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고→반창꼬, 한글파괴? 정기훈 감독 답하다
반창고→반창꼬, 한글파괴? 정기훈 감독 답하다
  • 김정환 기자
  • 승인 2012.12.27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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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훈 감독, '천천히 오래 가고 싶어요'
고수(34) 한효주(25)의 멜로 '반창꼬'가 상영관 수와 횟수의 불리함을 딛고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동시에 제목을 둘러싼 한글파괴 논란도 가열되는 중이다.

한말글문화협회는 '반창꼬'의 정기훈(37) 감독, 제작사 ORM픽처스, 배급사 NEW 등이 '반창고'라는 올바른 표기를 무시하고 제목을 '반창꼬'로 붙인 것에 대해 반발했다.

지난 18일 이대로 대표는 "상영에 앞서 '반창꼬'란 말을 표준말이 아니니 혼동하지 말도록 주의할 글을 자막으로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 대표는 "선열들의 희생을 비웃기나 하듯이 한글 맞춤법을 무시하니 분노와 함께 후손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나 어린 학생들이 '반창꼬'라는 말을 표준말로 생각하거나 저마다 그렇게 말법을 어기면 어찌될까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는 "자막 공지와 같은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게 되면 정 감독을 비롯한 영화 제작자는 한글 발전 해침꾼으로 한글 발전사에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다른 한글단체와 함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나서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말글문화협회는 앞서 지난 9월 KBS 2TV 수목극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의 제목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 결국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로 바로잡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차칸남자'와 달리 '반창꼬'에서는 이 단체의 요구가 실현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TV드라마는 방송사가 편성권, 방영권을 갖고 있는 만큼 얼마든지 자막 고지를 하거나 제작사 등과 협의해 방송 중간에도 제목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개봉 이후 수정이나 추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를 떠나서 이미 상영될 프린트를 전국 극장에 배포해 상영하고 있는 만큼 제목 수정은 물론 자막을 추가하는 것도 어렵다.

결국 NEW측은 "향후 보도자료 발송이나 지면광고 집행시 ''반창꼬'는 영화적 표현이며, 올바른 맞춤법은 '반창고'다'고 고지하겠다"는 안을 21일 이 협회에 제시했다. NEW 양은진 마케팅 과장은 "'반창고'가 올바른 맞춤법이라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고, 맞춤법을 헷갈리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지만 한말글문화협회의 우려를 받아들여 현실적으로 가능한 보완책을 모색해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시비 속에서 시나리오와 연출을 담당한 정 감독의 마음 고생도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정 감독은 "'반창꼬'라는 제목은 극중 '강일'(고수) 등 소방관들이 웬만한 상처쯤은 반창고 하나로 가린 채 다른 사고 현장에 투입되는 희생정신과 사랑의 상처를 간직한 강일과 '미수'(한효주)가 반창고처럼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준다는 의미"라면서 "영화는 상품이다. 열심히, 정성껏 만든 상품에 이름을 붙이는 것인 만큼 기존에 나와 있던 기성품 같은 이름을 붙이기 싫었다. 그래서 영화의 주제 의식인 '힐링'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반창고'를 떠올렸다. 그 다음에는 통통 튀고, 가벼운 것이 좋을 것 같아 우리가 평소 자연스럽게 말하듯 '반창꼬'로 붙이게 됐다"고 해명했다.

정 감독은 "사실 기자회견에서 제목을 '반창꼬'로 지은 것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제목이 문제가 될줄 몰랐다"면서 "그 질문이 나온 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눈 앞에서 펑펑 터질 때 '아, 뭐가 잘못됐구나' 싶었다"고 돌아봤다.

착잡한 심정이다. "나쁜 의도는 결코 아니었지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것은 내 불찰이다. 그러나 나는 한글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글을 사용하고, 한글로 시나리오를 써서 밥을 먹고 사는 내가 한글 파괴자로 불리고, 감독의 윤리적 문제까지 거론되니 속상하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번 논란으로 볼 때 우리 사회가 요즘 굉장히 경직돼 있고 보수화된 것 같다. 2005년 상영됐던 영화 '말아톤'만 봐도 그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사회가 모든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였는데 요즘은 용서를 잘 하지 않는다."

정 감독은 "역설적으로 그런 사회이기 때문에 힐링이 필요하고 우리 영화가 그런 순기능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품게 됐다. 또한 맞춤법 지적을 통해 관객들이 '아, 반창꼬가 잘못된 것이고, 반창고가 제대로 된 것이구나'고 깨닫는다면 한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힐링을 말하는 영화의 감독이 계속 상처만 받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부디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애써 긍정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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