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 역사학자, 이야기꾼…이승우 '지상의 노래'
신학자, 역사학자, 이야기꾼…이승우 '지상의 노래'
  • 이재훈 기자
  • 승인 2012.08.30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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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우, 소설가
 "초월자에 대한 믿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둘 모두 근본적이고 본능에 가까운 욕망이라는 것. 사람은 숭배하면서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 숭배를 위해 즐기고 즐기기 위해 숭배할 수 있다는 것. '켈스의 책'과 천산의 벽서를 탄생시킨 것은 믿음만도 아니고 아름다움만도 아니라는 것." (27쪽)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2)를 비롯, 해외에서 문학성을 인정한 작가 이승우(52)씨가 장편 '지상의 노래'를 펴냈다.

지난해 봄부터 올 봄까지 계간 '세계의 문학'에 연재한 것을 묶었다. 초월자에 대한 믿음과 미적 추구 사이의 관계, 사랑과 죄가 얽히며 작용하는 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등 다층 구조가 눈길을 끈다.

'지상의 노래'에는 다섯 가지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 있다. 형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수도원을 답사하고 벽서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강상호', 그 책을 읽고 천산 수도원의 벽서에 관한 글을 쓴 '차동연', 차동연이 쓴 글을 읽고 차동연에게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 '장', 장의 이야기에 나오는 군사정권의 핵심 '한정효', 사촌누나 '연희'를 사랑한 '후'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천산 수도원이 있다.

수도원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은 여행작가인 강영호와 동생 '강상호'다. 강상호는 형의 투병을 외면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형의 원고를 정리, 유고집을 만든다. 교회사 전공자인 차동연의 관심을 끈 것은 천산 수도원의 3평 남짓한 수십 개의 지하 방 벽에 쓰인 성경 구절들이다. 그는 수도원의 폐허를 발굴하고 그곳 공동체의 성격을 조사하는 데 착수한다.

장은 수도원에 있던 사람들 절반을 내쫓은 뒤 군사정권의 독재자 '장군'의 오른팔이었던 한정효를 그곳에 유폐하고 수도원 길목에 초소를 세워 감시한 인물이다. 후는 연희를 겁탈하고 버린 박 중위를 칼로 찌르고 천산 수도원으로 도피했다 오랜 방황 끝에 다시 천산 수도원을 찾는다. 그러나 뜻밖에도 왜곡된 정치권력이 불러일으킨 비극의 현장이 후를 기다리고 있다.

소설의 중심에 있는 것은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후의 이야기다. 후의 이야기와 함께 강상호, 차동연, 장, 한정효의 이야기들을 차례로 들려준다. 이 이야기 덩어리들은 독립성이 강한 둘 이상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기법에서 빌려온 용어인 '대위법적'으로 구성됐다.

특히 8장에서 차동연과 후의 이야기가 그렇다. 각각의 절을 끝맺는 몇 개의 문장들과 차동연과 후가 천산 수도원을 찾아가는 장면, 두 사람이 수도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 목격하게 되는 장면 등이 매우 유사하다. 시간의 차원을 달리하는 두 개의 이야기가 나란히 놓여, 30년 전 후가 했던 것을 지금 차동연이 하고, 30년 전 후가 보았던 것을 지금 차동연이 보는 형식이다.

후의 이야기를 차동연이 쓴 소설로 읽을 것을 제안하는 문학평론가 정영훈 교수(경상대 국문과)는 "소설의 중심은 비어 있고, 이 빈 곳을 후의 이야기가 채운다. 드러난 것의 빈틈에서 이야기가 태어난다"며 "빈틈을 메우고자 하는 욕망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후의 이야기는 하나의 예시"라고 읽었다.

"차동연의 내면에는 적어도 세 가지 다른 형태의 욕망이 깃들어 있다. 애초에 그가 품었던 것은 신학자로서의 욕망이었고, 여기에 역사학자로서의 욕망이 요구됐다"면서 "그리고 이제 이 둘이 부딪치는 지점에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욕망이 새롭게 출현하고 있다. 어쩐지 이는 작가 이승우가 걸어온 길과도 닮아 있다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욕망이 가장 나중에 온 것이라는 사실은, 작가로서의 이승우의 자부심을 보여 주는 대목일지도 모른다." 368쪽, 1만3000원, 민음사

195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이씨는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서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 등단했다. '세상 밖으로'(1991)로 제15회 이상문학상, '생의 이면'(1993)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 '심인광고'로 제4회 이효석문학상, '전기수 이야기'(2007)로 현대문학상, '칼'(2010)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생의 이면'과 '미궁에 대한 추측' 등은 유럽과 미국에 번역, 소개됐다. 2009년에는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이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 시리즈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폴리오 시리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고본으로 세계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을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한다. 한국 소설 중에서는 처음으로 그의 작품이 뽑혔다.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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