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북부 대지진으로 발생한 원전 폭발사고로 우려하던 방사능 물질 누출이 현실화되자 잘 나가던 한국의 원전수출에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해부터 전세계에 조성된 청정에너지 원자력발전 확대라는 이른바 ‘글로벌 원전 르네상스’가 쓰나미를 맞은 것이다.
◇흔들리는 ‘원전 르네상스’
세계 각국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일제히 원전 건설 계획을 재검토하고, 운행중인 원전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있으나 나라별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향후 대응 방향은 약간씩 차이를 보였다.
독일은 3월14일(현지시간)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시한을 연장하는 계획을 3개월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스위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중국, 인도, 대만, 멕시코 등도 원전 추가건설 재검토와 운행중인 원자로에 대한 강력한 안전검사에 들어갔다.
한편 드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31년 만에 조지아주 버크 카운티에 새 원전을 짓기로 했던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원전 정책기조에 변화가 없다”고 밝혀 예정대로 추진할 것임을 확실히 했다.
주요 원전 수출국인 러시아도 푸틴 총리가 ”일본 원전이 핵폭발을 일으킬 위험은 없다”며 러시아는 현재 외국에서 건설중인 5기를 포함해 모두 외국에서 수주한 30기의 원전 건설 사업을 지속할 의지를 내비쳤다.
◇온실가스 감축과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
전세계는 지금 온실가스로 인한 극심한 가뭄 홍수 한파 태풍 등 이상 기후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1992년 6월 리우환경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했고, 97년 38개 선진국이 온실가스배출량을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평균 5.2% 감축한다는 ‘교토의정서’를 채택했다.
이 의정서에 따라 유럽연합은 8%, 일본과 캐나다는 6%를 각각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한국은 OECD국가 중 개발도상국으로 인정받아 멕시코와 함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의무를 면제받았으나 GDP규모가 1조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진입한 현실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는 조만간 없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10% 줄이려면 2020년 기준으로 최대 28조6323억원이 소요되며, 철강 화학 전력산업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경오염을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서는 청정에너지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은 우라늄이 핵분열을 일으킬 때 발생하는 막대한 열을 이용해 증기를 만들고 그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방식이다. 원자로는 화력발전소의 보일러이며, 우라늄 1㎏이 핵분열 할 때 나오는 에너지는 석유 9000드럼, 석탄 3000t을 태우는 것과 같다.
◇원전의 현황과 계획
한국은 석유수입량이 세계 5위이며 에너지 수입액은 1400억 달러(2008년 기준)로 전체 수입액의 32%에 달한다. 원자력 발전은 초기 건설비용은 많이 들지만 연료비가 싸고 온실가스 발생이 없어 한국과 같은 석유빈국이면서 고 에너지 소비국에 적합하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2011년 3월 현재 한국에는 21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고리4기, 신고리1기, 영광6기, 월성4기 등으로 설비용량이 1만8716MW에 달하며, 국내 전체발전설비용량(7만7078MW)의 24.3%, 전체 발전량(47만3876GWh)의 31.1%를 원전이 담당하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59%를 원자력발전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가압경수로형(PWR) 7기 총 8600MW 용량의 원전을 건설 중이며, 추가로 4기 5600MW 가압경수로형 원전을 계획하고 있다. 2030년이면 시설용량 4만2716MW(전체의 41%, 39기), 발전량 3336억kWh(59%)를 원자력발전이 충당하게 된다.
◇원자력발전의 경제성 어느 정도인가
지난해 우리나라는 안전도가 우수한 기술과 가격의 우위를 바탕으로 선진국들을 물리치고 원전 수출 경쟁에서 승리해 국가적 축제분위기에 휩싸였고 대통령이 앞장서서 원전 수출과 확대정책을 추진해왔다.
한국은 2011년3월 발전량과 원자로 개수 기준(1411억kWh, 21기)으로 볼 때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5위의 원자력 발전 대국이다. 정부는 저렴한 원자력발전 단가에 힘입어 국내 발전 형태 중에서 가장 값싼 전력을 판매해 전력요금 인하 효과를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해 왔다고 주장한다. 1982년부터 2008년까지 물가는 221.4% 상승한 반면, 전기요금은 10.2% 상승에 그칠 정도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왔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GDP 1달러를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전력이 0.58kWh로 OECD 국가 평균 전력사용량 0.339kWh의 1.71배에 달한다. 일본은 0.206kWh로 OECD 평균의 0.61배, 미국은 1.06배, 프랑스는 0.97배였다.
국민 1인당 연간 전력 소비량은 7607kWh로 7373kWh인 일본보다 많았다. 제조업의 GDP 대비 전력소비량은 OECD 주요국의 1.4~2.2배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같은 제품을 생산해도 해외 경쟁기업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전력 낭비가 심한 현실에서 원전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한국 원전은 효율성과 운영능력에서 선진국보다 월등히 우수하다. 이용률은 발전소가 일정기간 최대 출력으로 정지상태 없이 발전했을 때를 100%로 보고 이에 대한 실제 운전실적을 비교한 것인데, 한국의 원전 이용률은 93.4%로 세계 원전 평균 79.4%를 크게 상회한다. 우수한 운영기술만으로 1000MW급(신고리1기급) 원자력발전소 3기를 추가 건설할 비용인 7조5000억원의 절감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원전의 안전성 믿을만한가
문제는 안전성이다. 원전사고는 설계, 운전, 외부충격 등 3가지 요인으로 발생한다. 드리마일은 설계 미흡, 체르노빌은 운전미숙, 후쿠시마는 외부충격(지진 쓰나미)으로 사고가 났다. 설계와 운전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자연재해에도 견딜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우리나라 원전은 리히터 규모 6.5의 지진에 견디도록 설계됐으나,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새로 짓는 신고리 3, 4호기부터는 7.0으로 내진설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형 원자로는 5중 방호벽을 친다. 다중 방호벽의 개념은 방사성물질이 발전소 외부로 누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겹의 방호벽을 설치하는 것인데, 경수로는 연료 펠렛, 연료 피복관, 원자로 용기, 원자로 건물 내벽(강철판), 원자로 건물 외벽(120㎝ 두께의 강화 철근 콘크리트) 등 5겹의 방호벽으로 이뤄져 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