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자의 인물동화> 세 끼를 조금씩 골고루
<박은자의 인물동화> 세 끼를 조금씩 골고루
  • 박은자 / 동화작가
  • 승인 2010.11.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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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9>

꽁무니바람은 자꾸자꾸 움츠러듭니다. 그래서 밖에 나서기 전 거울을 봅니다. 그러나 거울 앞에서는 꽁무니바람 어디에 얼음이 박혀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꽁무니바람은 요즈음 사람들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가까이 가면 사람들이 움츠러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만큼 뒤에 서서 천천히 따라 갑니다.

지금이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름엔 일하다 땀 흘리는 사람 등을 시원하게 해줄 수가 있고요. 또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가는 사람 등도 살짝 두드려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겨울에는 좀 다릅니다. 뒤에서 리어카를 밀어줘도 ‘왜 이렇게 춥지?’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꽁무니바람은 그만 무안해지고 맙니다.

꽁무니바람은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나뭇가지를 타고 놀까?’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은 재오 아저씨를 따라서 성현교회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일요일도 아닌데 왜 교회에 가느냐고요?

성현교회에서는 수요일마다 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합니다. 물론 세상에는 무료급식을 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교회가 아닌 곳에서도 무료급식을 합니다. 노숙자들을 위해서 매일매일 무료급식을 하는 곳도 있습니다. 성현교회 역시 지금은 수요일만 무료급식을 하지만 언젠가는 매일매일 급식을 하게 될 거라는 꿈을 꿉니다.

성현교회에 도착한 재오 씨는 얼른 앞치마를 두릅니다. 초록색 앞치마가 잘 어울려서 근사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하하 웃는 재오 씨 웃음에 오이를 한 입 베어 문 듯한 싱싱한 초록물이 가득합니다.

재오 씨가 맡은 일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께 국을 담아 드리는 일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은 보기에도 침이 넘어갑니다.

식판을 내밀고 서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마음에 뜨거운 국물이 먼저 들어갑니다. 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밥과 반찬을 담은 식판에 국을 떠드리다가 재오 씨는 그만 깜짝 놀랍니다. 정말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할머니들 밥이 그 옛날 들판에서 일하는 장정 일꾼들 밥 같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국을 푸다 말고 재오 씨는 두리번거립니다. 먼저 국을 받아간 할머니가 혹시 다른 분과 같이 드시나 싶어서 말입니다. 그 할머니 역시 식판에 밥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열심히 혼자서 밥을 드시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밥을 할머니 혼자서 드시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마 반도 더 남길 것 같습니다. 순간 재오 씨는 남겨질 밥이 참 아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한 두 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재오 씨에게 국을 받으러 온 할머니들 대부분 밥과 반찬이 너무 많습니다.

100여 명이 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께 국을 담아 드리는 일을 끝내고 나서 재오 씨 역시 식판에 밥과 반찬을 받았습니다. 할머니가 받은 밥에 비하면 아주 조금입니다. 그러나 그 밥으로도 충분합니다.

재오 씨는 밥을 먹으면서 성현교회 집사님한테 물어 봅니다.
“할머니들이 왜 저렇게 밥을 많이 담아 가시는 거죠? 남으면 싸가지고 가실 수도 없을 텐데요. 남는 것 버리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순간 성현교회 집사님이 깜짝 놀라며 말합니다.
“의원님, 밥이 남지 않아요. 노인들은 하루를 저 밥 한 끼로 때우시는 거여요.”
“뭐라고요?”

재오 씨는 그만 수저를 놓고 말았습니다. 가슴도 콱 막힙니다.
“의원님, 놀라셨군요. 저희도 처음엔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재오 씨는 할 말을 잊은 채 맛있게 식사를 하는 노인들을 쳐다봅니다.
“의원님, 얼른 식사 하세요.”

마음이 순해 보이는 집사님이 숟가락을 재오 씨 손에 즤어 주었지만 재오 씨는 더 이상 밥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재오 씨는 볼 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얼른 손등으로 훔칩니다.
‘세상에, 세 끼를 한 끼로 때우기 위해서 한꺼번에 저렇게 많은 밥을 먹어야 하다니....... 저러다 병이 나면 어쩌지?’

재오 씨 눈에 또 눈물이 맺힙니다. 이번에 닦을 새도 없이 주루룩 흘러내립니다.
재오 씨는 벌떡 일어섭니다. 그리고 많은 양의 밥을 드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손을 일일이 잡아 드립니다.

백 명이 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을 잡아드리는 동안 꽁무니바람 역시 재오 씨 뒤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따라 다닙니다. 소리를 내면 누군가 ‘아이 추워’ 라고 말하겠지요?

그런데 재오 씨는 꽁무니바람이 필요한지 뒤를 돌아다봅니다. 아, 재오 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군요. 그래도 꽁무니바람은 얼른 다가가지 못합니다. 땀을 식혀 주려고 다가갔다가 감기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재오 씨가 꽁무니바람을 향해 두 손을 내밉니다. 꽁무니바람이 얼른 다가서서 재오 씨 손에 적혀있는 글을 읽어 봅니다. 재오 씨 손에 어떤 글이 쓰여 있는 걸까요? 지금 재오 씨는 어떤 결심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 재오 씨 손에 이런 글이 적혀 있군요.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서 저 할머니들이 세 끼를 조금씩 골고루 드실 수 있게 만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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