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유네스코 신규 등재
난중일기 유네스코 신규 등재
  • 박희송 기자
  • 승인 2013.06.1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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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중일기'는 한국에서 최고의 영웅으로 평가되는 충무공 이순신(1545~1598) 해군사령관이 임진왜란(1592~1598:조일전쟁이라고도 부름) 기간 중 군중(軍中)에서 직접 쓴 친필 일기다.

이 일기는 모두 8권의 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임진왜란 발발(1592년 1월) 이후부터 충무공 이순신이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직전까지 7년 동안의 기간을 망라해 기록하고 있다.

◇진정성(眞正性)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직접 먹을 갈아 붓으로 쓴 유일본이다.

일기를 쓴 후에는 각 연도별로 책으로 엮어서 보존에 충실을 기했다.

마지막 책인 무술일기의 경우 이순신 전사(11월19일) 직전인 11월17일 마지막 일기가 기록돼 있으며 전사 이후에는 종군하던 큰아들 회와 조카 완 등에 의해 유품으로 전해져 이순신 본가에서 대대로 보관해 왔다.

이순신의 친필본(親筆本) 난중일기는 일제강점기에도 유실되지 않고 보존돼 왔으며 특히 이 시기에 일본 황족으로부터 난중일기의 양도 제의를 받았으나 13대 종손이 이를 거절해 일기를 지켜낸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지난 1962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 일기를 국보로 지정했고 현재는 소유자인 문중의 허락을 받아 문화재청 산하 현충사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독창성·비대체성

일기의 역사적 배경이었던 임진왜란은 외형적으로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 치러진 전쟁이었지만 일본의 동아시아 세력 확보 목적이라는 세계사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다.

당시 동아시아의 맹주였던 명(중국)나라의 패권에 도전하고자 했던 일본 막부세력의 동아시아 진출의 야욕에서 빚어진 전쟁이었다.

특히 전쟁에 참전한 일본과 명(중국)은 모두 서양에서 전래된 각종 총포 등의 무기들을 대량생산해 이 전쟁에서 사용했으며 조선에서는 세계 최초로 알려진 장갑선을 개발, 전장에 투입했다.

아울러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와 유럽의 용병이 참전한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전쟁 기간 중에 쓰여진 이순신의 친필본 난중일기는 개인의 일기 형식의 기록이지만 전쟁 기간 중에 해군의 최고 지휘관이 직접 매일 매일의 전투 상황과 개인적 소회를 현장감 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나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록물이다.

또한 전투상황에 대한 상세한 기록뿐 아니라 당시의 기후나 지형, 일반 서민들의 삶에 대한 기록도 전하고 있어 당시의 자연지형·환경, 서민의 생활상에 대한 중요한 연구자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난중일기는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유려(流麗)하며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국민이 애송하는 시(詩)도 다수 삽입돼 있어 문학사적 가치도 매우 높다.

◇세계적 중요성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이다.

임진왜란은 외형적으로는 한국과 일본, 중국 3국간의 전쟁이었지만 중국(명나라)의 용병으로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 군사들과 일부 유럽에서 온 군사들도 참전한 기록이 있다.

더욱이 이 전쟁에서는 유럽 지역 국가에서 전래돼 일본에서 대량생산된 조총과 프랑스와 포르투갈에서 생산돼 중국에서 활용한 대포인 불랑기 포 등 무기류의 범세계적 범위의 활용이라는 점에서도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전사연구가 스워프(Kenneth M. Swope)는 지난 200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임진왜란을 '아시아 최초의 지역적인 세계전쟁(Asia’s first regional world war)'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임진왜란에 관한 전쟁사료 가운데 육전에 관한 자료들은 다수가 발견되지만 해전에 관한 자료는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당시의 동아시아 정세와 전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일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근대 일본과 서구 여러 나라에서 임진왜란 해전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사료로 활용이 돼 왔다.

예컨대 '세계 최초의 장갑선(裝甲船)'이라고 알려진 '거북선'에 관한 기록과 전술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일본의 도고 제독은 이순신을 집중적으로 연구, 1905년 5월의 러·일전쟁 시 대마도해전에서 이순신의 전법을 활용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물리쳤다고 공언한 바 있다.

오늘날 임진왜란 해전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임진왜란 시기 해전사를 연구할 때 난중일기를 필수 인용 사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앞의 참고문헌에서 언급한 이 분야의 많은 연구성과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간(Time)

근대 이전 한국 민족 최대의 전란(戰亂)으로 평가되는 임진왜란은 이 전쟁의 참전국인 일본과 중국 역시도 자국의 흥망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전쟁 이후 침략국 일본의 정권은 풍신막부에서 덕천막부로 교체돼고 구원국인 명나라(중국)는 국력이 쇄락해 50년 후에 청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난중일기는 바로 이 7년간의 전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책자다.

이 책자를 통해 당시 해군의 활동상을 통시기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사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

다시 말해 7년간의 전쟁을 이 단일 사료를 보면서 시간적 흐름을 따라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장소(Place)

난중일기에는 전투가 벌어진 현장, 그리고 기록자 자신이 수시로 방문해가면서 활동한 지역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일기에는 본인이 활동한 장소와 군무(軍務)와 관련된 일로 사람들을 만난 장소, 전투현장에 대한 지형조건, 해류분석, 구체적 지명까지 거론하면서 실감나게 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일기에 나타난 이순신의 지리적 활동 범위는 한국의 남해안 지역(현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을 주 무대로 해 서울과 충청도지역까지 아우른다.

