은 재오 씨 들을 가만히 쓸어주면서 말합니다.
“아저씨, 아저씨는 조금도 늙지 않았어요.”

그런데 꽁지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강철 씨가 들은 걸까요? 강철 씨가 재오 씨를 보고 진지하게 말합니다.

“자네는 젊어. 자네는 진정 청년이야. 영원한 청년이지.”
영원한 청년이라는 강철 씨 말에 재오 씨는 환하게 웃습니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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