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찬바람이 몰아치고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 추운 겨울이지만 선한 사람들의 온기가 있어서 그래도 이 겨울이 마냥 춥지 만은 않다. 필자가 사는 도시 인근에 <선한이웃>이라는 장애인시설이 있다. 이 시설에는 25명의 장애를 지닌 가족들이 살고 있는데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상태에서 법적으로 요구되는 직원이 8명인데, 그 인건비가 1인당 130만 원씩만 해도 천만 원이 넘게 든다. 그리고 매월 임대료, 전기요금, 가스비, 연료비 등이 500만 원이 넘게 든다. 그런데 현재 매월 수입금액은 총 1500만 원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장애인 식구들이 먹을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임대료와 공공요금을 줄이는 데도 한계가 있고, 인건비를 줄이는 것도 무리다.
하다못해 직원들이 많지도 않은 급여인데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 일부씩 떼어서 운영비로 내어 놓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먹거리를 지원하는 길을 찾게 되었다. 필자의 아내가 매주 계란 10판, 콩나물 두 상자, 두부 두 판, 돼지고기 20근 정도씩 지원하면 좋겠다고 하더니 여기저기 전화기를 돌렸다. 콩나물을 생산하는 모산식품에서는 매주 콩나물 두 상자씩을 후원하겠다고 했고, 육가공 업체인 아람양돈에서는 매주 돼지고기를 20근씩 후원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몇 분들이 계란을 후원하겠다고 했다. 어떤 분은 2판, 어떤 분은 5판, 어떤 분은 10판, 이렇게 해서 월 40판이 모아졌다. 그리고 어떤 분은 두부 2판, 어떤 분은 두부 4판을 후원하겠다고 하였다. 팔십이 넘으신 할머니 한 분이 쥐어 주시는 계란 한 판 값을 받을 때는 눈물이 나왔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적은 급여임에도 그 가운데 일부를 내어놓는 직원들, 장애인 식구들의 먹거리를 위해 기꺼이 따스한 손을 펼치는 이웃들, 그런 분들이 있어서 <선한이웃>의 식탁이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선한 손길은 그게 다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선한이웃>을 찾아 와서 사랑을 나눈다.
기업체에 근무하는 이들도 오고, 교회에서도 오고, 개인도 온다. 그들은 한결같이 따스한 사랑을 풀어놓는다. <선한이웃> 식구들을 행복하게 한다. 며칠 전에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날 <선한이웃>을 찾아와서 발마사지도 해 주고 함께 예배도 드리는, 천안 부흥교회 성도들이 주 중에 와서 선한이웃 식구들과 함께 성탄트리를 장식하였다.
<선한이웃> 식구들이 트리 장식을 하면서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리고 장식을 마치고 트리 주위에 다 함께 둘러서서 노래를 부르며 얼마나 행복해 하던지,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가슴이 찡하였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반대의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을 못 보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못 보는 사람들이 있다. <선한이웃> 원장인 노춘 장로는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영악하지도 못하고,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늘 애쓰는 분이다. 마음에 강한 감동으로 온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장도 다른 이에게 떼어주고, 간도 다른 이에게 떼어준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실천한 분이다. 그런데 노춘 장로의 그런 사랑을 폄하하고 희극화 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없는 사실도 만들어냈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선과 악은 빛과 그림자이다.
이 둘은 우리 속에 함께 들어와 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2-23) 라고 토로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모습을 취할 것인가? 이미 대답은 나와 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