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이프와 스코틀랜드 민요
백파이프와 스코틀랜드 민요
  • 윤소희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 승인 2012.05.0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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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의 ‘음악과 여행’

클래식에 있어서는 유럽의 다른 열강들에 비하면 다소 빈약하지만 대중음악에서는 ‘비틀즈(The Beatles)가 있으니 남부러울 것이 없는 영국. 비틀즈 말이 나왔으니 벤자민 브리튼과 이들을 한번 견줘보자. 헨리 퍼셀(1659~1695년)의 주제에 의한 ‘청소년 관현악 입문’으로 유명한 브리튼은 1913년에 태어나
1976년까지 런던에서 음악활동을 했다. 브리튼이 48세가 되던 해인 1960년 비틀즈가 결성됐으니 이들은 동시대의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음악이 수 세기의 거리로 느껴지는 것은 과거 지향적인 브리튼과 미래 지향적인 비틀즈의 음악적 성향 때문이다.

보수주의적 성향이 강한 브리튼이 존 레논(1940년~1980)의 리듬 기타, 폴 매카트니(70)의 베이스 기타, 조지 해리슨(69)의 리드 기타, 링고 스타(72)의 드럼과 이들의 보컬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몹시 궁금하다. 지금이야 대중음악이 클래식을 능가하는 대접을 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 입지와 개념이 달랐던 때니 말이다.

보수적 성향으로 똘똘 뭉친 영국에서의 비틀즈라 오히려 폭발력(?)이 더 컸던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필자가 런던을 여행했던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비틀즈는 이미 대중음악의 고전이 됐을 정도였는데 피카딜리 광장에는 비틀즈를 연모하는 히피족들과 비틀즈를 향한 순례길에 오른 뮤지션들이 수두룩했다.

영국의 클래식과 대중음악 한 귀퉁이를 뒤로 하고 이제는 민요를 따라 가볼까? 나의 노트에는 당시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에서 스크틀랜드의 에든버러 역까지 7시간 15분이 소요된다고 적혀있는데, 요즘은 특급 기차로 4시간 40분 정도만 가면 된단다. 당시 에든버러의 게스트 하우스 1인실은 24파운드, 4인실은 1인당 14파운드, 꽃 한 다발이 2~30파운드라 적혀 있는데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의 물가는 어떨까?

에든버러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할아버지가 길거리에서 백파이프를 부는 모습이었다. 가죽 주머니에다 바람을 불어 넣으면 거기에 꽂힌 몇 개의 관대에서 소리가 났다. 바람을 불어 넣는 것과 음을 내는 것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배낭을 짊어진 채로 한참 듣다가 그 선율을 악보로 그려놨는데 지금 노래 해 보니 ‘밀밭에서’라는 스코틀랜드의 민요다.

젊은 남녀의 풋풋한 사랑을 그리는 이 노래를 비롯해 스코틀랜드의 많은 민요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익히 알고 있는 ‘애니로니’, ‘작별’, 어메이징 그레이스‘, ‘아름다운 것들’, 불어라 봄바람 등도 스코틀랜드 민요다. 이외에도 ‘아름다운 나의 벗’, ‘로몬드 호수’, ‘들놀이’ 등 숱하게 많은 스코틀랜드 민요들이 있는데 백파이프로 연주되는 이 노래에 가슴이 저며 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수많은 전쟁을 치룬 스코틀랜드에는 곳곳에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적군을 차단하기 위한 성곽이며 전몰장병들이 묻힌 공동묘지, 이들을 추모하는 유물 전시관을 보면서 평화는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고 그냥 오는 것이 아님을 실감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스코틀랜드 하면 백파이프가 떠오르고 백파이프 하면 군대 행렬이 떠오른다.

스카치위스키 마을이며, 백파이프를 만드는 장인들이 모여 사는 곳을 둘러보니 런던과는 다른 정취가 물씬 풍겼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 사람들은 “우리나라는 ‘스코틀랜드’이고 ‘런던’이 아닌 ‘에든버러’가 수도”란다.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왜 이러실까? 잉글랜드가 자기네 나라가 아니라고 여기는 스코틀랜드인들의 긍지와 자존심은 에든버러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리하여 그들만의 역사와 개성을 곳곳에 아로새겨놓았으니 런던과는 확연히 다른 여행의 맛이 있다.

바로 그해 여름 에든버러 축제가 열리는 메인 무대에는 왈츠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때는 한창 여름이라. 저녁 해가 어스름 질 무렵 공원에 놀러 나온 사람들이 왈츠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무대에는 흥을 돋우는 몇몇의 무용수가 있었고, 무대 아래에는 중년을 넘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한창 춤이 무르익자 무대의 무용수들도 마당으로 내려와 사람들과 한데 어울렸다. 돌아가며 파트너를 바꿔 춤을 추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나의 손을 잡았다. 놀래서 보니 무대에서 춤추던 남자였다. 화들짝 놀란 채로 그의 손에 이끌려 나가 춤을 추니 옆에서 하는 말 “재패니즈! 재패니즈 걸!”이란다. 무용수가 ‘원 투 쓰리, 투 투 쓰리’ 하며 스텝을 끌어주니 마치 마법의 구두를 신은 듯이 춤이 춰 지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뛰는 일이었던지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그 뒤 세계 여러 나라 음악을 공부하면서 영국의 아일랜드 민요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애절한 선율들이 한국 민요와도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5음계로 된 노래였다. 한때 제임스 조이스(1882~1941)의 문학을 통해 작곡 기법을 연마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읽은 ‘율리시즈’, ‘젊은 예술가의 초상’, ‘피네간의 경야’와 같은 소설에 늘 아일랜드 애기가 나왔던지라 이후로는 아일랜드에 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20년 전 그 때의 아일랜드에 대한 관심이 지금과 같았더라면 스코틀랜드가 아닌 아일랜드에 가지 않았을까? 구름처럼 떠도는 여행길이라지만 실상 알고 보면 자신에게 저장된 정보를 따라 흐르는 발길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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