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시골에 푹 빠졌네…'길 위 감독의 장날'
이장호, 시골에 푹 빠졌네…'길 위 감독의 장날'
  • 유상우 기자
  • 승인 2013.01.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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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호, 영화감독
이장호(68) 감독이 방방곡곡 장터를 누비고 있다.

지난 3일부터 KTV ‘길 위의 감독, 이장호의 장날’을 통해 시골 장터를 돌며 주민들의 애환과 문화,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 감독에게 장터는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자 현재 삶의 원동력이다.

장터 이야기를 꺼내자 얼굴이 환해지는 이 감독은 8일 “시장에서는 사람들의 치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우리가 갖지 못한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의 모습은 사람을 흥분하게 만든다”며 시장을 예찬했다.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찾은 흥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어머니가 시장 간다고 하면 악착같이 따라갔다. 장터는 우리의 몸과 정신이 깃든 역사의 현장이다. 사회의 발달도 시장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시골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장날에는 그 지역 특산물이 나온다. 나는 살구를 좋아하는데, 유통기간이 굉장히 짧다. 살구는 제철과일이라 금세 없어진다. 싱싱한 살구를 사기에는 지방의 장날보다 좋은 장소는 없다. 그래서 장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장터에는 숨은 맛집도 있다. “한번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과 순창 장터 국밥집에 갔는데 정말 맛있었다. 장에 이런 맛있는 음식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방의 유명한 음식들이 서울에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장터 만한 맛은 없다”며 “문명의 발달로 시골장의 모습이 옛날처럼 진하지 않지만 오래오래 남겨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 감독은 첫 회에 시인 정지용(1902~1950)의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 향수 5일장을 찾았다. “지난주에 찾은 옥천장터에서 인상적인 것은 팔순 할머니가 시를 낭송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요즘 시골장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밖에 없지만, 이들이 소일하면서 용돈 버는 모습을 보면서 도시보다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도시 사는 사람들, 장날 한 번 가면 굉장히 스트레스가 풀린다.”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한 이 감독은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어우동’(1985), ‘공포의 외인 구단’(1986) 등의 영화로 주목받았다.

‘별들의 고향’은 자신의 영화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당시 상영관 1곳에서만 46만명을 모았다. “착잡한 것도 있다. 일생을 ‘별들의 고향’만 팔아먹고 사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사실 ‘어우동’ 관객 수가 더 많은데 ‘별들의 고향’이 집요하게 내 이름 앞에 붙는다”며 웃었다.

일생을 따라다닌 ‘별들의 고향’에 대한 그의 평가는 다소 의외다. “준비되지 못한 영화”다. “‘별들의 고향’은 가장 원시적인 영화다. 다행히 그 영화가 나를 겸손하게 만든 것 같다. 잘 만들었다면 교만에 빠졌을 것”이라는 고백이다.

영화에 대한 의식이 생기면서 만든 작품이 ‘바람불어 좋은 날’이다. “그때는 한국 영화의 리얼리즘이 사라진 시기였다. 그래서 내가 리얼리즘을 회복시키겠다고 해서 만든 작품이 ‘바람불어 좋은 날’이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 전 대마초 사건에 휘말려 4년을 쉬었다. “쉬는 동안 다른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한국영화가 현실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박정희 독재정권 동안 한국 영화가 현실을 그리지 못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을 의식해서 가난을 그리지 못했고,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고발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람불어 좋은 날’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대마초 사건에 대해서는 “그 시절 대학교 앞에서 할머니들이 담배를 낱개로 팔았는데 대마초도 있을 정도였다”면서 “그때 대마초를 피워 잡혀간 동생인 조감독이 경찰서에서 조사받다가 나를 불렀다. 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수사관이 ‘형씨는 대마초 안 피워봤어’ 묻기에 ‘한 번 피워봤다’고 하니까 바로 진술서 쓰라고 하더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감독은 “대마초 사건으로 한국 영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번 TV 프로그램은 “딱 내 스타일”이라며 즐거워했다. “나는 즉흥적인 게 많다. 영화도 미리 콘티를 짜지 않는다. 현장에서 배우들을 봐야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거기에 적응하다 보니 주어진 조건에서 순발력이 생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느낀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내 견문이 넓어지는 것을 즐긴다.”

내년이면 영화감독 데뷔 40주년이다. “올해는 모든 것이 새롭다. 40주년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40년 영화인생이 되는 해에는 뭔가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마음이다.

이 감독은 2010년 영화진흥위위원회와 행정소송을 벌였다. 영진위가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에서 이 감독이 제작키로 한 작품을 탈락시키자 소송을 냈다. 2011년 7월 서울행정법원은 이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영진위와 싸움에서 승소해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재개하게 됐다”며 “올여름께 내년 개봉을 목표로 기독교 메시지를 담은 영화 촬영을 시작한다”고 귀띔했다.

이 감독은 10일 밤 10시30분 무주군 반딧불이 장터를 찾는다. 무주의 아름다운 겨울 정취와 반딧불이 장터의 매력을 전할 예정이다. 내레이션도 직접 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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