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는 그 유명한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 도쿄에서 만났더니…
서울 오는 그 유명한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 도쿄에서 만났더니…
  • 이재훈 기자
  • 승인 2013.08.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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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
 "'그린데이'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날아갈 것 같은 감동을 받았다. 집착 수준으로 몇주동안 그린데이의 곡만 몇 차례씩 반복해서 들었다."

세계적인 펑크록 밴드 '그린데이'의 2004년 동명 앨범을 뮤지컬로 옮긴 '아메리칸 이디엇(American Idiot)'의 연출가이자 공동각본가인 마이클 메이어(53)는 9일 도쿄 국제포럼에서 이 같이 말하며 흥분했다.

21세기에 들어 가장 주목 받고 연출가 중 한 명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새 방식으로 선보이고 있는 메이어는 2007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토니상에서 최우수연출상을 받았다.

그가 2009년 9월 첫선을 보인 '아메리칸 이디엇'은 2010년 4월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기존의 주크박스 뮤지컬이 뮤지션의 히트곡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반면, '그린데이' 콘셉트 앨범의 주제와 내용을 그대로 옮긴 록오페라 형식이다.

1989년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빌리 조 암스트롱(41·보컬·기타)과 마이크 던트(41·베이스), 트레 쿨(41·드럼)이 결성한 '그린데이'는 1991년 1집 '1,039/스무디드 아웃 슬래피 아워(Smoothed Out Slappy Hour)'로 데뷔했다. 1994년 '두키(Dookie)'의 성공으로 주목 받았으나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다 '아메리칸 이디엇'으로 19개국 1위, 1200만장 이상의 판매량, 5개 히트싱글을 비롯해 '그래미 최우수 록 앨범'까지 수상하며 재기했다.

사회 문제를 다루게 되면서 주제에 맞게 음악의 스케일이 커졌고 부시 행정부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은 '아메리칸 이디엇'은 '그린데이'가 더 이상 펑크라는 한정된 잣대로만 규정할 수 없는 밴드라는 점을 입증했다.

"어릴 적에 느꼈던 이 땅에 대한 불만을 '그린데이'의 곡에서 똑같이 느꼈다. 젊은 시절에 속 터지던 감정을 이 곡들로 표현하면 어떠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양한 캐릭터가 본인들이 인생을 발견해가는 과정도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추가했다. 또 하나 "매우 멋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했듯,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된 청년들의 여정을 감동할 수 있게끔 그리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암스트롱은 2010년 마약 거래상인 '지미' 역을 맡아 8차례 무대 올랐다. 앞서 메이어와 함께 각본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암울한 교외에 사는 '자니'와 '윌' 그리고 '터니', 세 청년의 성장 과정을 그렸다. 특히 9·11 사태 이후 미국 젊은이들이 느낀 불안한 현실과 정체성의 혼란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여러 전쟁을 시작한 조지 부시 행정부에 대한 불만도 담았다.

메이어는 "이미 빌리가 내용을 다 쓴 곡들이라서 따로 손 볼 필요가 없었다. 다만 노랫말들을 어떤 장면에서 어떤 캐릭터에 사용할 지에 대해 e-메일과 전화 통화로 상의했다"고 공동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빌리는 내가 연출가로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인정해줬다. 사랑 받은 앨범을 또 다른 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이 영광이었다."

동명 앨범 첫 트랙인 '아메리칸 이디엇'으로 시작하는 뮤지컬은 말 그대로 '아메리칸 이디엇'(바보 같은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면서 포문을 연다. 그러나 결말은 이를 수긍하는 모양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 다 바보 같은 면이 있다. 나는 바보 보증수표를 가지고 다닌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이디엇'이라고 생각한다. 하하하."

1960년대 미국 서부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메이어는 어려서부터 차별을 겪었다. 게다가 동성애자이자 좌파로 항상 소수자 편에 있었다. 촌철살인과 유머로 이를 극복한 삶을 살았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듯 내뱉는 말들도 거침없다.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좌(左)로 간 사람"이라며 웃었다.

