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잉의 봉'은 면했지만…
대한민국 '보잉의 봉'은 면했지만…
  • 한평수 사회부장
  • 승인 2013.09.26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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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보잉의 '심장'을 두루 취재한 적이 있다. 미국 곳곳에 산재해있는 첨단 항공기와 무기체계 생산라인을 보며 '미국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당시 곳곳을 둘러보며 놀란 토끼 눈을 떴던 기억이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아리조나주 피닉스에서는 걸프전,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막강 화력을 과시한 아파치헬기를, 세인트루이스에선 F-15E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었다. 보잉의 본사가 위치한 시애틀에서는 AEW&C(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시스템 운용을 직접 눈으로 보기도 했다.

특히 한국 공군에 인도되는 F-15K에 관심이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F-15K는 그해 한국의 첫 F-X 사업(5조8000억원 규모)에서 프랑스 다소의 라팔, 유럽 4개국 컨소시엄 EFI의 유로파이터, 러시아 로스브로제니아의 수호이-35 등을 제치고 최종 선정된 터였다.

이렇게 보잉의 첨단 무기체계들은 한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노리는 것들이었다. 취재일정 말미에 보잉사 관계자들과의 만찬이 있었는데 뒤늦게 한 주요간부가 나타났다. 서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한국에서는 폭탄주를 나누지 않으면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없다며 폭탄주를 연거푸 벌컥 벌컥 들이켰다. 그것도 '텐-텐 폭탄주'를…

보잉은 이후 2007년 2차 F-X 사업(2조3000억원 규모 F-15K급 20대 도입)까지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독식하게 된다. 이미 8조1000억원 어치의 한국 전투기 시장을 '꿀꺽'한 경험이 있는 보잉은 이번 3차 F-X사업에서도 '구닥다리'인 F-15SE(Silent Eagle)를 가지고도 경쟁 기종 중 유일하게 최종 낙점 직전까지 가는 저력을 발휘했다.

'침묵의 독수리' 라는 별칭 답지않게 F-15SE는 전투력면에서는 유로파이터에, 스텔스 기능은 F-35A에 한참 뒤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1, 2차 사업에 낙점된 노하우를 앞세워 한국 정부가 가이드라인으로 내세운 8조3000억원에 맞춰 사업비를 써냄으로서 경쟁기종들을 물먹였다.

보잉은 이전 사업에서 미국 정부의 핑계를 들며 약속했던 기술이전을 제대로 하지 않아 우리 군의 애를 먹였다. 특히 첨단레이더와 주야간표적식별 장비 등 핵심부품 정비권한을 주지 않아, 이들 부품정비는 미국의 보잉사로 넘겨 1년 넘게 정비를 받곤 했다.

엄청난 돈을 들여 전투기를 구입하고도 기술이전을 받기는 커녕 전투기 정비를 할 때면 '구걸'을 해야 했던 게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대중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내세우며 '차세대 전투기를 우리 힘으로 개발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엄청난 '현실의 벽'(예산, 기술 등)에 부딪쳐 국산 차세대 전투기 개발 목소리는 이제 온 데 간 데 없다.

26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의 F-15SE 부결 결정을 두고, 뒤에서 '씨익~' 소리내지 않고 웃는 쪽은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A의 록히드마틴이다. 스텔스 기능을 갖춘 차세대전투기는 역대 공군총장 15명이 그토록 염원했던 바이다.

역대 공군총장들은 레이더에 감지되지 않고 절대절명의 위기에 북한의 핵무기시설이나 화학무기 은신처를 선제타격 할 수 있는 전투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동북공정으로 북한의 붕괴이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국과 한반도를 두번씩이나 침탈한 일본은 이미 스텔스기를 도입했거나 개발 완료를 앞두고 있음을 지적했다.

2055년까지 앞으로 40여년간 운용해야 할 전투기로 F-15SE는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구닥다리'이다. 이래가지고는 한·중·일 외교 국방 수뇌부들이 얼굴을 마주보고 힘을 겨룰 때 말발을 세울 수가 없고, 콧방귀만 돌아올게 뻔하다.

이쯤되면 우리 안보 욕구를 충족 시켜줄 수 있는 전투기는 F-35A 뿐이고, 당연히 록히드마틴의 목이 뻣뻣해질 수밖에 없다. 3차 F-X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한국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고 록히드마틴의 배짱판매는 불보듯 뻔하다. 보잉 전투기 도입 때보다 더 수모를 당하고 '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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