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활기 되찾았지만, 상처 아물기엔 아직…
섬 활기 되찾았지만, 상처 아물기엔 아직…
  • 박대로 기자
  • 승인 2011.11.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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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공사 인부와 안보현장 체험학생들로 섬 북적거려

▲ 닻배 손질하는 어민들
북방한계선 너머 옹진반도 개머리진지에서 날아든 포탄 170여발이 연평도 주민들의 머리 위로 쏟아진지 어느덧 1년.

북한군부는 김정은 후계체제를 강화하겠다는 미명 아래 지난해 11월23일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오후 2시34분과 3시12분, 북한군의 해안포·곡사포들은 남쪽으로 약 25㎞ 떨어진 연평도를 향해 불을 뿜었고, 날아온 포탄에 맞은 민간인 2명과 해병대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섬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300채 가까운 민가가 전부 혹은 일부 파괴됐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연평도 주민 1600여명은 집안 살림과 꽃게잡이 배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섬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인천시내 찜질방 '인스파월드'와 경기도 김포 미분양 아파트 등지에서 3개월여 동안 고된 나날을 보냈다. 사건 이후 1년이 흘러 보금자리를 되찾은 지금, 그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포탄이 날아들던 그날마냥 찬바람이 귓전을 스치던 지난 14일 낮 12시, 인천연안여객터미널은 연평도 등 서해 5도로 향하는 이들로 북적였다. 배를 기다리는 승선객들의 표정은 언제 포격이 있었냐는 듯 밝기만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터미널 운영팀 관계자는 연평도 주민들이 평온을 되찾았다고 귀띔했다. 그는 "포격 이후 군부대가 보강되자 주민들이 안정감을 되찾았고, 금지됐던 꽃게잡이 조업도 재개되니 자연스레 수입이 늘었다"고 말했다. 또 "주택복구 공사에 동원된 공사장 인부들과 안보현장 체험학생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섬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터미널을 뒤로하고 미끄러지듯 수면을 가른 고려고속훼리 코리아나호는 오후 3시30분께 대연평도에 이르렀다. 선착장은 줄지어 배를 기다리는 이들로 어수선했다.

관광객과 해병대원들 외에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트럭 짐칸에 가득 실린 꽃게였다. 싱싱한 꽃게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상자째 배 위로 옮겨졌고, 상자를 옮기는 어민들의 얼굴빛은 환했다.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던 1년 전 선착장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러나 부두 한편에서 어구를 정리하는 어민들을 만난 순간, 포격의 상흔이 남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어민은 기자를 만나자 기다렸다는 듯 불만을 쏟아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닻배를 짜던 그는 "지금도 잠을 잘 못자거나 큰 소리만 나면 놀라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며 "이런 정신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지난해 꽃게를 못 잡아서 입게 된 경제적 손실도 상당한데 나라와 국회의원이 해주는 거라곤 매달 1번 나오는 정착자금 5만원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평도를 떠날 결심을 굳혔다는 그는 "정부가 해주는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인데도 매달 민방위훈련 때마다 지긋지긋한 방공호에 들어가 불안에 떨어야한다"며 "평생 짊어지고 가기에는 이 짐이 너무 무겁다"고 말했다.

어구 정리에 열중하는 어민들에게 작별을 고한 뒤 섬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포탄에 부서졌던 가로등을 비롯해 각종 시설들이 말끔히 고쳐져 있었다. 파괴되고 불탔던 자리에는 신식 자재로 지은 새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집나간 강아지를 찾아다니는 50대 아주머니의 한가로운 표정에선 1년 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여유가 한껏 묻어났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 평온해 보이는 골목길에서도 갈등이 싹트고 있었다. 새집을 얻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간의 갈등. 골목에서 만난 변모(73·여)씨는 "바로 옆집 이웃들에게는 엄청 좋은 집을 지어주면서 우리 집은 금만 갔다는 이유로 페인트만 대충 칠하고 말았다"며 "언제 무너질지 몰라 불안한데도 정부가 우리 마음은 몰라주고 눈 가리기 식 보수공사에만 그쳐 괘씸하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주택이 밀집한 골목길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진입했다. 포격 후 불탔던 연평면사무소 옆 숲에는 새로 심은 어린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해병부대를 둘러싼 주변 산야에서도 인공조림공사가 한창이었다. 깨진 아파트 창문들 역시 모두 새것으로 교체돼있었다.

주인 잃은 개들이 장악했던 연평성당은 어느새 복구를 마치고 신자들의 기도공간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돌아온 연평 중·고등학교 정문에는 '연평 상처 어루만져 평화통일 꽃피우자'란 내용의 현수막까지 걸려있었다.

외견상으로는 일상을 회복한 듯했지만 긴박했던 순간을 직접 경험한 이들에게 1년 전 사건은 씻을 수 없는 상처일 수밖에 없었다.

연평보건지소에서 만난 간호사들은 본인들 스스로도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보건지소를 찾은 기자에게 한 간호사는 "그때 당시 보건소 건물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랐고 나 역시 그랬다"며 "실제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또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고 고백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도 그날의 충격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연평도 내 최고령자인 이유성(84)옹의 손자 이강훈(13)군 역시 의젓한 척하려 노력했지만 마음 속 상처를 완벽히 숨기지는 못했다.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이군은 "영어수업을 하는데 포탄이 날아들고 창문과 지붕이 크게 흔들렸다"며 "대피소에 숨었다가 이후 몇 달 동안 인천에 있는 친척집과 찜질방, 영어마을을 돌아다녔다"고 담담히 지난날을 떠올렸다.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 한 꼬마아이가 학교 운동장 안에 설치된 대피소로 뛰어들며 장난을 쳤고, 이군은 철없는 동생을 나무랐다. "야, 방공호 들어가지마, 또 포탄 날아올지도 모른단 말이야" 이군의 마지막 말은 악몽에서 쉽사리 깨어나지 못하는 연평도 주민들의 무의식을 대변하고 있었다.

【연평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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