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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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은자 / 동화작가
  • 승인 2011.03.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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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자의 인물동화> 이재오 씨 편 18

수업이 모두 끝났나 봅니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학생들은 모두 바쁜 걸음입니다. 학교 앞에 떡볶이집이 세 곳이나 있는데도 학생들은 그냥 지나갑니다. 학생들이 소란스럽게 말합니다.

“오늘 너무 늦게 끝났어.”
“학원에 늦어서 걱정이야.”
학생들의 빠른 걸음걸이와 달리 퇴근하는 선생님의 발걸음은 빠르지 않습니다. 도덕을 가르치는 권 선생님은 낡은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천천히 걷습니다. 학생들이 그냥 지나간 떡볶이집 앞을 지나가는데 아주머니가 부릅니다.

“선생님, 따끈한 어묵국물 좀 드시고 가셔요.
권 선생님은 아주머니의 간청에 못이기는 척 들어섭니다. 아마 오늘은 장사가 시원치 않은 모양입니다. 떡볶이와 어묵이 그냥 있습니다.

“오늘은 수업이 좀 늦게 끝났지요?”
“목요일날은 늘 이래요. 장사가 번번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깜빡 잊고 다른 날과 똑같이 만들어 놓아서....... 그래도 걱정 마셔요. 늦게라도 다 팔려요.”
권 선생님은 매운 떡볶이를 한 입 베어 물다가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달려들면 오늘은 마음 놓고 사 줄 수 있을 텐데.......’
마음 한 쪽이 쓸쓸해집니다. 선배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집니다.

언젠가 권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둘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 재오 씨가 권 선생님의 마음을 잡아 주었습니다. 재오 씨가 한 말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선생인 자네가 정말 부럽네. 자네가 아주 행복해 보여서 눈물이 날 때가 있었네. 자네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네.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교사가 되겠네.”

재오 씨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바른 교사가 바른 학생들을 낳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샛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 눈을 보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겼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재오 씨는 독재와 불의에 대한 저항정신이 더 강해져 갔습니다. 착하고 순수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아가는 독재를 용납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재오 씨는 학생들의 그 깊고 맑은 눈을 참으로 사랑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평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시골 학교에서 농사도 짓고 학생들과 함께 뒹굴면서 아이들의 꿈을 건강하게 키워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재오 씨는 수업 중에 경찰에 붙잡혀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학생들 앞에 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감옥생활과 도피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모든 가시밭길을 지나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교사였던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재오 씨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이 그리울 때마다 후배이고 동료교사였던 권 선생님을 만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권 선생님이 재오 씨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재오 씨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아마 재오 씨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줄 것입니다.

“내가 아이들 앞에서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던 것,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해. 그러나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으로 기억될 거라 확신해.”
더 이상 교사를 신뢰하거나 존경하지 않는 학생들, 학교 수업보다 학원 수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 마음 착한 권 선생님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을 잊지 못하는 재오 씨, 아직도 아이들을 가르치던 때를 가장 소중하고 행복하게 기억하는 사람, 그런 재오 씨를 보면 권 선생님은 기운이 빠져가는 것을 자신을 보듬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권 선생님은 오늘 재오 씨를 만나러 갑니다. 재오 씨를 만난다면 권 선생님이 힘을 얻게 될까요? 학생들에게 희망을 다시 발견하게 될까요? 다시 이 세상을 믿고, 학생들을 믿게 될까요? 재오 씨를 찾아 나선 권 선생님 뒤를 꽁무니바람이 살금살금 따라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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