그의 이러한 점은 '아메리칸 이디엇'과 전작 '스프링 어웨이크닝'에도 묻어난다. "나처럼 유대인이자 게이이자 극장을 사랑하고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 정치에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일만 사랑했다. 작은 상자 안에서 사는 느낌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사회가 친근하다고 느껴진 때는 드물었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로 대통령이 바뀐 다음에 내가 합법적으로 남자와 결혼할 수 있었다." 상황이 좀 나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브로드웨이에서 반항적인 삶을 살고 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 때나 '아메리칸 이디엇' 때나 반항심이 녹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극중 몸 좋은 군인과 남자들을 유혹하는 여성들의 화려한 의상, 군에 지원하는 터니와 사랑에 빠지는 아랍 여성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브로드웨이의 클리셰적인 면이 엿보인다. "브로드웨이서 보는 발랄함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현상을 그리고 싶었다.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결부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아랍 여성은 1960년대 미국 유명 TV 코미디시리즈 '내 사랑 지니'에서 바버라 이든이 연기한 지니에서 캐릭터를 빌려왔다"고 설명했다.

반항적인 기조의 뮤지컬이라면서 커튼콜 때 오히려 청년들을 격려하는 듯한 '굿 리든스(Riddance)'라는 부제를 단 '타임 오브 유어 라이프'가 흘러나온다. "인생, 참 복잡하다"며 웃어넘겼다. "맞다. 격려의 의미가 담긴 앙코르곡이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욕구가 있다. 우리 뮤지컬 역시 90분 안에 수만 가지 여정을 표현해야 했다. 이 이야기를 관객들이 내 삶이라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오프 시즌에 임박해 삽입한 곡이다. "오프 무대에 오르기 전 '타임 오브 유어 라이프'가 없었을 때 멍한 얼굴로, 생각이 많은 모습으로 객석을 나가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 분들에게 '속시원하다'는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주인공 '자니' 역을 맡은 숀 마이클 머레이는 캐릭터와 자신이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상 쪽에서 일하고 싶어 할리우드에 갔는데 나 역시 잘못된 사람들과 엮여서 술과 약에 중독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변기 옆에서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그래서 뉴욕으로 돌아가 2주째 됐을 때 이 역의 언더스터디(대역배우)를 맡게 됐다. 그러면서 새 삶을 시작했다."

남성들 위주로 돌아가는 작품이다 보니 너무 그들의 판타지만 앞세우고, 여성들을 소외시켰다는 불만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자니'를 섹스와 마약의 세계로 끌어들인 뒤 서로 파멸할 것을 느끼고 그를 떠나는 '왓서네임' 역의 앨리사 디펄마는 "여자들이 강렬하게 등장한다. 연악한 여자가 아닌 강한 여자"라면서 "극 초반 남성들의 판타지로 그려져야 극의 기승전결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펑크 록 클럽과 창고에서 영감을 받은 무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0년 '토니 어워즈'에서 무대디자인과 조명디자인 부문을 수상했다. 무대 곳곳에 걸려 있는 다양한 크기의 스크린 30여개가 눈에 띈다. 메이어는 "흔히 TV를 바보 상자라고 부른다. TV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의식 못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버린다. 그간 내 능력을 발견하지 못하고 시간을 버리게 된다"고 짚었다. "예전에 TV는 거실에만 있었는데 지금은 길거리를 걸을 때 손에, 컴퓨터 화면에, 손목시계를 통해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의식하든 의식을 못하든 우리가 잃어가는 것에 대해 표현하고자 했다."

'아메리칸 이디엇' 오리지널팀은 일본에서 투어 공연 뒤 9월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내한공연을 연다. 미국의 상황이 한국에서 공감을 부를 수 있을까. 메이어는 "사실 나는 한국의 정치상황을 잘 모른다. 그러나 이 공연의 음악이나 내용은 세계적"이라면서 "젊은 세 남자들이 자아를 발견하고 이들과 관계있는 이들의 여정은 시대를 불문하고 정치적인 삶과 모두의 환경에 결합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했다. "한국어로 번역됐을 때 더 통합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기승전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메리칸 이디엇'을 기획한 오디뮤지컬컴퍼니의 신춘수 대표는 "'스프닝 어웨이크닝'을 보고 마이클 메이어에 관심이 있었다"면서 "'아메리칸 이디엇' 역시 그의 섬세하고 뛰어난 면모가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작품에 대해서는 "'그린데이'의 음악 만으로도 든든하고 흡입력이 대단하다"며 "투어 공연이 끝나면 한국 프로덕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도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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