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자기의 반성이나 회개 없이 새로운 삶은 시작되지 않는다. 지도자의 회개는 더욱 어렵다. 그의 조직이나 개인의 명예가 실추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윗을 위대하게 생각하는 것은 왕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였기 때문이다. 사울왕은 다윗보다는 적은 죄를 저질렀다. 그는 살인도 하지 아니하였으며 간음도 하지 아니하였다.
다윗은 충복인 신하를 전쟁터로 내보내어 고의적 살인을 저지르고 충신의 아내를 빼앗었다. 그러나 그는 나단 선지자의 지탄을 받고 잘못을 시인하고 철두철미한 회개를 하였다.
한국의 천주교회가 ‘내탓이요 운동’을 전개하더니 200년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속에서 저지른 잘못을 민족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문건을 공포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2000년 11월 20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회시에 한국 교회의 현실 진단 및 회개, 신학 선언을 낸 바 있다. 그다지 만족할 만한 구체적인 반성과 자기 성찰은 아니었지만 교회 쇄신을 위해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속에서 생명을 내걸고 신사 참배를 거부한 지도자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 교회 지도자들 중에는 친일파가 되어 신사 참배를 결의하고 그 후에도 회개 없이 한국 교회의 지도자인양 군림하는 자들도 있었으며 군사 정권 하에서는 그들을 찬양하고 다윗과 같은 위대한 장군이라고 칭송하며 교인과 국민을 현혹하던 종교 지도자들이 많이 있었음을 우리는 보아왔다. 지금 와서 그들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 교회 앞에 자기의 잘못했던 행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다음에 지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 대하여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세계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강한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침략한 전쟁의 역사는 이 지구상에서 동서를 막론하고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처럼 나라를 빼앗고 성(性)과 이름까지 빼앗은 만행은 이 지구상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여인들을 잡아다가 정신대로 끌고 가서 얼마나 한 많은 고통을 주었던가? 정조를 생명보다 더 중히 여기던 우리네 여성들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지금의 일본을 세계 경제 대국이라 하지만 반세기가 지나도록 우리 민족에게 진정한 사죄나 배상도 전혀 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성숙하지 못한 나라임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도 같은 시대에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나라를 괴롭혔지만 그들은 전쟁 이후에 피해 국가에게 물질적으로라도 최선을 다하여 보상하였다. 그래서 독일에게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 지금은 독일 국가에 대하여 우리 나라와 같이 적대감을 갖거나 원망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는 자세를 가졌기 때문이다. 자기의 잘못을 시인할 때 그만큼 성숙해지는 것이다.
교단 총회 때가 되면 금전 타락 선거로 인하여 많은 교회와 사회로부터 비난을 듣는다. 당선만 되면 그만인 것으로 치부하여 내가 부정을 했다고 양심선언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경을 받던 지도자들도 총회장에 당선된 후에는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선거 제도를 고치자는 소리는 높아가고 있지만 사람의 의식이 바뀌지 않고서는 새로워지지 않는다. 법이 없어서 타락 선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법만으로도 지킬 의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최고의 양심이라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는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의 부패를 가져온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갱신은 한국 교회의 발전과 민족의 평화와 화해, 더 나아가서는 민족의 통일을 앞당길 것이다.
한국의 개화기에 헌신과 섬김, 청렴으로 이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던 초대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교회의 외형적 성장과 이기주의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소외되고 차별 받는 우리의 이웃에 관심을 갖는 교회가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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