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그럼에도 유효하다…
연극, 그럼에도 유효하다…
  • 이재훈 기자
  • 승인 2013.03.0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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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에이미'
영상이 오감을 건드리는 시대다. 3D영상에 물리적인 움직임 등이 가미된 4D는 기존의 시·청뿐 아니라 후·미·촉을 자극한다. 무대라고 예외는 아니다. 특수효과 등 갈수록 화려해지는 무대장치를 장착하는 뮤지컬은 무대의 제한된 시공간을 초월하기 위해 영상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다.

이러한 흐름에서 연기와 대사로 승부하는 연극이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3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연극 '에이미'는 '그렇다'고 답한다.

영국의 3대 희곡작가이자 연극을 통해 현실을 들여다보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유명한 데이비드 헤어(66)의 작품인 '에이미'(Amy's View)는 1970년대 후반부터 약 16년 간의 영국사회가 배경이다. 현대 미디어를 혐오하는 늙은 연극배우 '에스메'와 대중지상주의자인 사위 '도미닉'의 갈등이 극의 구심점이다.

TV 출연배우를 비웃는 자의식에 사로잡힌 에스메를 도미닉은 일갈한다. "어머님은 TV를 두려워해요. 비록 저속해 보이지만 TV는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생동감 있게 비춰주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적나라하게 들려주니까요. 그걸 보고 듣다 보면 명백해지는 끔찍한 사실이 하나 있죠. … 그토록 공들여 이뤄놓은 어머니의 이 자폐적인 작은 예술세계가 보통사람들의 삶과는 철저히 유리돼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도미닉의 지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TV(또는 영상)가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비추는 것 같지만 그것은 임의로 편집된 내용이다. 연극이 보통사람의 삶과 유리돼 있는 것처럼 보이나 '연극적 현실'은 오히려 삶에 역으로 투영된다.

심각한 재정난과 물가상승에 시달리던 1980년대 영국의 현실은 에스메를 비껴가지 않았다. 잘못된 투자로 엄청난 빚을 지게 된 그녀는 그토록 경멸하던 TV에 출연하게 된다. 그러나 연극 연기에 대한 자존감만은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말년에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진정성 있는 연기로 다시 인정 받게 된다. 그토록 바라던 유명 영화감독이 된 도미닉은 이 연극을 관람하고 "불현듯, 몰입이 되는" 연극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연극은 전통예술과 영상예술의 화해와 교류를 암시한다. 영상의 시대이지만, 실물이라는 진정성에 대한 묵직함을 던지는 연극의 효용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에스메의 딸이자 도미닉의 아내인 '에이미'가 있다. 연극의 타이트롤이기도 한 그녀의 따뜻한 시선이 작품의 핵심코드다. "모두가 화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는 생각을 가진 에이미가 에스메의 반대에도 도미닉을 선택한 것은 "그가 미래였기 때문"이다. 에이미는 절규한다. "난 엄마가 두려웠어. 엄만 과거니까." 그녀에게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고는 과거로만 침잠하거나 미래로만 나아가는, 일방적인 소통을 끊는다.

'에이미'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배우들의 표정과 동작, 대사로만 정직하게 극을 끌어간다. 그래서 울림이 더 크다. 어디를 가나 영상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시대, 오롯이 '연극'만을 관람하는 행위가 새삼 특권처럼 느껴진다.

초연 당시 에스메를 맡아 히서연극상과 대한민국연극대상 연기상을 거머준 윤소정(69)이 이번에도 같은 역을 맡아 이름값을 증명한다. 서은경은 명랑하고 발랄하지만 강렬한 카리스마가 숨겨진 에이미를 맡아 윤소정에게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한다. 지난해 대한민국연극대상 연기상에 빛나는 개성파 배우 정승길이 도미닉을 맡아 두 여배우 사이에서 단단하게 중심축을 잡는다.

이밖에 연극계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호재를 비롯해 백수련, 김병희 등 초연배우들이 돌아왔다. 극단 작은신화의 대표인 연출가 최용훈이 원작의 신자유주의, 거대자본에 대한 논쟁과 같은 담론보다는 시대의 변화와 관계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해석했다. 10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볼 수 있다. 2만~5만원. 1644-2003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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