특히 이순신이 수군을 이끌고 주둔한 남해안 지역은 당시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공하기 위한 최대 요충지였다.

이순신은 이 지역을 봉쇄함으로써 일본군의 전쟁 전략을 무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일기에서 언급된 이러한 지명들은 그 구체적인 장소를 오늘날에도 확인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해당 지역이 유적지 또는 전적지로서 의미가 부여돼 내·외국인들의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람(People)

일본과 중국의 많은 인물들이 이순신에 대해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 시기 해군사령관이었던 도고 제독은 "조선의 이순신은 나의 스승"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중국 명나라의 당대 인물(진린, 형개 등 명군 수뇌부들)들도 이순신의 능력과 충성심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서구에도 널리 알려져 영국의 발라드(Ballard, G.A)제독은 지난 1921년에 이순신을 자국의 영웅인 '넬슨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최근에도 영국의 턴불(Stephen Turnbull)은 지난 2008년도에 쓴 그의 저서에서 "이순신 제독의 해전승리들은 일본군의 패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 일기에서는 당대 유명 인물들의 활동상에 대한 상세한 언급도 동반하고 있다.

예컨대 조선 조정의 최고위 공직자들 중 영의정 유성룡, 우의정 정탁 등을 위시한 대다수 고위인사들과 전쟁 지휘부인 도체찰사 이원익, 도원수 권율 등과도 직접 교류한 내용들이 기록돼 있다.

원군으로 온 명나라의 최고위 지휘부인 진린 도독, 유정 제독, 형개 제독 등의 일본군의 최고위 장수인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오 키요마사에 대한 기록도 전하고 있다.

▲대상·주제 (Subject and theme)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중에 이순신이라는 한 인물이 자신의 근무지인 조선수군 진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이나 주변 환경 등에 대해 기술한 개인사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사실에 관한 기록이다.

이 일기도 여느 실기문학(實記文學) 작품과 마찬가지로 특이한 인간의 체험 중에서 확인 가능한 대상을 중심 소재로 해 그 사실을 가능한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 일기 속에는 다른 일기류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개요와 작자 개인의 경험 세계가 어우러져 있다.

이 일기에는 엄격한 군중생활과 국정에 관한 감회, 전투 상황의 묘사, 충성심의 표현, 백성들에 대한 걱정, 부모에 대한 효심, 명나라 내왕 요인들의 상황, 항복한 일본군들에 대한 시각과 활용내용, 전황의 기술, 기타 개인 신변잡기 등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

▲형식·스타일(Form and style)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직접 전통 한지에 붓으로 기록한 친필 본 일기이다.

오늘날에는 필기문화가 고도로 발달해 이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초서체 형태의 한문으로 기록된 것이다.

또 그 문장도 간결하면서 문학적으로 가치도 높아서 이 일기에 수록된 이순신의 시는 별도의 문학작품집에 수록돼 있다.

그리고 서체 또한 매우 아름다워 뛰어난 예술품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사회적·의식적·공동체적중요성(Social.spiritual.community significance)

난중일기는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한국 민족 최고의 영웅인 이순신의 대명사로 불려지고 있으며 한국 국민의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으로서 학생들의 교과서·각종 교양서적 등에 오래 전부터 활용돼 왔다.

난중일기의 내면에는 현대 한국의 정치가들.고위관료들이 지표로 삼는 청백리와 백의종군 사상이 깊게 흐르고 있으며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애국심, 민족적 자긍심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재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도 번역돼 일본이나 서구 등 전 세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난중일기는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현대인들의 삶의 영역에 퍼져 존재하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희귀성

난중일기는 400여 년 전 당시 전쟁의 해군의 최고 지휘관이 직접 군중의 상황을 기록해 전해오는 일기로,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더욱이 전쟁 상황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일기를 쓰는 것은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또한 정부가 아닌 민간의 일반 사가(私家)에서 14세대(1세대는 30년 기준) 415년을 이어 보관해 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일기 속에 드러난 당시 군 내부의 비밀스런 문제까지 거론함으로써 이 시기의 제반 상황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비교하자면 당시 전쟁 상황을 기록한 일기 중에는 대부분 민간에서의 사회상과 민중의 생활상을 기록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동종의 다른 일기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군 관련 내용들은 다른 일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점들이 그야말로 난중일기 만이 갖고 있는 독자성이자 차별성·희귀성이다.

◇원형성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기간인 7년간의 기록이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의 7년간을 매년 한 권씩 책으로 엮어서 그 해의 간지(干支)를 딴 이름을 책 표지에 붙여 만들었다.

비록 을미년일기(1595년 분) 1권이 전해지지 않지만 당시 이 일기를 토대로 정조 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된 일기에는 을미년일기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전체 일기가 모두 전한다고 볼 수 있기에 내용의 구성 면에서는 거의 완전하다고 볼 수 있다.

일기 가운데 전투 중이거나 이순신이 투옥됐을 때를 일기를 기록할 상황이 되지 못한 기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상황에서 일기를 썼다고 볼 때 완전한 형태에 가까운 기록물이다.

【대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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