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
  • 박은자 / 동화작가
  • 승인 2011.03.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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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동화> 이재오 씨 편 20


아버지라는 이름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을 번쩍 들 힘도 들어 있고요.
또 힘든 세상을 끝까지 살아낼 희망도 들어 있습니다. 또 아버지라는 이름 속에 들어있는 눈물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참으로 특별합니다.

우리를 세상에 있게 한 사람, 그 이름이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특별한 아버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아버지도 특별하고요. 등이 굽은 늙은 아버지라고 해도 특별합니다.
아버지와 추억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리움 때문에 눈물이 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와 특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재오 씨도 그 중의 한사람입니다.

대학생이 된 자식이 데모를 하고, 감옥에 가면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화를 냅니다. 근심합니다. 어떻게 하면 데모를 중단하고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할까 노심초사합니다. 그러나 재오 씨의 아버지는 많이 다르네요.

청년 재오 씨가 유신반대 배후 조종을 한 혐의로 감옥에 갇혔을 때 입니다. 아버지가 찾아 와서 하신 말씀은 “재오야, 의연하거라.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입니다.

감옥에서 고문을 견디다 못해 죽어가고 있을 때에도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큰 대의를 위해 정신을 흐리지 말거라.”
아버지의 말씀 때문에 재오 씨는 까물까물 정신을 잃다가도 다시 일어서고는 했습니다.
재오 씨가 네 번째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는 많이 낙담했습니다. 더구나 15년이라는 긴 구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또 달려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재오야, 구형기간이 무슨 대수란 말이야? 네 마음이 중요하다. 지난 10년간의 투쟁이 옳은 것이라면 앞으로 감옥생활도 당당하게 맞서거라.”

아버지의 의연한 말씀에 재오 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재오 씨는 속으로 말합니다.
‘아버지, 무서워요. 15년이 너무 길어요.’

사실은 아버지 품에 안겨서, 아니 유리창 너머 아버지 손을 잡고 엉엉 울고 싶습니다. 무섭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다시 말씀을 하십니다.
“감옥을 집으로 알고 살아라. 언제 어디서나 네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버지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서는 아버지의 어깨는 강인합니다. 아버지의 뒷모습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가난한 아버지이지만 조금도 초라하지 않습니다. 비로소 재오 씨는  힘을 냅니다. 아버지가 준 힘이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퍼져가는 것을 느낍니다.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서는 재오 씨는 두 발에 힘을 줍니다. 다리도 꼿꼿이 세웁니다. 그리고 천천히 걷습니다.

‘그래.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야. 절대로 약해 질 수 없어. 이 땅에서 독재는 사라져야 하고, 국민은 마땅히 행복한 삶을 누려야만 해. 국가권력이 정의롭지 않으면 국민은 절대로 행복해 질 수가 없어. 나는 그 일을 하다가 감옥에 온 거야. 그래. 참고, 견디고, 이겨야만 해. 감옥에서 절망하거나 쓰러져서는 안돼.’
아버지가 다녀가신 날은 재오 씨 정신이 더 푸르러 지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오 씨가 알았을까요? 쇠창살 안에 갇힌 아들 모습을 보고 돌아가면서 아버지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는 것을. 버스에서 내려서도 얼른 집에 들어서지 못하고 산에 올라가 한참이나 엉엉 소리내어 우셨다는 것을. 심한 고문에 망신창이가 된 아들을 꺼내주지 못하고 감옥 안에 그대로 두고 온 아버지도 사실은 감옥 안에 갇힌거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재오 씨가 고문을 받을 때 마다 아버지 몸이 더 아팠다는 것을 재오 씨는 알고 있었겠지요?

재오 씨 아버지는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부자도 아닙니다. 평생 동안 고향을 떠나지 않고 농사를 지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정이 참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아버지 역시 정의로운 나라, 그래서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꿈꾸었는지 모릅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끼리 욕심부리며 싸우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이 가지려고 싸우다가 일본에게 빼앗겼던 나라, 그래서 아버지의 청년시절은 일제의 탄압과 수탈이 있었습니다. 또 6·25전쟁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대부분의 백성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재오씨가 꿈꾸었던 세상을 아버지 역시 오래전에 꿈꾸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뒤돌아 우시면서도 아들에게 힘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아들을 감옥에 둔 아버지의 창자는 다 녹았습니다. 창자가 다 녹은 아버지는 재오 씨가 감옥에서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는 재오 씨가 평생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건 흔들리지 않는 정의로운 마음이 마음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오 씨는 아버지가 주신 정신을 마음에 깊이 품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아버지로 인해 세상에 존재하고, 아버지로 인해 꿈을 품고, 아버지로 인해 시련을 이겨냅니다. 아버지라는 말 속에는 온갖 따뜻함과 거룩함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사랑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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